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파렴치한 정치’에 놀라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파렴치’의 사전적 의미는 뻔뻔하고 수치를 모른다는 것으로 ‘몰염치’와도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박근혜 정권이 창피함을 모른다는 것은 최근의 거의 모든 정치적 논란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식의 정치가 ‘표준’이 될까 두려운 세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노골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독려했다. ‘북한붕괴론’이나 ‘레짐체인지’의 구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발언이다.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경우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이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질만한 것이다. 야당의 정치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대통령이 발언을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런 평가는 북한의 대외전략 제1목표가 체제유지인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체제 붕괴를 노골적으로 선전하면 이를 차단하기 위해 구심력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 일부 인사들은 아예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정치에서 처한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을 일부러 자극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을 정도다. 이런 비판기류를 고려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선전포고’라고 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의 대통령이 사실상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 역시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및 2016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한 마디로 기가 막힌 수준이다. 상식 선에서 움직이는 정권이라면 당연히 ‘지금 상황에선 국제 공조에 의한 대북제재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이를 위해 강력한 국가원수의 발언이 필요했다’는 식의 설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언론에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북한에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관계자의 발언을 흘렸다. 과거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 등에 휘말린 바 있는데, 최근의 발언 역시 어떤 북한의 의도에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다. 이건 악의적 선동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청와대는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다른 폭로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일을 자행했으리라 생각된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4일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저 부지를 물색하다 논란이 예상되자 포기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이는 이명박 정권 시절의 ‘내곡동 사저’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이 폭로에 대해 청와대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 후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이 풀리지 않았고 이게 결국 ‘북한에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표현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혹에는 해명으로 답해야 하고 정책에는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은 그야말로 파탄지경에 이르러 있다. ‘친중정책’으로 확보한 시간을 대화 분위기를 만드는데 쓰지 못해 북핵 위기를 키웠다. 5차 핵실험 이후에도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대북문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강대국이 알아서 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대북교역을 주도한 걸로 추측되는 중국의 훙샹그룹을 제재토록 한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권은 그저 옆에서 장단을 맞추는 정도 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자체적인 대북제재를 논하면서 북방영토 반환과 평화조약 체결을 통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힘을 쓰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내에서 한미일 동맹 구도가 명확해졌기 때문에 그 이상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걸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친중 행보를 거듭하던 시기 구애로 일관하던 일본은 이제 대한민국을 찬밥 취급 하고 있다. 최근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감성적 조치’, 즉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편지를 언급한 박근혜 정부의 요구에 대해 “털끝만큼도 고려치 않는다”고 답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베 신조 정권으로서는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면서 국외정세를 정리했기 때문에 이제 국내정치를 신경 쓸 차례인 것이다. 결국 대북정책의 파탄이 외교무능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책적 문제제기에 상대의 흠을 잡고 늘어진다면, 권력의 심부에 대한 의혹 제기에는 무시와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게 또 박근혜 정권이다. 최근 빗발치는 의혹들의 주요 소재인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전경련이 떠맡아 해결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전경련은 새로운 재단을 출범시킨 후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해산 및 통합을 추진하기로 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경련이 두 재단의 해산이나 통합을 추진할 자격과 근거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고질적인 정경유착 관행을 들어 전경련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6년 장·차관 워크숍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상식적으로는 모든 의혹을 해명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밝혀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모든 상식적 문제제기에 귀를 닫고 마치 세월호 참사 시기 해경을 해체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해경은 명목상 해체됐으나 국민안전처 산하 조직인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통합에 대해서도 불법적으로 모금된 출연금을 유지하고 과거의 모금 내역 등을 ‘세탁’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이런 기만적 태도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검찰은 지난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처가의 강남 땅 거래 의혹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결론을 정해놓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나 부동산 중개에 관련된 인사들은 조사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이 거래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중개업자에 대해 한겨레 등이 취재에 들어가자 마지못해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든 결론은 이미 뻔한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상황을 이미 지배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의 병역 특혜 문제는 이런 뻔뻔함의 ‘화룡점정’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싸려는 무리들은 ‘특혜’라는 게 아버지가 고위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니, 원래 좋은 대우를 받을만 했다고 해명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4일 국회 안행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울경찰청 관계자가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을 운전병으로 뽑은 것에 대해 “코너링이 좋았다”는 등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경찰청의 운전병 선발 기준은 레이싱 선수를 뽑는 것에 준한단 말인가.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 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연합뉴스)

단식 8일 만에 거의 사망 직전에 이른 듯 보였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병상에서도 국정감사 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한다. 국정감사의 주요 의제가 주로 권력에 대한 의혹 제기인데, 지금 집권당 대표가 꼼꼼히 챙긴다는 것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정현 대표의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 행보는 실제로 생명을 걸고 단식으로 권력과 싸우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일 뿐이다. 새누리당 관련 인사들은 이렇게 뭉개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람들이 적당히 문제를 망각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정권의 이런 파렴치한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결코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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