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신 남성이 토이남의 1차 서류 전형이라면, 난 원서조차 내보지 못하고 이미 서류전형 탈락이 아닌가. 이런 제길.

2.
생각해보자. 당신이 속해왔던 모든 ‘문화적 집단’의 생성과 소멸이 결국, ‘소비’라는 한 마디에 의해 규정지어져 왔다는 사실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X세대’라는 신기루적인 호명은 어린 나이에 풍족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된 세대의 등장을 환영하는 언설이었을 뿐이었다. ‘N세대’ 역시 전자통신 영역으로 소비의 욕구가 무한 확장되던 시절에 도입된 명명일 뿐이었다. 결국, 정명론에 의해 가늠지워졌던 당신의 집단적 정체성들은 자본의 필요에 의해 조직된, 특수한 소비적 취향의 대중적 이식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반론을 제기 하기 힘들다.

3.
하지만 나와 당신의 의지로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했던 문화는 태생과 함께 ‘15초 칼라 광고’의 짜릿함을 숙명처럼 받드는 일이었고, 자본이 생산하는 ‘상품’에 필요 이상으로 한없이 열광해야 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다른 선택, 그런 건 없었다.

4.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적 삶’ 그 중에서도 ‘세련된’이란 단어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상품의 구매 혹은 소비 취향의 트렌드 세터가 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토이남’을 생각해보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남자 역시 소비신의 완벽한 보호와 통제 혹은 조작 아래서만 비로소 자유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
트렌드가 되어버린 어떤 아이콘이란 결국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주어야만, 누군가 공개적인 찬양을 해주어야만 비로소 당당한 외피를 입을 수 있는 것이 문화의 법칙 아니겠는가. ‘생산→광고→이름붙이기→유통→대중적 소비’라는 명확하고 순환적인 법칙을 거스르는 ‘아이콘’이란 그야 말로 문화적 꿈에 가깝다. 모든 대중 문화적 기표는 소비의 기의를 갖는다.

6.
자, 그렇다면, 각설하고 다시 토이남은 대체 누구인가?

7.
가장 멍청한 대답은 앞서 말한, 인구통계학적인 자격 요건을 반드시 갖춘, ‘토이’ 노래에 나오는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근데 그런 삶이 과연 뭔데?

8.
좋은 스테레오가 장착된 자동차를 타고, 때때로 니폰 스타일 말고 베스파나 하바나 같은 이탈리안 클래식의 스쿠터를 즐기며, 숏 헤어 종의 고양이나 그레이트 피레니즈, 골든 리트리버, 말라뮤트와 같은 큰 개를 키우며, 시럽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맥주와 오징어가 난무하는 끈적끈적한 고수부지는 혐오하며, 휴일에는 베이글 샌드위치를 들고 갤러리를 향유하며, 술은 즐기되 와인을 주종으로 가볍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른 체구 그리고 손가락이 긴 남자.

9.
습관과 취향, 주머니 사정과 살아가는 형편 모두에 두루 걸쳐지는 까다롭고 예민한 조건들에 당신은 얼마나 충족되는가? 쓰다 보니 토이남이란 결국, 남자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기 반영적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열거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얼핏 잡아도 연봉 4, 5천만원은 벌어야 한다. 토이남은 결국, 된장녀의 세련된 버전일 뿐일까?

10.

▲ ⓒKBS
아니다. 궁극의 한 포인트, 결정적 지점이 있다. 바로, 마른 체구 그리고 긴 손가락으로 지칭되는 정당한 까칠함이다. 토이남이 이전의 어떤 전형으로서의 남자들과 결별하는 지점은 바로 예민한 감성, 형언할 수 없게 섬세하지만 겉으로는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는 이중성에 있다. ‘뭐에 살고 뭐에 죽으며,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살아가는 모든 보통의 존재들, 둔탁한 남자들과는 달리 자기 안으로만 한없이 뻗칠 것 같은 남자에 대한 욕망 말이다. 그래서 독신이어야 하는 게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보면, 토이남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응답을 많지 않다. 토이남은 연애 상대로서의 남자가 아니다. 단지, 구태의연한 인류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이다.

11.
서류 전형에서 이미 탈락한 마당에서, 참을 수 없는 질투가 밀려든다. 토이남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긴장’하란 것이다. 소비신의 완벽한 보호를 받는 남성, 게다가 구태의연한 인류를 딛고 진화한 신인류가 주변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다. 토이남은 지글지글한 불판에 곱창을 구워 쌈장과 함께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어야 사는 맛이 드는 나와 당신 같은 육식남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인류 절반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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