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에 반대하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뜬금없을지도 모르겠다. 파업을 지켜보며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른 건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발표한 ‘일반해고지침’이 아니다. 2013년 4월 여야가 별다른 충돌 없이 처리한 60살로 정년을 연장하고 의무화시킨 고령자취업촉진법 개정이다.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공공부문 파업이 잇따르면서 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와 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 조합원 2천여명이 지난달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노조는 공공부문의 과잉진료와 안전업무 외주화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성과연봉제에 반대했다.

일반해고지침은 고용노동부의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행정지도를 가장한 일종의 일반해고법을 시행한 것에 해당해서다. 그래서 이런 월권만 없었다면 이번 파업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용자와 정부 관료의 행동심리를 감안한다면 그리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만 보기에 2013년 도입된 정년연장과 의무화는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에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장하기 위해 정부가 고용지원금을 줄 수 있도록 해놔서 사용자 쪽의 반발도 그리 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렇게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에 애초부터 동의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사정상 일부 중소기업을 빼곤 정년 연장은 기업에게 필요하지 않아서다.

저출산을 감안하더라도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이 새로운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일본처럼 기존 직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상상하기란 적어도 앞으로 20~30년 동안은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사무직에게 정년 연장은 그림의 떡이다. 40대 후반이면 이미 명예퇴직의 대상이다. 오롯이 적용되는 건 공무원을 포함해 공공기관 종사자와 생산직의 일부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활성화하지 않으면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의축소와 함께 청년 실업 문제와 상충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정년 연장 적용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임금피크제 도입이 지지부진하여 인건비가 증가하고 신규채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볼멘소리는 단순한 엄살이라고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년은 연장되고 의무화했는데, 임금피크제는 활성화하지 않아서 신규채용을 늘리기 어렵게 됐다’는 게 사용자들의 심리라는 얘기다. 사용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이런 불만을 꾸준히 털어놨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관료들이 이런 불만을 수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들어갔으리라는 것도 짐작 가능한 일이다. 이런 와중에 공무원의 지나친 연금 혜택을 줄이기 위해 2014년 하반기 이후 여론의 지지 속에서 새누리당이 앞장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추진한다. 개정안이 2015년 5월 통과되자, 새누리당과 정부는 노동부문 개혁에 함께 올인하고, 같은해 9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취업규칙 개정을 통해 정리해고나 징계해고가 아닌 일반해고를 가능하게 지침을 도입할 여지를 주는 합의가 이뤄졌다. 나중에 한국노총에서 합의를 뒤늦게 파기하기는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계기로 삼아 일반해고지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의 행동심리 기제가 작동 강화하는 일련의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공무원연금도 줄어들게 했는데, 정년도 연장되고 의무화한 다른 부문은 임금피크제도 활성화하지 않아 신규채용은 줄어들게 되는 상황에서 일반해고를 통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청년실업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다.’ 노동부문 개혁을 밀어붙이는 정부 광고의 전면에 청년실업 문제가 등장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고용노동부의 월권만 없다면, 이번 파업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너무 단순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역설이다. 정년연장은 일종의 고용안정의 한 형태인데, 결과적으로는 저성과자 퇴출을 위한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일반해고지침을 낳는 빌미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을까?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행동심리 기제가 작동하는 고리를 끊는 것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 게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일률적인 정년 연장은 청년실업 문제와 상충관계에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빌미로 나오는 공무원 정년연장 방안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부문은 60살로 선택적으로 연장하고, 그렇지 않은 부문은 이전 수준으로 다시 되돌리는 법 개정 작업을 제안하고 벌이자는 얘기다. 좀 더 나아가, 세대 간 고통분담 차원에서 연금지급 시기를 앞당기되 정년을 축소하여 청년의 신규채용을 늘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방안에 대해서까지 이제는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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