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22주년이 되는 오늘(10일),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지난해 6월10일 백만촛불이 서울광장을 비롯한 광화문 네거리를 빼곡하게 매운 지 일 년이 된 오늘, 시민들은 여전히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드는 풍경만큼은 1년 전과 지금 달라지지 않았지만,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와 손팻말은 더욱 다양해졌다. ‘독재타도 명박퇴진’에서부터 ‘살인정권 독재정권’ ‘부고 민주주의’ ‘4대강 삽질 STOP’ ‘MB는 뻥쟁이 4대강사업=운하’ ‘언론관련법 반대’까지.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온 ‘촛불소녀’들도 1년만에 다시 등장했다. ㅎ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들은 손수 손팻말을 만들어 나오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만들어 온 손팻말에는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배후세력? 내가 윤배후다 날 잡아가라 이쇼키들아 / 배후세력? 내가 이세력이다 날 잡아가라 이쇼키들아 / Major Byungsin / 민주정치, 국민이 스스로 지배, 지배받는 정치형태 / 우리 대통령 전과 14범

▲ 손수 손팻말을 만들어 거리로 나온 촛불소녀들. ( 이들은 사진게제를 흔쾌히 동의했으나, 혹시 모를 불이익을 염려하는 네티즌들의 요청으로 모자이크처리 하였습니다.) ⓒ송선영
학생들에게 다가가 간단한 인터뷰 요청을 하려 하자, 이들은 일제히 한쪽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선생님~ 이리 와서 같이해요”라고 외쳤다. 서울광장에 촛불을 들려고 나왔다가 우연히 학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저녁도 사줬고, 너네들은 언제부터 나왔냐고 물어봤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석한 바 있다는 학생들은, 다시 1년 만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아예 같이 현장에 나오는 ‘단체행동’을 했단다.

정치를 비롯한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는 이들에게 지난 1년이 어땠냐고 묻자, 한숨부터 내쉬기 시작한다.

“그냥 말이 안 나온다. 학생들을 위한 것은 없고, 그냥 귀족과 상위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1년 넘게 이런 상황이 이어 질지 몰랐는데 앞으로 더 오래 갈 것 같다.”

고등학생이지만 사회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하는 이들, 정부의 정책 가운데 교육 정책이 가장 피부에 와닿는다며 일제고사, 자립형사립고, 대학교육협의회 정책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거리로 나오는 것에 부모님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걱정하지 않냐’고 묻자 이들은 “부모님들이 딱히 못마땅해 하시지는 않으시는데 현장에서 다칠까봐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데에는 선생님들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들은 수업을 통해 사회의 현 모습을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전했고, 학생들은 이러한 선생님들의 수업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그리고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수업 시간에 배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느끼고 있었다.

깜찍하고도 발랄한 다섯 명의 여고생들은 자신들을 ‘윤배후’ ‘이세력’ ‘진상’ ‘노상’ ‘나쵸칩’이라고 소개했다. 아무 의미 없는 듯하지만, 배후, 세력, 진상 등에서는 현 시국을 꼬집은 이들 나름대로의 ‘심오함’도 느껴진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상관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 도중, 촛불을 든 4살 정도로 보이는 한 아이가 이들 앞을 지나갔다. 학생들은 잠시 인터뷰를 멈춘 채 일제히 아이를 향해 “으아~ 아기 너무 귀엽다. 예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아이에게 “이것은 뜨겁지 않아”라며 전자촛불을 건네주자, 아이 엄마는 되레 손팻말을 들고 나온 학생들을 향해 “너네들이 훨씬 더 예뻐”라며 학생들을 칭찬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학생들의 선생님은 바로 앞 거리에 앉은 채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학생들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선생님을 향해 쪼르륵 달려가더니 다시 환하게 웃었다.

2009년 6월, 한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촛불을 든 채 거리에서 만났다. 촛불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이들을 이렇게 이어줬다. 그러나 지금 촛불은 “소통하자”고 수없이 외치는 국민들과, 귀를 닫은 채 오롯이 제 갈길만 가는 대통령 사이 만큼은 이어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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