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미리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이 25일 사실을 시인하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러나 25일 저녁 방송과 26일 신문 지면을 통해서 박 대통령의 해명과 상반되는 내용의 증언과 정황들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어,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와 MBC는 이번 사태를 ‘최씨 개인과 문건 유출 관련자들의 문제’로 몰아간 반면, 가장 핵심이 되는 대통령과 최씨와의 관계는 보도는 침묵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25일 저녁 JTBC는 자신들이 입수한 최씨의 PC파일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전날에 이어 단독보도를 이어갔다. 비선 실세로 불린 최씨의 인사 개입, 국정 관여 사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같은 날 저녁 TV조선은 최씨 측근들이 일했던 사무실에서 입수한 청와대 인사 보고서 2매를 공개, 최씨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추천하는 내부 보고서를 받는 등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26일 한겨레는 1면에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최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고 증언했다.

보수와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최씨가 막후에서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공영방송의 보도는 함량미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저녁 KBS<뉴스9>과 MBC<뉴스데스크>는 최씨 관련 각각 9꼭지와 7꼭지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 내용에서 각 방송사가 새롭게 취재한 사실은 전무했고, 검찰 수사의 향방과 여야의 반응, 최씨와 문건 유출 관계자들의 처벌 여부만을 집중 보도했다.

<뉴스9>과 <뉴스데스크>는 이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관련 리포트의 제목으로 각각 <박 대통령 사과…“임기 초 최순실 의견 들었다”>(1번째, 최동혁기자),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최순실 의견 들어">(1번째, 조영익)라고 뽑았다. 박 대통령이 사과가 있은 직후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탄핵, 하야, 박근혜, 최순실’ 등이 최상위 검색어로 오르며 국민들이 관련 이슈에 분노하고 있는 것과는 온도차가 큰 제목이었다. 반면, JTBC는 같은 날 <박 대통령, '최순실 관련' 대국민사과…의혹은 여전>(1번째)라고 다뤘다.

▲26일 KBS<뉴스9>과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관련 분석 기사 형태로 추가 보도했다. <뉴스데스크>는 <하루 만에 책임 인정, 시간 끌기보다 사과로 정면돌파>(2번째, 박성준 기자)라고 제목을 뽑은 뒤, “개헌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하에 모든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들어 “문건 유출 과정과 법률 위반 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질 부분이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제목과 보도 내용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사실상 공영방송 MBC가 ‘박 대통령 감싸기’에 나선 것이다.

▲26일 MBC<뉴스데스크> 화면

<뉴스9>는 <드러난 ‘비선 실세’ 최순실…의혹 어디까지 밝혀낼까>(6번째, 정아현 기자)에서 최씨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소개하며 “최 씨는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공적 사적 영역을 넘나들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 씨와 딸의 소재를 파악해 꼬리를 물고 있는 각종 의혹들을 검찰이 어디까지 밝혀 낼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남았다”고 보도했다. 종합편성채널 JTBC와 TV조선이 연일 단독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검찰 수사 방향에만 주목, 안타깝다는 반응을 낳고 있다.

▲26일 KBS<뉴스9> 화면

전국언론노동조합 박성제 전 MBC본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종편인 JTBC와 TV조선이 연일 특종을 내보내며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파헤치고 있는데, 공영방송인 KBS·MBC는 뭐하고 있냐고 질타하는 심정은 이해한다”면서 “KBS가 쇠사슬에 묶인 강아지라면 MBC는 물어 뜯을 이빨도 없어서 묶어놓을 필요도 없는 애완견이 된 지 오래”라고 개탄했다.

그는 “지금 MBC 주요 출입처 기자들 다 모아서 최순실 특별취재반을 구성해서 풀어 놓아도 절대 JTBC 같은 특종은 못한다. 특종도 해본 기자가 자꾸 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눈빛이 살아있는 셰퍼드 같은 기자들 몇 십명 있었지만 모두 보도국에서 쫓겨난 지 4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

▲JTBC 손석희 앵커(보도담당 사장)

한편, 위에서 밝힌 인터넷 포털 검색어 최상위에는 ‘JTBC뉴스룸, 손석희’도 올랐다. 네티즌들은 SNS에 최씨 관련 단독보도를 연거푸 터뜨린 손석희와 JTBC뉴스룸에 찬사를 보냈다. 이와 더불어 JTBC<뉴스룸> 25일자 방송은 8.0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합편성채널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는 동시간 때 방송하는 지상파 뉴스 MBC<뉴스데스크>(7.1%)와 SBS<8뉴스>(5.9%)를 제친 기록이다. 이와 같은 세간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손석희 사장은 26일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겸손하고 자중하고, 또 겸손하고 자중합시다”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