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오늘자(8일) 전국단위종합일간지 지면의 상당 부분이 이 소식으로 채워졌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출마를 ‘환영’하는 언론사가 있을까. 없다. 모든 언론이 ‘이회창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고 있고, 그의 ‘원칙 훼손’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회창 대선 출마 보도, 유심히 들여다보기

한국 언론의 정치 저널리즘이 진일보한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단정은 아직 이르다. 비판과 질타라는 ‘현상’은 공통적으로 묶이지만 비판과 질타의 이면에 숨어 있는 ‘원인과 동기’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 한국일보 11월8일자 1면.
오늘 아침신문 가운데 가장 ‘정도’에 가까운 언론보도를 꼽으라면 경향과 한겨레, 한국일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신문은 이회창 대선 출마로 이번 17대 대선이 최악의 ‘반칙 선거’가 되고 있으며 정당정치의 실종으로 인해 한국정치가 퇴보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세 신문의 제목을 한번 살펴보자.

<이회창 끝내 ‘3수’ 선언…정당정치 파괴 / 혼돈과 퇴행 ‘묻지마 대선’>(경향신문 1면)
<탈당 변칙 불복 … 역대 최악의 대선>(한국일보 1면)
<모순투성이 … / 이회창 ‘출마선언문’ 사실관계 틀리거나 시대상황과 ‘충돌’>(한겨레 3면)

▲ 한겨레 11월8일자 3면.
반면 같은 날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저널리즘에 입각해서 이회창 대선 출마를 비판하기보다는 보수 우파적 시각에서 ‘그의 출마’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1면에서 ‘내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그리고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보수의 상쟁출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조금 감상해보자.

조선일보 ‘우파 내전’…동아일보 ‘보수의 상쟁출혈’

“올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분포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범(汎)한나라당 지지층이 60%,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거나 무관심한 비(非)한나라 지지층이 40%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40%의 비(非) 한나라당 지지층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범여권 선두주자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중심으로 결집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범(汎) 한나라당 지지층 60%가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에게 어떻게 갈릴지 현재로선 점치기 힘들다. 이(李)·이(李) 골육상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치달을 경우, 일부 유권자가 이탈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층 전체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일보 1면 <우파 내전> 가운데 일부 인용)

▲ 조선일보 11월8일자 1면.
“법과 규칙을 존중하는 세상, 정당민주주의 발전, 그가 강조한 좌파정권 연장 저지 등을 위해 가지 말았어야 할 길에 끝내 들어서고 만 것이다 … 그는 출마선언문 말미에서 ‘만약 제가 선택한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게 분명해지면 언제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다 불리해지면 포기하겠다는 얘기 같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대선 막바지에 보수의 상쟁(相爭) 출혈을 자초한 잘못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이회창 씨 욕심과 독선이 부른 保守相爭> 중 일부 인용)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일보는 ‘이회창 출마로 이-이 싸움이 격화되면 한나라당 지지층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걸 1면에서 강조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좌파정권 연장 저지를 위해서 이회창씨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출마로 보수상쟁의 출혈을 자초하게 됐고 결국 좌파정권 연장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점을 ‘대놓고’ 역설하고 있다.

▲ 동아일보 11월8일자 사설.
대체 보수단체가 발표한 성명서를 보는 건지 신문 사설을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정치혐오증 유발과 정당정치 실종에 따른 무관심 확산이 가장 큰 우려

▲ 경향신문 11월8일자 1면.
‘이회창 대선 출마’를 계기로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 점검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동아 조선은 보수우파의 분열을 ‘걱정’하지만 그건 보수우파 진영 내부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자(8일) 경향신문은 1면에서 “대선 끝까지 선거구도의 불가측성이 증폭”되면서 “후보들이 링 밖에서 빙빙 도는 선거는 정치혐오와 ‘로또’식 선거문화”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후보 구도가 유동화하면서 공약·정책·인물 검증은 겉돌게 되고 △인물 위주 이합집산이 앞서면서 정당정치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으며 △권력과 지분만 좇는 퇴행이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 점차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이걸 걱정해야 하고 언론보도의 방점도 이 부분에 찍혀야 하는데 ‘유력지’ 동아 조선은 여전히 그리고 철저히 보수우파적 시각에 ‘갇혀’ 있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고 한국 언론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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