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식빵’ 김연경의 담백한 일상 <나 혼자 산다> (9월 30일 방송)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배구여제’ 김연경도, MBC <나 혼자 산다> 제작진도 꾸미지 않았다. 물론 방송 내내 ‘걸크러시’라는 하단 자막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긴 했지만, 김연경의 터키 생활은 평범하고도 담백했다. 느끼한 생크림이나 자극적인 소스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의 별명인 식빵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신고 온 양말 냄새를 맡더니 직접 손빨래하고, 수많은 운동화들을 교차적으로 정리하며 뿌듯해했다. 혼자 터키 식당에 가서 2인분을 시키면서 “너무 많이 시켰나”라고 민망해하던 것도 잠시, 밥 한 그릇을 더 추가해서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토끼 세안밴드를 한 채 세수를 했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피부에 감탄하며 웃었다.

국가대표 배구팀 주장이자 세계 배구선수 연봉랭킹 1위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은, 그냥 20대 여성 김연경의 일상이었다. 특히, 엄마가 싸주신 반찬들을 정리할 때, “왜 이렇게 많이 싸줬냐”고 궁시렁대면서도 반찬들을 맛보며 빙그레 웃는 모습은 여느 자취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서 바나나 값을 무작정 깎고 보는 장면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이 아닌, 똑 소리 나는 살림꾼의 모습이 엿보였다. 사실 방송 전부터 김연경의 일상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배구 코트에서처럼 에너지 넘치는 일상 혹은 그런 모습을 뒤집는 아기자기한 일상. 어느 쪽이든 임팩트 있는 에피소드를 원했을 것이다. 시청자든, 제작진이든.

그러나 9월 30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 본연의 의도에 맞게, 그동안 <나 혼자 산다>를 거쳐 간 수많은 혼자남녀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김연경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국가대표 선수 김연경이라서 더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김연경의 터키 생활이었다.

이 주의 Worst: 몰카를 위한 미래여행? <미래일기> (9월 29일 방송)

MBC 예능프로그램 <미래일기>

MBC <미래일기>는 제목 그대로 미래로 가상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9일 방송분에서는 파이터 김동현, 이상민, 이봉원-박미선 부부가 시간여행을 떠났다. 60대가 된 파이터 김동현은 자신과 함께 2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엄마와 데이트를 했고, 이봉원-박미선 부부는 현재와는 전혀 상반된 삶을 사는 노령의 부부가 되어있었다.

두 케이스 모두 시간을 뛰어넘은 이유가 있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놀기 좋아하는 남편 이봉원과 일에 매진하는 아내 박미선은 27년 후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봉원은 외롭게 늙어가는 독거노인이, 박미선은 또래 할머니들과 함께 취미 생활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멋진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당사자(박미선) 입장에서는 대리만족이었을 테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이상민이었다. 굳이 노인 분장을 해서 20년 후로 시간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날 방송에서 이상민은 20년 후 결혼, 빚 청산, 제작사 대표 등극 등 모든 꿈을 다 이뤘으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미래일기>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인생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것이 이상민 편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노인 분장을 한 이상민이 간 곳은 어머니와 친구들이 있는 식당이었고, 그곳에서 이상민은 혼자 밥을 먹으러 온 성격 고약한 할아버지 연기를 하면서 어머니의 속마음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옆자리에 앉은 노인이 사실은 아들인 줄 꿈에도 모르는 어머니는 끝까지 아들 칭찬을 하는 동시에 연예인 아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이었다.

중간 중간 어머니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을 듣고 있던 아들 이상민이 차마 몰카임을 밝히지 못하는 찡한 순간이 연출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래 여행 본연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갔다. 이럴 거였으면 굳이 노인 분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상민이 아닌 것처럼 분장 또는 위장을 해도 되는 것이었다.

김동현과 어머니가 20년 뒤로 시간 여행을 하고 이봉원과 박미선이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사이, 이상민은 어머니를 위한 몰래카메라에만 열중했다. 물론 이상민의 시간 여행은 다음 주에도 계속 되고, 다음 주 분량에서 미래 여행의 의미가 드러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상민의 다음 미래 여행이 딱히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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