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검사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 장면들을 떠올린다. <부당거래>라는 영화에는 영화배우 류승범 씨가 약점 많은 검사로 등장한다. 취조를 받던 기업 회장이 자신이 소개해 준 집에 잘 살고 있느냐고 묻자 이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 뭐, 좋은 데를 소개시켜 주셔 가지고…. 글쎄 기가 좋아! 아는 사람들도 많더라구. 회장님, 이게 서로 번거롭게 뭐하는 겁니까. 세금은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세금은 적당히 좀 내고 그러세요. 다 나라에서 좋은 일에 씁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내미는 것은 벌금을 부과하는 ‘약식명령’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현실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으나, 최근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코미디를 보고 있자면 이 대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3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처가 강남 부동산 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김정주 NXC 회장 자택으로 특임검사팀이 압수수색을 하러 갔는데 거기에 대검찰청 차장이 살고 있더라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검 차장은 어쨌든 형식상 검찰의 2인자다. 검찰총장이 없는 경우에 직을 대리한다. 예를 들어 저 유명한 사건으로 채동욱 검찰총장이 찍혀 나갔을 때 길태기 당시 대검 차장이 총장 업무를 대리했다. 김정주 회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압수수색을 하러 갔을 특임검사팀의 입장으로서는 보통 곤혹스러운 사태가 아니다. 이들은 상부에 따로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정감사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은 나중에야 풍문을 접수해 이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으나 딱히 비위 사실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황당한 풍설의 주인공인 김주현 차장의 항변은 이게 ‘우연의 일치’라는 거다. 김주현 차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매매 계약서, 등기부등본, 통장 사본 등을 모두 갖고 있다며 정상적인 거래였다고 강조했다. 전세금에 8% 금리의 신용대출까지 내서 간신히 부동산 대금 11억을 만들었다는 하소연도 했다. 김정주 회장은 본 일도 없고 그의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마저 거래를 할 때 한 번 본 게 다라는 해명도 했다.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김주현 차장검사가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자리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김주현 차장, 억울하죠? 어떻게 사도 그 집을 샀어요 그래?”라며 굳이 해명의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4일 일간지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문제가 된 그 집에는 김정주 회장이 거래 직전인 2006년 약 1년 동안 실제 거주했다. 특임검사팀이 ‘휴대폰 요금 고지서’에 적힌 주소를 근거로 해 압수수색을 하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의심스러운 부동산 거래 2건에 김정주 회장이 등장했다는 결론이다. 2006년 당시 김주현 차장은 진경준 전 검사장의 직속 상사였다. 또 이때는 진경준 전 검사장이 2005년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받은 넥슨 주식 1만주를 다시 넥슨에 팔고 이를 종잣돈으로 해 넥슨재팬 주식을 매입한 때다. 이를 통해 진경준 전 검사장이 얻은 시세 차익은 120억원대인 걸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김주현 차장이 김정주 대표가 살던 집을 샀으니 의혹이 제기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선 조선일보가 사설로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4일 지면에 낸 사설에서 “우병우·진경준·김정주·김주현 등 4명 모두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한다. 세상 일에 우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연이 겹쳐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은 법이다”라고 썼다. 네티즌들은 이런 경우를 일컬어 ‘그런데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한다. 과거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경품 추첨을 한다면서 특정인에게 경품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나오고 이런 우연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치자 그 커뮤니티 운영진이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말이다. 지금 상황이 이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김주현 차장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누가 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을 제 값을 주고 매매했다면 형식논리상 큰 비위로 볼 수 없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의문은 제기해볼 수 있다. 기업에 속한 인사와 이런 식의 부동산 거래가 검찰 내에 일반화 돼있다면, 그 중 누군가가 기업 회장을 수사하면서 “세금은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세금은 적당히 좀 내고 그러세요”라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검찰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다. 임기 말이 되면 항상 나오는 소리가 ‘검찰은 늘 검찰의 편’이란 것인데, 이번만큼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권이 검찰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는 평이다. 당장 우병우 수석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검찰은 앞서 언급한 우병우 수석 처가 강남 부동산 거래에 대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다”면서 “진경준 전 검사장 이름은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거래 당사자인 우병우 수석의 장모와 중개업자들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도 않았다. 중개업자 중 한 명이 거래 과정에서 진경준 전 검사장 이름을 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추가 조사가 진행됐다. 우병우 수석 처가가 화성시 땅을 차명보유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추가 기울고 있으나 시효 문제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병우 수석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은 경찰이 ‘코너링 능력’을 크게 평가했다고 해명하니 더 할 말도 없다. 이러니 ‘우병우 사단’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현역국회 의원 선거법 위반 기소가 야당의원과 비박계 의원에게 집중된 것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4·13 총선 과정에서 불법 공천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새누리당 윤상현, 최경환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무혐의 처리했다. 13일로 시효가 만료된 4·13 총선에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는 야당의 ‘정치적 탄압’이라는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성향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리했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에 대해서는 사소해 보이는 일을 가지고 기소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비판을 할 정도다. 조선일보는 14일 사설에서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친박(親朴)'에 해당하는 사람이 사실상 없다”, “친박들만 선거법을 철저히 지키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라고 썼다. “검찰의 행태가 정치적이고 편향적이어서 구태의연한 야당의 정치 탄압 주장까지도 일리 있게 들릴 지경”이라고도 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연이은 검찰 내 비리 문제로 두 번이나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정권 하에서 검찰은 사상 초유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다른 정권 같았으면 벌써 검찰총장이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의혹 제기만으로는 물러나지 않는다’는 게 아무리 이 정부 방침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에게 수사 조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굵은 동아줄인줄 알고 잡았는데 줄을 바꿔탄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이 그야말로 만신창이 됐다. 검찰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두 가지다. 공수처 도입과 같은 극약처방을 받아들이거나 우병우 수석과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 등에 대한 충격적인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거다. 물론 검찰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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