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가장 강력하고도 가장 슬픈 목소리 <맨 인 블랙박스> (10월 11일 방송)

블랙박스 사고 영상들을 나열하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아침 방송은 종종 있어왔다. SBS <맨 인 블랙박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블랙박스 영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SBS <맨 인 블랙박스>

그 중에서도 지난 11일 방송분은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가장 강력하고도 슬픈 목소리를 담아냈다. 사실 음주운전은 ‘도로 위의 살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너무 자주 강조하다보니 그 경각심이 희미해진 것이 사실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기에 앞서 최기환 아나운서가 “음주운전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2명이다”, “1년으로 따지면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심각하게 얘기했지만, ‘500명’이라는 수치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피해자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목소리는 강했다. 500명이라는 수치보다, ‘도로 위의 살인자’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보다 더욱 강했다. <맨 인 블랙박스>는 피해 강도가 약한 사람부터 만나기 시작해 점차 그 충격을 더해갔다. 음주운전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했다가 부상을 당한 택시기사, 한 쪽 다리를 잃은 피해자, 그 피해자와 함께 사고를 당한 두 다리 모두 잃은 피해자, 딸과 아내를 잃은 피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과 아내, 장모까지 모두 잃은 피해자. 그들의 피해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들의 절규도 더욱 커져갔다.

두 사람의 다리를 앗아갔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두 사람이 죽었음에도 징역 4년이라는 형량이 많다는 이유로 항소를 하는 현실. 피해자들의 입을 빌어 간접적으로 듣게 된 가해자들의 민낯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맨 인 블랙박스>는 상습 음주운전자를 만나 그들의 뻔뻔한 행태를 가감 없이 전했다.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겠다는 생각을 못 한다”, “차가 더 스피드를 낼 수 있으니 그 쾌감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아니 상식을 뛰어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음주운전 가해자들의 진짜 맨얼굴이었다.

이 주의 Worst: 아무도 빛나지 않았던 <예능 인력소> (10월 10일 방송)

tvN <예능 인력소>

김구라와 이수근도 못 살리는 예능이었다. tvN <예능 인력소>는 ‘빛날이’로 불리는 예능 원석과 그 원석을 밀어주는 사람인 ‘바라지’가 출연해, 신인 예능인을 발굴해내는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의 바라지는 광희, 딘딘, 조세호, 이영아였다. 빛날이는 광희와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 임팩트의 김태호, 조세호의 아버지라 불리는 배우 이상화, 배우 김유지 그리고 래퍼 지투였다.

<예능 인력소>는 바라지와 빛날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나영석 PD와 이서진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정작 스튜디오에 등장한 빛날이와 바라지는 나 PD와 이서진의 관계가 아니었다. 나영석 PD는 자신의 위치에서 확고한 캐릭터가 있는 존재이고, 이서진은 예능에 출연을 많이 하지 않았을 뿐 잠재적 예능감이 있는 배우였다. 그래서 나영석 PD가 이서진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관계였다.

그러나 <예능 인력소>의 바라지들은 어떤가. 조세호를 제외한 광희, 딘딘, 이영아가 누구를 뒷바라지할 만큼 역량 있는 예능인인지 의문이다. 빛날이들은 또 어떤가. 잠재적 예능감이 있는 원석이 아니라, 그냥 바라지와 같은 회사 식구 혹은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라지들은 예능에 안 나왔던 사람이 아니라 못 나오는 사람들을 구제해주러 나온 것이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발굴이 아니라 구걸.

tvN <예능 인력소>

개인기를 선보이는 코너가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누구를 흉내 내는지 미리 얘기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김태호의 김상중, 안성기, 유아인 성대모사. 초등학교 수준의 고릴라와 좀비 모사를 하던 김유지. 바라지들조차도 “내가 도와주려고 해도 안 된다”거나 “유지야 들어와”라며 백기를 들었다. 그 사이에서 메인 MC인 이수근, 김구라, 서장훈도 손을 쓰지 못했다.

물론 아직 예능 신인이니, 개인기를 ‘못’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될 개인기를 하는 건, 능력이 아닌 인성의 문제다. 지투는 외국인 및 유학생 시리즈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특정 발음이나 억양이 특징인 베트남과 인도인 성대모사야 그렇다 쳐도 한인 유학생, 그 중에서도 하필 여자 유학생을 흉내 낸 것은 불쾌했다. “한인타운에서 자주 놀다보면 한국 여자애들이 한국말을 애매하게 못 한다”면서 그들의 어설픈 한국말 솜씨를 흉내 내는 게 과연 개인기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투의 성대모사를 말리기는커녕 뒷바라지 해준다고 깔깔 웃는 딘딘이나, “유학생 개그는 어디 가도 먹힐 것”이라고 치켜세워주는 이수근이나. 아무도 빛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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