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서울 용산참사 현장도 ‘국민장 생중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향소앞 평상에 삼삼오오 모인 범대위, 전철연 관계자들과 유족 10여명은 TV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화장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부는 눈물을 훔친다.

▲ 용산참사 유족과 전철연 관계자 등이 TV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이명박 정부의 서슬퍼런 잔인함이 빚어낸 두 곳의 죽음. 국민장 생중계를 지켜보며 용산참사 유족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는 “곧 미사가 시작돼서 길게는 이야기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안타깝지만 국민장 생중계를 보는 마음이 좀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이 비록 기득권 세력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억울하게 죽은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장례조차 못 치르고 있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잊혀지는 것 같아 너무 가슴아프다. 오늘 운구 차량이 이 앞을 지나면 우리들도 장례치르게 해달라고 막으려 했는데 다른 쪽으로 갔더라.

날이면 날마다 경찰버스 7대가 우리 곁을 둘러싼다. 경찰 숫자가 500~600명은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영결식에 투입되느라 경찰들이 거의 다 빠졌다. 경찰버스가 없었던지 (일부 경찰들이) 아예 관광버스를 대절해왔다. 이 정부는 공권력만으로 나라를 끌어가려는 것 같다.”

▲ 용산참사 현장. 오른쪽으로는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경찰이 보인다. ⓒ곽상아
김씨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분향소 앞에 주차된 2개의 관광버스에는 관광객 대신 경찰이 타고 있다. ‘통일관광여행사’ ‘굿모닝여행사’라고 쓰여있다. 10여명의 경찰들은 밥을 나르고 있다. 마침 저녁시간이다.

분향소로 들어가는 입구 길목에는 문정현 신부가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눈두덩이에 수건을 얹은 그는 주변 사람들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오늘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미사를 진행중이던 용산참사현장에는 갑자기 용역들이 들이닥쳐 건물에 대한 강제 철거를 집행했다. “전국민이 애도하는 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하던 문 신부는 무릎 등을 다쳤다.

오전에 이미 한바탕 전쟁을 치른 용산참사 현장은 다시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 이성수, 고 한대성, 고 윤용현, 고 이상림, 고 양회성씨의 모습이 그려진 펼침막을 못질해 단단하게 고정하느라 분주하다.

분향소에는 시민들이 간간히 들러 5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을 따라가던 조문객들이 용산참사 현장에 들렀다 시청광장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내가 찾았을 때는 교복입은 여학생이 아버지로 보이는 이와 함께 분향을 했다. 용산참사 현장을 처음 찾은 나도 죄스런 마음으로, 두손을 모아 분향을 했다. 두번반의 절을 끝내고 나니 옆에 선 70대 할머니가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신다. 그의 맑은 눈을 보며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 시민들이 분향하는 모습 ⓒ곽상아
한쪽에서는 매일 저녁 열리는 용산참사 추모 미사를 위한 ‘길거리 성당’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스티로폼 깔개를 길바닥에 놓고, 탁자를 나른다. 이윽고 시작된 미사에서 신부는 “주님, 용산참사 열사·박종태 열사·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하느님의 자비로 이들이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부디 그러하길, 나도 속으로 기도했다.

▲ 저녁7시 용산참사 추모미사를 위해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 ⓒ곽상아
4개월 넘도록 상복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관광버스 탄 경찰, 길거리 성당…. 각자에겐 일상적 풍경이지만 전체적으로 보기에 부조화스럽기 그지없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기괴한 풍경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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