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의 죽음을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에 앞서 슬픔부터 각인해야 하는 것은 왠지 촌스러운 의식처럼 생각됐다. 꾸역꾸역 졸음과 맞서던 3일 동안 나는 그저 찾아오는 이들과 마주 절을 했다. 틈이 나면 홀에 나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맥주를 홀짝거리며 농담을 했고, 위로를 전하는 말들을 의례적인 무덤덤함으로 받았다.

모든 조문객들이 상주인 나에게 예외 없이 ‘최대한의 예우’와 ‘깊은 애도’를 표했지만, 하나도 와 닿진 않았다. 발인을 앞두고 3일장의 피곤함이 무참해져 올 무렵, 뒤늦게 찾아온 조문객들이 너무나 상투적으로 그 예의상의 멘트를 던졌을 때는, 무얼 안다고 저리 쉽게 얘기하나 괜한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난 엄마가 병수발의 고단함에서 놓여난 것이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없이 살아가는 시간이 계측되지 않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던 오대산 산장에서 채 주독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정치적으로 학습된 ‘분노’와 사회적으로 훈련된 ‘씁쓸함’의 경계에서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대통령의 영광이 아무리 대단했다고 한들, 죽음까지 남달라야 할 이유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하려던 말을 목구멍에서 삼켰다. 언젠가처럼, 한없이 스산하고, 심란했다.

급히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라디오 전파로는 특보가 흐르고 있었다. 불가피해보였다. 병원, 봉하마을, 검찰청 그리고 청와대가 쉴새없이 연결됐다. 무참하게 쏟아지는 관련 소식들은 망극한 사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고속도로를 쏘듯 내달리는 차들은 왠지 더 무심해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은 철저히 속수무책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에 말을 보태는 것이 또 촌스러워 보여 난 계속 말을 아꼈다. 홀로 마음과 머리를 오가며 부유했다.

▲ 23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시로 마련된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최대한의 예우’와 ‘깊은 애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보태지고 있는 한결같은 ‘공식’ 반응들이다. 원래 나에게 주어진 꼭지의 ‘야마’는 거짓 애도였다. 그의 삶을 한 순간도 긍정해보지 않은 이들조차 애도 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보니 나도 괜한 부아가 치밀어 덥석 맡았다.

가장 보통의 심리 상태로, 멍하니 전 대통령이 서거한 ‘사실’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정신이 들 때면 틈틈이 그의 처지를 생각해봤다. 성공을 꿈꾸며 고시공부를 했다는 ‘토굴’에서 그리 머지않을, 고향집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곧 골절과 핏멍울로 점철될 죽음의 결행을 앞두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마지막 말이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는 보도를 읽으며, 나도 깊은 한 모금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무릎에 얹고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엄마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왜 울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난 상주가 울어서야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죽음은 개별적이되 또한 보편적인 것이다. 안락한 자연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모든 죽음은 모호하지 않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한 모든 죽음은 분명한 이유를 갖는다.

선택하는 죽음인 자살은 그 중에서도 더욱 극명하다. 자살은 어느 한 순간의 극단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선택으로 결행되지만, 그 극단에 이르기까지의 보편적 시간들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이유들로 압박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자살은 어느 한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에 직면했었음을 알리는 사회적 형식이다.

죽음이 보편적이지만, 그를 맞이하는 모든 슬픔은 개별적이다. ‘최대한의 예우’와 ‘깊은 애도’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취하는 경건한 형식이지만,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죽음 앞에선 절대, 슬픈 얼굴로 돌아볼 수 없는, 그러면 안 되는 이들도 있다. 생전에 그를 향한 비난은 양방향이었다. 양적으로는 그 이전의 어떤 대통령과 비교하더라도 많았을 것이다. 진보 진영은 그의 ‘배신’에 분노했었다. 상징으로써 그가 거머줬던 ‘시대의식’에 대한 논리적 비난이었다.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것도 아마 그 시대의식의 상징으로 존재해왔다는 실존적 무게감이었을 것이다. 그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큰 몫이었음을 뒤늦게 인정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저녁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내 아비의 죽음 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 배고팠던 격동의 시절을 살아 온 가족사에 흔하게 있는 상흔처럼, 30년 넘게 아버지와 마주치길 꺼렸던 가족이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별다른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을 달리했고 사소하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를 서로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이는 발인 직전에 장례식장에 와서, 복도에서부터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에게 속된 말을 내뱉으며 육두문자를 쏟아부었다. 엄마는 그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슬프시겠죠. 근데 저만 하시겠어요. 조용히 문상하고 가실 게 아니라면 그냥 지금 돌아가 주세요. 가장 슬픈 날 죽은 사람 앞에서, 소란 피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이는 잠깐 더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 말도 않은 채 납골당까지 동행했었다. 내내 침통한 얼굴은 아니었다.

조중동을 보며 바로 그이가 떠올랐다. 조중동이여, 검찰이여, 짐짓 슬픈 얼굴로 돌아보지 마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품었던 적개를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그냥 침묵하시라. 조갑제처럼 전 대통령의 서거와 전 대우건설 회장의 자살을 직접 비교하며, 특집을 편성하는 방송이 정파적이라며 여전히 상식 그 자체를 적개하는 저열함과 악랄함이 이 보편적 죽음을 맞는 당신들의 개별성이어야 마땅하다. 추모 게시판을 열고, 수사 종결을 선언하는 것이야 말로 지나치게 정략적인 반응이다. 하이에나는 먹이가 사라졌다고 울지는 않는다. 당신들의 ‘최대한의 예우’와 ‘깊은 애도’는 거짓 추모이다.

‘최소한의 예우’라도 할 것이었다면, 김현철의 비리를 두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옷 로비를 두고 대통령이 알았을 것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범죄 사실이 확정되기 이전부터 피의 사실과 상관없는 내용들까지 흘리는 속보 경쟁을 자제했어야 한다. 시대의 판관이 되어 ‘포괄적 뇌물죄’를 확정하진 말았어야 옳다. ‘깊은 애도’를 할 것이라면, 늦고 부질없지만 이제라도 사과하라. 그가 구속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모욕당하는 것까지는 바람직하지 않았었노라고 고백해야 한다. 언젠가 나는 그를 모두 태워 전 시대를 일소하면 좋겠다고 썼었다. 그가 유산을 남길 수 있다면, 남다른 점은 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없고, 그와 함께 탔어야 하는 것들은 버젓히 살아남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마감된 이후, 소란을 폈던 그이는 내게 한 번도 어찌 사느냐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이가 진짜 슬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존재를 배반하여, 티나게 과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슬프지 않다는 방증일 뿐이라고 믿는다.

한계는 분명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중동과 검찰처럼 거리낌없이 몰염치하게 몰아갈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그가 죽고 찬찬히 생각해보니 더욱 또렷하다. 여전히 내가 그의 죽음 앞에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 모르겠는 이유이다. 차마 목구멍으로 삼켜버린 말들을 세련되게 표현한 타인의 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잊기 어려울 두 번째 죽음 앞에서 나는 의례적인 무덤덤함이나 지나친 호들갑 그리고 그저 슬픔을 삼키는 것은 ‘학습’과 ‘훈련’의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게 걸려있는 시대의식을 지적하며 앞장서 그를 비난했던 진보 진영의 이들이 ‘그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며 솔직한 언어로 추모하는 것과 생전의 그를 인정조차 않던 조중동과 검찰이 갑자기 경건한 척 그의 죽음에 온갖 수사를 바치는 행위는 차원을 달리하는 추모이다.

나도 그에게 격한 말을 많이 쏟았었다. ‘최대한의 예우’와 ‘깊은 애도’는 가장 보통의 존재로써, 보편타당한 상식의 수준에서, 그의 시대가 MB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질이었던 말을 그의 영전에 마지막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