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정세균 국회의장 흔들기는 이제 거의 ‘땡깡’의 수준에 이르른 것 같다. 정치를 모독하는 수준이다. 이런 처신이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에게도 독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워낙 수준 낮은, 거의 코미디 수준의 진흙탕 싸움을 만들어 놔서 해설하기도 쉽지 않다.

30일 현재 시점에서 가장 황당한 내용의 ‘코미디’는 ‘우씨 천지’ 논란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29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은 또 다른 증거가 있다며 공개한 영상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영상에서 정세균 의장은 “우리 송 최고 잘하더라”, “우씨들이 뭐 그냥, 완전 우씨 천지야”라는 등의 발언을 하고 있다. 여기서 ‘송 최고’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을 지칭하는 걸로 추측된다. ‘우씨 천지’라는 것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를 언급하면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를 같이 묶어 한 ‘농담’의 일부인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김진태 의원의 주장은 국회의장이 특정한 야당 의원을 칭찬하면서 시시덕거리며 농담이나 하는 게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거다. 한 마디로 하자면 ‘쟤네 편’이라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거다. 이런 주장은 유치하다. 김진태 의원은 또 자기들이 배출한 역대 국회의장들은 중립을 지켰다고 말하는데, 같은 기준에서 말한다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날치기’를 할 때도 한나라당 소속 국회부의장과 서로 역할분담을 해 자리를 비켜줬을 정도이다.

농담 같은 얘기엔 농담으로 받아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30일 최고위원회에서 “나도 우씨인데, 우리 문중에서 강력하게 항의해야 겠다”고 발언했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논쟁이 겨우 농담의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고, 이것을 또 언론이 해설해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은 슬프다.

정세균 국회의장 (연합뉴스)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유치하다는 걸 김진태 의원이 과연 모르겠는가. 우습게 보이는 걸 무릅쓰고 이러는 것은 새누리당의 정세균 의장 흔들기가 ‘가랑비에 옷 적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의 미국 방문 기간 중에 금품을 살포하고 부적절한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 빌미로 심지어 형사고발까지 했다.

그러나 정세균 의장 측 해명을 보면 새누리당의 이러한 문제제기가 어떤 비리 고발의 ‘결정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버’를 하는 이유는 별 것 아닌 소재들이라도 ‘말’을 만들기 시작하면 공격을 받는 사람 입장에선 상처가 되는 게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가랑비도 맞다 보면 옷이 다 흥건히 젖기 마련이다.

애초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농성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세균 의장의 별 것 아닌 문제를 트집잡아 ‘대권’으로 연결시키고 어마어마한 불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거의 완벽한 일일 드라마적 세계를 완성시킨다. 국회의장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여소야대의 현실을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거다. 상식인의 관점에선 그저 우스운 설명이지만, 정권과 여당에 우호적인 사람들에겐 이것만큼 세상을 잘 설명하는 말도 없다. 실제로 이 사태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의 뚜렷한 결집 현상이 포착됐다.

새누리당이 하필 국회의장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정치를 대하는 특징적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가 되는 국면마다 ‘무능한 국회’와 ‘일하는 정부’를 대비시키며 정치 불신과 혐오를 조장해왔다. 국회가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발목을 잡아 경제활성화를 못하고 있다는 지난해의 ‘불어터진 국수론’과 같은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이 의회정치를 식물 상태로 만들어 놓고 이런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악의적’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새누리당의 이른바 ‘투쟁’도 마찬가지다. 의회민주주의는 국회의장이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지킬 때가 아니라 입법부가 자신의 권능을 당당히 행사할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해 자기도 포함된 의회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국정감사도 보이콧하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선 이번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퇴각하면 원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고 당이 청와대의 통제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국회의 본질적 임무보다 레임덕 방지가 여당에겐 더 우선이다. 이쯤 되면 ‘자해’라고 불러야 한다.

레임덕은 기를 쓰고 방지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게 아니다.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에서 레임덕은 순리이다. 물론 권력의 입장에선 레임덕을 늦추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일정한 한계에 도달했다면 입장이 다른 정치세력을 포용하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난 4·13 총선 이후 ‘협치’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여소여대 국면이 조성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맥락도 작용했다. 즉, 이게 ‘순리’다.

순리를 거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의 ‘복심’이라던 이정현 대표가 뜬금없이 ‘국감 복귀’를 자당 소속 의원들에게 권유하는 단독플레이를 감행하고 비박계 의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권력다툼의 차원을 넘어 정상 궤도로 복귀하고자 하는 일종의 본능이다. 30일부터 새누리당 소속 인사들이 ‘정세균 씨’를 ‘정세균 의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제 이런 황당한 투쟁을 지속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3당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하면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확고하게 규정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 방안 마련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또 “입법부 수장이 대인적 풍모를 국민들께 보여줘야 한다”고도 발언했다. 정세균 의장이 ‘명분’을 주면 이제 그만 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단식 닷새째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눈을 감은채 누운 자세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상식으로 보자면 주말을 경유해서 어떻게든 ‘좋은 그림’을 만들어 다음 주에는 새누리당이 국감에 복귀하는 시나리오가 가동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정세균 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이 그간 퍼부은 비상식적인 공격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치정국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의 중립성’ 문제를 별개로 하고 국감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국감과 정세균 의장 문제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정세균 씨가 사퇴하거나 내가 죽거나’를 외치며 5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는 이정현 대표의 경우 ‘맨입으로’ 농성을 거두기는 어려우니 병원으로 실려 가는 방법을 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걸로 생각된다. 어느 경우든 정치를 말하는 사람으로서는 창피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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