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를 맞았다. 전국에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분향소가 세워졌고 조문객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예상치 못한 비보에 애통해했다. 어제는 청와대와 유족들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가족장이 아닌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이의 죽음에 전 국민들이 함께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한 당연한 조처다.

그러나 ‘국민장’을 두고 정부는 ‘국민 화합의 계기로 승화하자는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나섰다. 정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국민화합이 필요치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과 끊임없이 대립하며 그의 이미지 흠집내기에 바빴던 이들의 입에서 이제 와서 ‘국민화합’이라니,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국민장’은 온전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하는 ‘국민의 몫’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 화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현 정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곧 국민 화합으로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 25일자 신문의 사설에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내용이 빠지지 않고 실렸다. 물론 그 내용을 보자니 큰 틀에서의 ‘국민화합’을 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14줄의 유서내용을 선별적으로 골라 해석하고 각자 ‘고인의 뜻’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5월 25일 조선일보 사설
조중동,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가슴에 새기다

봉하마을을 찾은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가로막혔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조문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박근혜 의원도 1km 앞에서 유턴했고, 정동영 의원마저도 두 번이나 빈소를 찾아서야 조문을 할 수 있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새벽시간을 틈타 ‘기습적’으로 조문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보낸 조화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조중동은 오늘 한목소리로 ‘고인의 뜻이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조선일보는 “노사모 소속 회원들은 KBS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때 KBS 중계차를 내쫓기도 하고, 기자들에게 심문하듯 소속 회사를 물으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을 두고 ‘경우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비판했고, ‘이명박 정부 탄핵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역시 ‘조문의 본뜻을 벗어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조선일보는 “자신(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또 다른 정치적 혼란이나 사회적 갈등을 부르고 국민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격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라며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상기시켰다.

▲ 5월 25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국민들에게 ‘차분함’과 ‘냉정’을 요구했다. “분명한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몰아붙이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정당했던 언론의 비판을 감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검찰과 보수언론을 감싼다. 그러고는 한마디 남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지와도 상충된다”고.

동아일보 역시 ‘차분함’과 ‘이성’을 주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동아일보는 “일부 누리꾼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추모게시판 등을 이용해 ‘정치적 타살’이니, ‘제2의 촛불’이니 운운하면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고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은?

역시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다고 해서 조문을 막는 것이 잘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심적으로는 이해도 된다. 여느 드라마서도 나오지 않던가. 고인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장례식을 찾으면 으레 고성과 멱살잡이가 오가는 모습이.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빈소에 들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조중동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국민’들에게 자제할 것, 차분할 것, 냉정할 것,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실상 ‘국민’들의 슬픔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보가 들리던 날 덕수궁 앞에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경찰은 시청광장은 전경버스로 둘러싸고 분향소의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국민들의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경찰들의 수도 그만큼 늘어나 출입을 통제했고 급기야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차빼라”는.

봉하마을에서 정치인들이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며 분노한 조중동은 실상 국민들이 경찰들에 의해 조문이 어려워진 상황에는 눈과 귀를 막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설치된 덕수궁 앞 분향소이건만, 그리고 국민들이 경찰에 의해 조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뜻은 아닌 듯 싶다.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려면…

앞서, ‘국민화합’은 현 정부의 태도에 달린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던 이명박 정부는 시청광장을 둘러싸고 추모행렬을 단속하기에 바쁘다. 제2의 촛불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보아하니 ‘국민화합’은 또다시 국민에게 강요하는 구호성 화합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배경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보수언론의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중동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서내용을 사설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들 단속에 앞장서고 있다. 길다면 긴 14줄이나 되는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을 상기할 수는 없었을까. 무엇으로 고통스러워했는지를 따져보았다면 국민들을 단속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을 텐데. 조중동이 이러할진대 국민화합이 가능할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조중동은 자신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뜻일까? 그럴 리 없다.

▲ 5월 25일 동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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