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보며, 5년 전 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 조갑제는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 사장을 지낸 남상국씨의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고 남상국 사장에 대하여 조문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다”며 또다시 남상국 자살과 관련해 ‘사과를 하지 않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300억대 비자금 조성 등 각종 비리사건에 자살 택한 고 남상국 사장

남 전 사장이 한강에 투신한 날짜는 2004년 3월11일. 노건평씨를 찾아가 사장 연임 청탁 명목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남 전 사장은 “제 형 노건평씨가 대우건설 사장의 유임을 청탁한다는 뜻으로 3천만원을 받았지만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우건설의 남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2004년 3월 11일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서 투신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시신을 찾기 위해 구조대가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남 전 사장은 자살 직전 회사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 책임을 내가 지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말했던 ‘모든 책임’에는 노건평씨에게 3000만원을 건넨 혐의 외에 대우건설과 관련된 비리 혐의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말부터 대우건설 관련 비리 혐의를 내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은 2004년 1월 대우건설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남 전 사장을 긴급체포하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었다. 검찰은 남 전 사장 등이 하도급 업체와 짜고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 등으로 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 등에 수십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단서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정대철, 송영진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상규 한나라당 의원 등이 구속됐고, 안희정씨와 서정우 변호사가 남 전 사장한테 거액의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같은 각종 비리사건에 정신적 압박감, 수치심 등을 느껴왔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여옥 “노무현, 자살교사죄 해당”

남 전 사장이 죽은 다음날, 노 전 대통령은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전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의 투신 사건에 대해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남 전 사장의 죽음과 관련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한목소리로 ‘노무현이 죽였다’는 식의 위험한 논리를 최근까지도 스스럼없이 펼쳤었다.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법률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도의적으로 명백히 책임이 있다”고 말했고, 같은 당 박진 의원도 “노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남 사장을 범죄자로 몰고, 건평씨는 마치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무리한 궤변을 해 인격살인을 범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3월 전여옥 한나라당 당시 대변인은 CBS에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 대통령에게 모욕을 당해 자살했다”며 “자살할 의도가 없던 피해자를 자살로 몰았다는 점에서 형법 252조 2항의 자살교사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2005년 5월23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린 ‘고 남상국 사장을 한강물로 뛰어들게 한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대통령의 형님을 감싸기 위해 한 인간을 저렇게 무참히 매도하는데 소름이 오싹 끼쳤다”며 “대통령이 방송에서 ‘남상국 사장’이란 이름을 몇 차례씩이나 거명하면서 확인 사살하는데 하늘이 노래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나라당에 발을 맞추어 보수언론은 노건평씨와 관련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남씨의 죽음을 거론하며 마치 노 전 대통령이 그를 죽인 것처럼 표현했다. 가장 노골적인 보도를 해왔던 곳은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 “인격 무자비하게 짓밟아…난간 밖으로 떠민 것이나 마찬가지”

조선일보는 2009년 3월26일자 사설 <‘시골에 사는 별 볼일 없는’ 대통령 형의 진짜 얼굴>에서 각종 비리 의혹의 드러난 노건평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이 아니라 ‘서울 사람 뺨치는 약은 노인’이었다”고 표현하며 남상국 자살 사건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이런 무지막지한 언어 공격은 남 사장의 등을 밀어 그 길로 한강으로 가 목숨을 끊도록 만들었다” “노건평씨가 박연차씨에게 수억원을 얻어내 돈을 돌린 것은 노 대통령 형제에게 모욕당하고 농락당한 대우 남 사장이 목숨을 끊은 지 채 석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등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의 책임자인양 보도했다.

▲ 2008년 12월16일자 조선일보 5면
조선일보는 2008년 12월16일 5면 ‘단독’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남편을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는 부인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부인은 인터뷰에서 “남편은 연임 청탁이나 그런 걸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노건평씨)한테 ‘이번에 사장 임기 다 되어가는데, 다시 사장 시켜주세요’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을 준 것도 대우건설을 끌어들이려 했던 민경찬(노건평씨 처남)씨와 다른 사람들이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같은면 <남 전 사장 자살, 무슨 일 있었기에>에서 부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당시 검찰은 3000만원의 성격에 대해 ‘대우건설 사장연임 청탁 명목’이라고 발표했지만, 수사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 전 대통령의 발언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오히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민경찬(노건평씨의 처남)씨 등이 남 전 사장측에 먼저 로비가 필요하다고 제의했고, 이후 노건평씨는 서울로 올라와 모 호텔에서 민경찬씨 등과 함께 남 전 사장을 직접 만났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노건평씨의 처남이 남 전 사장측에 먼저 로비가 필요하다고 제의했다고 해서 남 전 사장이 대우건설 사장 연임 청탁을 명목으로 3000만원을 건넸다는 ‘본질’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그리고 “남상국은 노건평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부인의 주장과 달리 2004년 7월 창원지방법원은 노건평씨가 고 남 전 사장측에게서 ‘사장을 연임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인정해 노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인사청탁인 줄 모르고 돈을 받았다고 하지만, 민경찬씨 등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대우건설 돈이라는 점을 짐작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2008년 12월17일자 사설 <5년 만에 입 연 남상국씨 유족과 인간의 도리>에서도 ‘민씨가 먼저 접근했다’는 부인의 말을 인용하며 “노 전 대통령은 그 일에 대해 언급하려면 먼저 노건평씨와 민경찬씨의 행동을 사실대로 말하고 국민에게 사죄했어야 옳을 일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 남씨의 인격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렸다. 남씨를 한강다리 난간 밖으로 떠민 거나 마찬가지 행동”이라고 힐난했다.

동아일보 “사과하는 게 인간의 도리”

동아일보 역시 2008년 12월17일자 사설 <盧 전 대통령, 남상국 사장 유족의 恨 풀어줘야>에서 “4년9개월여가 흐른 어제 남씨의 부인과 가족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노 대통령이 사실도 아닌 주장으로 남편을 자살에 이르게 했으므로 이제라도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족들의 이 같은 요구에 공감한다”며 “대통령일 때 하지 못한 사과를 지금이라도 하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 2008년 12월17일자 사설
2004년 7월 창원지방법원에 이어 2005년 9월에도 법원은 남상국 전 사장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남 사장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니 유족 급여와 장례비를 달라”며 낸 소송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자금을 준 행위, 대통령의 친형에게 금품을 건넨 행위와 그로 인해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근로자로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유족과 보수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사과하라는 것인가?

“노 대통령은 남씨에 대해 ‘크게’ 성공한 분이라는 강조어법까지 구사해 다수 대중의 시기심을 자극하면서 편을 가르려는 정치적 동기마저 느껴지게 했다”는 동아일보의 주장이 더 정치적이지 않은가.

대통령의 친인척에게 청탁을 해선 안 된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다. 실명을 거론해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하지만, 그 전부터 남 전 사장의 실명은 대우건설 관련 비리로 인해 언론에 오르내렸다. 만약 남 전 사장이 ‘노무현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면,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자살한 누군가에 대해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공개적 사과를 해야 하는가? 소우주의 종말인 개인의 죽음은 그 자체로 매우 슬픈 일이지만, 남 전 사장의 죽음은 대통령의 공식 사과까지 받아야 할 사안에 해당하지 않았다.

노무현 자살, 누구때문일까

보수언론이 남상국의 죽음과 관련해 최근까지도 노무현을 계속 물고 늘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끈질긴 저널리즘의 표상? 그럴리 없다. ‘노무현 때문에 남상국이 죽었다’는 그들의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 탄핵정국에서 남 사장의 죽음을 노무현 공격의 도구로 활용했던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유족의 안타까운 심경’을 강조하며 끈질기게 ‘죽은 권력’ 노무현을 공격했다.

“무지막지한 언어공격으로 남상국의 등을 밀어 목숨을 끊도록 만들었다” “모욕당하고 농락당했다” “남상국의 인격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다리 밖으로 떠민 것이나 마찬가지” 등등 노무현 공격에 동원됐던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치자. 그렇다면 노무현의 자살은 과연 누구때문인가? 위의 표현에서 ‘남상국’ 대신 ‘노무현’을 넣어보라. 무지막지한 언어공격으로 노무현의 인격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게 과연 누구인가? 1억짜리 시계 선물 등 혐의가 아닌 사실도 언론에 흘려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했던 검찰과 이를 열심히 받아쓰며 그의 인격을 조롱해왔던 보수언론이 아닌가? 전여옥 의원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들에게도 ‘자살교사죄’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보수언론은 이제라도 노무현에게 사과하는 건 어떤가. 당신들의 말마따나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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