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언급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코너에 몰리자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시정연설에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괴리된 현실인식이다.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심각한 상황을 박 대통령 혼자만 애써 부정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24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후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24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언급하기에 앞서 대통령 임기 3년 8개월 동안의 치적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는 정부가 추진해 온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해"라면서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창업국가로 변모하고, 역동적 혁신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면서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벤처투자의 지역 거점을 넘어섰고, 창업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여전히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상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의 기술을 사들이고, 중소기업은 결국 고사하는 행태의 반복은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굳어져 있어, 애초에 벤처기업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는 환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성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경제 구조가 튼튼해지고 있다"면서 "공무원 연금개혁을 시작으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도입 등 공공개혁이 본격적 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경제민주화 정책과 적극적 복지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또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도입 등으로 인해 공공부문 파업이 20일 이상 지속됐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것으로 이미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은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기획·제작·소비·재투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문화산업융합벨트는 새로운 융·복합 콘텐츠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만 봐도 현실 인식의 괴리를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은 '정치검열'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며 "내년에도 창업 활성화 등 창조경제 생태계 정착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지역별 강점 기술과 산업 특성을 고려한 특화사업을 지원해 청년 일자리를 확대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미래부 국감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성과부풀리기와 중소기업청과 하는 일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예산이 낭비된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다. 또 창조경제추진단의 인사 등과 관련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국민의 불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창조경제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R&D는 창조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이라면서 "R&D체계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해 각 부문의 산학연의 연구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인공지능, 증강현실, 미세먼지 대응, 바이오 신약 등 9개 분야를 국가 전략과제로 선정해 풀뿌리 기초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예산을 확대했다"고 강조했는데, 최근 미래부가 민간 연구소인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에 특혜를 주기 위해 기존 정부 과제수행자 2개를 폐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펼쳐진 '코리아 VR 페스티벌 2016'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 A씨는 "VR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기술들 가운데는 이미 상용화된지 오래된 것들이 많았다"며 "정부가 실질적인 기술개발보다 우선 실적에 몰입하는 행태 때문에 업체들도 기술보다는 서류 맞추기와 생색내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경제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만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모두 청취했다는 정 모 씨는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더 떨어질 데도 없어 보인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현실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국회 시정연설은 현실과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대체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지 충격적인 현실 인식에 국민들은 그저 한숨만 늘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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