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곳은 역시 ‘검찰’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고,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곧바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640만 달러의 의혹을 쫓던 검찰 수사를 타깃으로 삼을 거란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검찰이었다.

그동안 검찰은 부인인 권양숙씨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에게 건너간 640만 달러의 최종 수령자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확신’해왔다. 재임기간에 이를 알았을 것이라며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적용을 자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주 중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기도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지켜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을 당혹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검찰은 어느 때보다 신속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찰은 ‘수사종결’을 언급했고, 오후 1시에는 애도성명을 발표하더니, 결국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6시간 만에 공식적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의 말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했는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또 “노 전 대통령의 사법 처리 수위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검찰 내부 인사들과 의견을 취합한 결과였단다. 참으로 신속한 대처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과정이 어색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강도와 혐의 ‘확신’에 비해 그 끝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셈이다. 검찰은 그것을 알기나 할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버린 수사가 결국은 검찰 스스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수사’였음을 자인하는 꼴이란 사실을.

▲ 5월 23일 SBS 뉴스 보도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 측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했던 지난 4월30일 밤 검찰은 ‘서면 대질’로 충분하다던 당초 입장을 바꿔 노 전 대통령 측의 ‘동의’도 없이 박연차 회장과의 대질 신문이 있을 것이라고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이를 거부하자 “누명을 쓴 사람은 통상적으로 대질을 원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검찰의 말은 ‘예우 따로 욕보이기 따로’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또 검찰은 ‘불구속 기소는 수사 초기부터 검찰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찰이 그동안 640만 달러의 최종 목적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거라고 확신하며 추진했던 수사와, 검찰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은 뭐가 되는가. 아들 건호씨도, 부인 권양숙씨도 피의자 신분이 아닌 단지 참고인이라고 검찰은 밝혀왔다. 타깃을 정확히 노 전 대통령으로 조준한 것인데, 포괄적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하면서 불구속 기소 방침을 정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더 황당한 사실은 오늘 검찰이 발표한 수사종결이 사실상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종결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언론매체들은 ‘목표’를 잃은 검찰수사라며, 노 전 대통령 수사종결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 세계일보 :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검찰은 지금까지 진행해 온 수사를 계속하되 서둘러 종결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지난 2월 정기인사를 통해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를 새롭게 개편한 뒤 착수한 수사는 사실상 100여일 만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 YTN 보도 : “박연차 게이트의 다른 축인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나 정관계 인사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사도 지연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일단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천신일 회장에 대한 조사는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주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은 상당 기간 미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들은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빠른 종결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는 지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천신일 회장을 시작으로 여권실세에 대한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정반대다.

이상하지 않은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거대하고 복잡한 박연차 리스트의 계보도에서 가지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턴가는 마치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전부인양 검찰 수사가 진행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다는 것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목표가 노 전 대통령이었다는 의혹을 반증하는 셈이다.

검찰수사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다시 말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확신해 왔었다. 그런데 궁금하다. 다음 주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발표한다던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들을 찾아냈을까?

▲ 4월 13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그동안 검찰은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알았다면 노 전 대통령도 알았을 것이고, 배우자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며, 아들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엘리쉬&파트너스’에 박연차 회장의 500달러 중 일부가 들어갔다는 것은 곧 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정황상의 논리만을 내세워왔다.

그러다 오늘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검찰은 그저 수사종결을 선언해버렸다. 결국 그동안 640만 달러의 최종 목적지가 노 전 대통령일 거라며 언론을 통해 꾸준히 흘려왔던 검찰의 ‘확신’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함께 끝나버리는 셈이다.

그동안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두고 노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의 한판승으로 묘사했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악연을 소개하고, 이번에는 누가 이길까를 가늠해왔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종결된 시점에서 검찰 수사를 다시 들여다보니 노 전 대통령은 검찰과 싸웠던 것이 아닌 노무현 자신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확정짓고 ‘정황’을 양산해가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미지를 흠집내기 바빴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미지에 나는 흠집과 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노무현 대 노무현의 싸움. 검찰의 수사종결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수사는 형평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확실히 박연차 리스트에는 노 전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검찰의 수사 기간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와 비교도 많이 됐다. 때문에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는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느 때보다 수사를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 결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혐의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고 해서,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도 함께 끝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같은 강도로 남은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해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수사였다는 의혹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종결하기엔 그동안 검찰의 수고(?)가 너무도 많았고,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희생도 너무 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