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을 광장으로 만드는 상상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면서 무르익었다. 연인원 2천193만명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열정의 붉은 축제가 깊게 잠들어 있던 광장의 욕망을 들쑤셨다. 문화운동가들이 광장 조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나도 열심히 기사를 썼다. 2004년 5월 1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을 준공하고, 머릿돌을 세웠다. “그때의 열정과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이곳이 통일의 환호로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서울광장을 만들어 시민에게 바칩니다.”

지금 서울광장은 닫혀 있다. ‘차벽’으로 접근은 물론 조망까지 차단하는 것만이 ‘폐쇄’는 아니다. 몇몇 관제 문화행사가 아니면 사용 허가를 내주지도 않고, 집회신고도 받아주지 않고 있다. 시민에게 바쳤던 광장을 서울시와 경찰이 도로 빼앗아간 꼴이다. 덩달아 열정과 감동도, 통일의 환호도 모두 금지되었다. 광장은 누구도 독점하고 전유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장, 운동장, 나이트클럽과 다르지 않다. 광장에 대한 나, 그리고 우리의 상상과 욕망이 이런 살풍경으로 현실화한 걸 보면 정신까지 아득해질 지경이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광장 ⓒ서울특별시청
▲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서울광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서울광장에서는 ‘정치’가 금지되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은 시민들의 휴식과 레저공간”이라고 못박았다. 중고생들도 아는 상식이자,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나오는 광장의 뜻을 이 나라 권력자들만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 ‘무지의 카르텔’을 적극 거들고 나서는 일부 언론들이 있다. 이들은 교묘하되 천박한 논리를 동원해 광장을 질식시키는 만행을 엄호한다. 개중 하나가 ‘시민 분리하기’다.

한 신문은 “서울광장은 시민 모두의 것”이라며 “서울광장 집회를 신고제로 할 경우 폭력시위가 일상화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평범한 시민에게도 광장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광장 안에서 폭력집회가 벌어진 사례는 찾기 어렵다. 집회·시위에서 폭력을 연상하는 관성적 사고가 사실관계를 무시한 이런 비논리로 나타난 것이다. 집회·시위 참석자들은 산책 나온 ‘평범한 시민’과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다. 집회·시위도, 주말 산책도 모두 ‘시민’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리다.

일부 언론들의 이런 주장은 정작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언술이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집회·시위를 불온하다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언론도 저절로 불온해진다. 딱하기 그지없는 자학이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4호(2009-06-15)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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