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물어 온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직업운동가로서도 뾰족한 답은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몇몇의 천재들이 답을 줄 수 없다. 몇몇의 전략가들이 답을 줄 수 없다. 논객이고 운동가고 일반 시민들 할 것 없이,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주장들 속에 우리가 채택할 것은 채택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 또한 지금 시국에서, 아니 이명박 정권의 치하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실천이며, 계속되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전술적 목표, 조직적 과제, 당면의 실천적 제안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수많은 의견, 비판이든 동의이든 네티즌들로부터 함께 시작됨으로써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민중들이 분출하는 분노는 기존의 분노와 사뭇 다르다. 그 원인들이 몇 가지 있다.

MB악법으로 인한 공공성 파괴를 목격해야 할 비정규직, 교육관계, 공기업 사유화 대상들, 언론관계 등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또한 경제환경을 재벌 중심으로 몰아가면서 일상의 삶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각종 경제관련 악법을 목격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의 행태, 즉 권력의 주구로서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국민과 시민들을 적대시하며 오로지 이명박 정권 유지수단을 자청하는 데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몰아간 주범인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뿐만 아니라 조중동 등과 같은 수구언론들의 작태에 분노하는 민중들이 있다.

겹치기도 하고 또 따로따로, 다양한 의제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한 곳을 지목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청와대’이다.

전술적 목표

그래서 운동 진영의 여러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MB정권 퇴진투쟁에 총력전을 펼치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당의 주장대로 대통령 사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해임’으로 사태를 수습하자는 주장도 많다. MB정권 퇴진투쟁보다는 수위가 낮고 민주당 입장보다 수위가 높은, ‘내각총사퇴 전술’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나오고 있고, 몇몇 시민사회쪽 활동가들이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현실의 맥락을 짚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 같다.

▲ 지난해 6월 10일 저녁 세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시청 앞 태평로, 남대문 넘어까지 50만 시민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정은
지난해 6월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모였던 촛불집회는 ‘저들’에 의한 어이없는 대반격에 밀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 내내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노동계 등에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평가는 다양했고, 여전히 촛불은 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2차에 걸친 ‘도발적 입법전쟁’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언론노조가 소속된 미디어행동 정도가 칼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투쟁의 깃발을 올렸을 뿐이다.

반면 저들은 ‘경찰계엄령’을 내린 듯, 철통같은 경찰방어막 뒤에 서서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탄압하는 수순을 잊지 않았다. 지난해 8월부터 2000명이 넘는 촛불집회 관계자들을 체포, 수배했고, 낮게는 벌금형, 높게는 구속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단순 참가자들을 줄줄이 소환해서 벌금을 때리고 구속시키는 과정에서 전체 운동역량은 급감했고, 촛불정국 이후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련한 추억의 장으로 밀려나는 사회심리적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아니 강제당했다. 인터넷에서 조중동 광고게재 반대운동을 펼쳤던 수많은 이들이 끌려갔다.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인 글쓰기를 했던 ‘미네르바’의 구속이 상징하는 것처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운운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 일방적인 글 삭제는 일상이 되었고, 수배와 구속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도 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국정운영’이었던 모양.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집에서 길거리에서, 심지어 결혼식을 앞둔 상황에서도 체포당했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이어온 YTN 노조간부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심지어 실형까지 살게 됐다.

저들의 반격은 집요하고 무서웠다.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모욕죄’로 아예 법제도를 개악하자는 데까지 비화했다. 상대적으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 ‘공영방송’은 스스로 무릎 꿇고 투항했다. KBS가 대표적인 투항세력이었다. 그 내부의 저항세력들을 인사권으로 제압했으며, 징계권으로 격리시켰다. 이 결과 일부의 변절과 더불어 KBS 사내의 양심적 세력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위축되어 침묵의 길에 들어섰다. KBS노조의 핵심간부들은 권력의 품 안에서 생색내기 비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MBC는 괜찮은가. MBC마저 정치권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이 있었던, 스스로 알아서 했던 ‘기는 모양새’를 현 정권에서 노골적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MBC사측의 투항은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의 반동화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싸울 의지를 급격히 꺾어 놓는다. 믿을 곳으로 MBC를 바라보고 있다가 MBC마저 믿을 수 없다는 탄식이 장탄식으로 이어졌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의 기능을 거세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의원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에게 경제적 건강성과 더불어 저널리즘 건강성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진출 허용안을 기습적으로 국회에서 상정 통과시키려 했고, 이에 저항하면서 다시금 공영방송 MBC와 SBS YTN EBS CBS 등 지상파 방송들은 투쟁의 거리에 깃발을 들고 나섰다. 하지만 KBS는 노사가 침묵했다. 나머지 지상파들의 사측도 침묵하기는 마찬가지.

▲ 서울중앙지검이 4월 22일 오전 9시20분경 검사 3명과 수사관 30여명을 MBC에 보내 광우병 편에 대한 원본 테이프 압수와 제작진 강제구인을 시도하고 있다. ⓒ송선영
또한 투쟁의 구심으로서 민주노총, 아니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주력 부대들은 한결 같이 침묵함으로써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시대반동 사회반동의 작태를 그냥 방관했을 뿐이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준비된 투쟁역량과 더불어 준비된 연대투쟁의 자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항세력들의 기대와 달리 무기력했다. 그렇다고 딱히 새롭게 대오를 정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하다.

그동안 각종 현안마다 깃발을 들고 저항의 중심으로 역할했던 유명한 시민사회단체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노조가 속한 미디어행동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단체나 연대체들이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투쟁에서 무기력함을 노출하면서 투쟁의 현장 밖으로 나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역량도 싸워야겠다는 의지도 부족했고 박약했다.

딱 한 번,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듯 싸운 6월을 제외하고 이명박 정권 집권 내내 무기력증을 호소함으로써 전체 사회운동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난 1년 반을 보내고 만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했던 전면전이었고,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됐던 전면전이 자발적인 시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불가항력이었으면,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은 시민사회의 무능력이었다. 전술적 과제를 확정하고, 조직적 과제를 논의하는 장을 열지 못했던 시민사회단체의 무능력과 더불어 전술적 조직적 오류에 기인한다.

그 결과 자발적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노를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전술적 과제와 전략적 과제를 구분할 수 있는, 조직적 포괄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수호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지도력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저들의 공권력을 기반으로 한 폭력적 반격과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법제적 반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는가. 2천명이 넘는 그 많은 시민들이 끌려가고 재판받고 벌금 먹고 구속당해도 저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아니 저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책임지는 조직 자체가 부재한 상황을 초래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를 치른 서울광장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추모행렬이 29일 저녁 서울광장에 다시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조직적 과제

이제는 전혀 새로운 조직의 등장이 필요하다.

몇몇 명망가들이 자신들의 인맥으로 구성하는 전국단위의 투쟁체 구성방식은 20여 년 전인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 구성방식을 전혀 탈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 명망가들은 구성하는 데만 의미있는 요소였을 뿐 운영하고 책임지는 데까지 그 의지나 역량은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일반시민들이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가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하소연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하소연뿐만 아니라 체포되거나 구속되어도 홀로 외로이 고립감에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 과정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시민들과 함께 밤을 새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며, 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몇몇 명망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몇몇 명망가들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으로 알음알음 전국단위 투쟁체를 조직해서 가능한 일들이 아니다.

뚜렷하고 합의된 전술적 목표, 조직적 대오, 권위있는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식부터 달리 가야 한다는 의미다. 진격의 시점과 퇴각의 시점에 다수가 따를 수 있는 권위있는 지도부의 구성은 이제 긴급한 과제가 되었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헌신적이고 민주적인 핵심역량을 구성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시민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공개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비밀주의 밀실주의 안면주의 정실주의 일방주의적 조직구성방식은 이제 낡은 것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듯 내던져버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위로받고 배려받는 조직, 일방적으로 위로해주고 배려해 주는 조직이 아니라, 소통의 건강함을 바탕으로 함께 위로하고 받고 더불어 배려하고 받는 그런 살아 숨쉬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존의 조직과 자발적 시민들이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운동적 열정이 넘실대는 조직을 구성하는 원칙이다. 이런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과 더불어 집단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런 집단지성과 집단실천은 공개적인 시국대토론회 등을 통해서 ‘교집합’을 찾아내고, 그 교집합을 중심으로 투쟁의 내용을 한정함으로써 상호이해와 상호인정을 확보해야 한다.

단기필마의 소모전보다는 단기필마가 뭉친 조직대오를 형성함으로써, 아주 길고 끈질기게 이명박 정권으로 상징되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반동화된 관료 한나라당 그리고 수구세력의 지도부로 자임하고 있는 조중동 등과 맞서야 할 것이다.

실천적 제안

그럼 당장 뭐부터 할 것인가?

49재까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분향소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분향소를 차린 시민들의 입장이다. 필요하다. 하지만 49재까지 뭘 할 것인가도 이제 고민해야 할 때다.

▲ 5월 30일 새벽 서울 덕수궁앞에 설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철거된 가운데 오전에 다시 설치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분향을 하고 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한 어린이가 분향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제적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이 널려 있고, 반민주적 작태에 분노하면서 자신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국민들이 쉴새없이 분노를 토하고 있다.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걸러 낼 수 있는 공간으로써,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들이 와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덕수궁 대한문 앞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일정하게 쟁취해 놓은 공간, 거의 유일하게 시민들간 국민들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 시점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 작은 공간밖에 없다.

이 공간에서부터 이제 우리는 ‘만인공동회’를 선언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모범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문별 쟁점토론에서부터 종합적 시국토론을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인터넷 공간의 논객들부터 출전해서 토론하고, 글쓰고, 또 토론하고 글쓰며 네티즌과 소통하고 일반시민들과 소통하자.

비정규직 문제 북핵문제 언론악법문제 건강의료문제 교육문제 경제문제 문화문제 등 각 부문이 고민하고 있는 각종 문제를 드러내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넘어 새로운 진보의 정책과 방향을 설정해 보자.

당연히 투쟁과 저항의 구심점을 조직하는 조직논쟁도 이 공간에서 ‘선수’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발언함으로써 함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대안을 마련해 보자. 한국경제의 성장방법론도 논의해 보자. 분배방법론도 토론해보자. 작지만 크게 보고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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