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라스>가 상냥한데 재밌기까지? <라디오스타> (10월 19일 방송)

세상에 궁금한 게 없는 김수용마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술자리에서 과묵하기로 유명한 김국진이 술자리를 리드하게 만드는 여자. 지난 19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는 ‘내 아이’ 강수지의 마력으로 꽉 채운 방송이었다. 강수지는 “내가 강수지를 데리고 나오겠다”는 김국진의 말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왔다는 배려 넘치는 멘트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네 MC를 본인의 팬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안 그래도 속에 화가 많은 김구라가 방송 내내 분노를 표출할 정도로, 강수지는 김국진에 대한 배려가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김국진을 위해 자동차 데이트만으로 만족하고, “산책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안 해도 된다”며 김국진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동안의 게스트들은 짓궂은 김구라의 질문을 똑같이 받아치거나 혹은 수동적으로 피해갔다면, 강수지는 참 예쁘게 받아치는 게스트였다.

강수지는 김국진과의 열애설이 보도됐을 때도 서로 연락해서 상의하지 않고 김국진이 대응할 때까지 믿고 기다렸다. 25년 지기 박수홍도 김국진은 “어렵고 답답한 스타일”이라고 혀를 내두르는데 강수지는 “저는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김국진 씨가 편안했던 그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김국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반백살 커플의 연애담이 이렇게 설렐 줄은 몰랐다. 주변인들이 입을 떡 벌릴 정도로 다정한 사랑꾼이 된 김국진. 그리고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강수지.

사실 그동안의 <라디오스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사랑과 칭찬이 넘치는 <라디오스타>라니. 김구라를 도와 게스트 놀리기에 재미들인 규현이 두 손을 모으고 순종적으로 연애담을 듣다니.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재미없는 방송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낯선 재미가 있던 방송이었다.

이 주의 Worst: 이경규+강호동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한끼 줍쇼> (10월 19일 방송)

JTBC 식(食)큐멘터리 <한끼줍쇼>

“남편한테도 밥 해주기 싫어하는데 생판 남한테 해줄까?” JTBC <한끼 줍쇼>의 기획의도를 들은 강호동이 던진 첫 마디였다. 이경규와 강호동이 달랑 숟가락 하나 들고 일반 가정집 초인종을 눌러 저녁 한 끼 얻어먹는 것이 이 방송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각박함 혹은 달라진 저녁 풍경을 알아보고자 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중간 즈음에 위치한 프로그램의 정체성. 의도는 나름 신선했다. 그러나 두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약 40분의 방송 시간이 흘렀다. 그 때까지 이경규와 강호동은 어떤 집을 방문할 것인지, 그 집에는 무엇이 있는지, 초인종은 누가 언제 어떻게 누를 것인지 끊임없이 상의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까지 두 남자는 ‘밀당’ 아닌 ‘밀당’을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초인종을 누르는 타이밍이 아니라 초인종을 누른 후 주민들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거의 잠복근무 수준으로 망원동 일대를 탐방하면서 저녁 한 끼 줄 집을 고르는 건, 시청자 입장에서 기다리기 지루한 시간이었다.

오프닝 때만 해도 “저녁 세 끼”를 자신 있게 외치던 두 남자는 결국 2시간 동안 퇴짜만 맞았다. “개그맨 이경규” 혹은 “천하장사 강호동”이라고 그들의 정체성을 밝혔음에도 시큰둥한 주민들이 많았고, 그들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면서도 막상 밥을 함께 먹는 것에는 난색을 표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JTBC 식(食)큐멘터리 <한끼줍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제작진은 주민들의 거절을 놓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 끼 내주던 200년 전과는 달리, 현대 사회는 각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민들의 거절이 과연 현대 사회의 각박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망원동 주민들의 거절이 의미하는 바가, 모르는 사람과 밥 한 끼 먹는 게 싫어서인지 방송이 부담스러워서인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경규나 강호동이 이것이 방송 프로그램임을 밝혔을 때, 주민들은 거절의 표시를 했다. 그렇다면, 이 거절을 놓고 현대 사회의 각박함을 논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차라리 아예 일반인을 투입한 실험에서 이 같은 실패를 맛봤다면 진짜 현실을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송임을 밝힌 상태에서의 거절은 방송 촬영에 대한 거절이지 식사에 대한 거절은 아닐 수도 있다. 부디 다음 주부터는 이런 지점을 잘 고려해서 초인종을 누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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