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오보 사태’가 발생했다. 중앙일보가 1면 톱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곧 교체될 것이라고 썼는데 청와대가 이를 극구 부인하며 “완전한 오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병우 수석 교체론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는 문제 때문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병우 수석 처가 부동산 문제 등의 의혹이 제기되던 시기에 몇 번이나 청와대 민정수석 불출석 관례를 깨겠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우병우 수석은 여야 합의를 통해 실제 기관증인으로 채택돼있다. 따라서 21일 국회 운영위가 열리기 이전에 우병우 수석을 교체해 국회 출석을 막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여의도 언저리에 돌았던 게 사실이다.

중앙일보의 17일 보도는 이 이야기가 거의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이를 ‘오보’로 규정한 것은 이 상황을 부인하는 걸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여권 관계자’발로 돼있다. ‘여권 관계자’란 청와대보다는 새누리당에 가까운 인사를 취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당-청관계로 볼 때 ‘당’이다. 중앙일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보’를 지면에 싣지는 않았을 거라는 상식적 판단을 전제하면 결국 이 기사는 새누리당 내 일각의 목소리를 반영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18일 다른 일간지들의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이날 “우 수석을 둘러싼 의혹의 진위를 떠나 정국 운영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에서 우 수석 거취 문제를 매듭짓자는 의견을 당 일각에서 청와대 측에 직간접으로 전달했고, 청와대 내에서도 이런저런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지면에 실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병우 수석이 1~2시간 만이라도 운영위에 출석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의 읍소에 가까운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우병우 민정수석이 11일 오전 청와대-세종청사 간 영상국무회의 전 티타임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우병우 수석 문제의 ‘정리’를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우병우 수석의 국회 출석 요구를 거부할 방법과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의 출석을 청와대가 거부할 경우 야당은 동행명령을 발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태세이다. 새누리당이 늘 하던대로 안건조정위 회부를 통해 우병우 수석 출석 문제를 최대 90일까지 묶어두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아무리 보아도 명분이 부족하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병우 수석의 국회 출석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우병우 수석이 국회에 출석하고 나서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유의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캐릭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은 본인 처가 부동산 거래를 둘러싼 의혹이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된 이후 이를 해명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아 오히려 화를 자초한 일이 있다. 국회에서 이 당시의 장면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기서 새누리당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우병우 수석이 국회에 출석해 문제가 악화되면 이걸 또 당이 책임지는 구조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국정감사 기간 내내 야당이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 최순실 씨 모녀 의혹 등을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제기해 이에 대한 방어에 급급하던 터다. 여기에 우병우 수석 문제까지 떠안게 되면 새누리당은 연말까지 ‘청와대 방어 모드’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우병우 수석의 거취를 청와대가 정리해주는 게 낫다는 거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정권재창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다. 주요 대권주자들이 ‘시동’을 걸어야 하고 경선을 위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역대 최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핵심 지지기반인 영남과 고령층도 분열되고 있다는 진단도 이미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성인 10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9월 초와 비교해 박근혜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50대 지지율은 46%에서 35%로, 60대 지지율은 61%에서 55%로 하락했다. 지역별로 나눌 때 대구경북의 지지율은 53%에서 44%로, 부산경남의 경우 34%에서 27%로 하락했다.

핵심 지지기반이 와해되는 수순에서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박근혜 대통령과 어떤 형태로든 거리를 두는 것뿐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한 검경과 정보기관까지 동원한 모든 노력 덕에 이런 일은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여당 입장에서 국정운영 동력 유실 방지와 정권재창출 필요가 충돌하는 상태가 방치되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최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향한 ‘색깔론’ 공세는 이런 상황에서 정권과 여당의 필요와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에 더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력한 야권의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에 흠집을 내면서 보수세력이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이를 반영하듯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공세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해명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제는 2007년 유엔 북한인권규탄결의안에 기권하기로 결정하고 북한에 통보를 했든 북한의 반응을 보고 기권하기로 결정했든 접촉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

통일부가 남북 간의 공식 채널로 오간 당시의 기록을 점검한 결과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연락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한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 맥락이다. 결국 ‘비선’으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되니 만큼 공식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종류의 내용이 오고 간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이다. 여기서 ‘비선’이란 과거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화제가 된 ‘국정원 설치 핫라인’인 것으로 추측된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그런데 비선을 활용한 접촉과 연락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참여정부 인사들을 ‘종북’으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이에 대해서는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류길재 전 장관은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남북 간의 굵직굵직한 일도 비선에서 이뤄진 예가 많다”, “(비선을 활용한 접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선 활용이 반드시 잘되는 건 아니지만 수단 중 하나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비선 활용을 포함한 대책을) 다양하게 모색했다”, “비선을 포함해 다양한 것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발언했다. 박근혜 정권이 특히 비선을 활용하지 않는 걸로 알려진 바에 대해서도 류길재 전 장관은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고민한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즉, 대북정책에 있어서 비선을 통한 접촉과 이를 통한 외교 대응 수위 조절은 자연스러운 정책 집행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박근혜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런 저급한 정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새누리당 내부에서부터 자정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자정의 목소리는커녕 평소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던 인물조차 격앙된 반응만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기가 막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찬성, 기권 여부를 북한주민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북한정권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도 또다시 북한에 물어보고 북한인권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물었다. 그 때와 지금의 남북관계가 상당히 다르다는 맥락은 깡그리 없어지고 없다.

물론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오로지 정책적 차원의 렌즈를 통해 진행돼야 할 일이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결국 북한에 핵 개발의 빌미와 시간을 주는 효과만을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종북몰이’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가 아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를 선호하는 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우병우 수석 문제,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 최순실 씨 모녀 관련 의혹 등에서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새누리당은 이대로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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