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자해정치’로 연일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며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시킨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갑자기 의원들의 국감 참여를 요청하는가 하면,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어 이정현 대표의 권유(?)를 거부하기로 결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정치에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는 크게 세 가지 경우 중 하나 때문에 벌어진다. 첫 번째는 우리가 미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석하지 못한 경우다. 이런 경우는 전문가의 해설을 통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초유의 사태’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공개되지 않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이 경우는 보통 여러 해석과 추측의 대상이 돼 장삼이사들이 술자리에서 내놓곤 하는 ‘정치소설’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그야말로 ‘돌발상황’인 경우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정세균 의장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을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자중지란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기준, 즉 전문가의 해설을 통해 앞뒤가 분명해지는 성격의 사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28일 당원 2천명을 동원해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촉구 집회를 열었고 29일에는 일간 신문에 광고를 내고 법적 조치를 병행 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언론을 통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사과’와 ‘국감 복귀’를 주고 받는 나름의 중재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해빙’을 점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세균 의장 측 반응은 싸늘했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박지원의 언론플레이’로 상황을 정리하면서 ‘해빙’의 가능성은 멀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현 대표가 나름의 결단을 내리면 정국이 풀릴 가능성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출구전략’은 당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의아한 것은 정진석 원내대표나 정세균 사퇴 관철 비대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새로 갖게 된 조원진 의원, 당 내 친박 중진이라는 서청원 의원 등이 이정현 대표의 발언에 모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정현 대표의 발언이 적어도 지도부 및 중진들과의 면밀한 검토 끝에 나온 출구전략이 차원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정국은 이정현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축소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8일 “나의 카운터파트너는 원내대표들”이라고 발언했다. 정세균 의장의 말에 따르면 새누리당 측 ‘카운터파트너’가 되는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주장을 그야말로 단칼에 잘랐다. 이제 아무리 정진석 원내대표가 함께 단식 농성을 한다고 해도 정세균 의장이 이정현 대표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건 ‘사실’이 돼버렸다. 국감에 복귀할지 여부는 원내지도부의 판단에 달렸고 이정현 대표는 외롭게 단식을 하거나 말거나 누구도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 돼버린 것이다. 이정현 대표가 이런 판을 스스로 의도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제 다음 가능성을 검토해볼 차례다. 범인들이 알 수 없는 정치적 맥락이 작용한 경우다. 이 사건에서 이런 관점에서의 핵심은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발언이 청와대와의 교감에 의한 것인지 여부다. 이정현 대표는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 나와 청와대와 수시로 통화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발언은 이 일정의 직후에 나왔기 때문에 ‘청와대가 국감 복귀를 요구했다’는 정치적 맥락이 형성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애초 이정현 대표의 단식 농성 돌입에 대해서는 국정감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런데 28일까지의 상황을 보면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이 박근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돼버린 미르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의혹제기에 속수무책이 되는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날까지 제기된 의혹은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직접 전경련에 압력을 행사해 기업들로부터 재단 출연금을 할당하게 했다는 의혹, 미르 재단의 주요 임원을 CF감독 차은택 씨가 좌지우지 했다는 의혹, 새로운 ‘비선 실세’로 지목되는 최순실 씨의 딸이 승마특기자로 이화여대 입학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청와대가 국감 증인 출석을 막기 위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 수리 이후 특별감찰관실 별정직 공무원들에게 퇴직을 통보했다는 의혹 등등이 모두 27~28일 간에 제기됐다. 재단 법인 심사 및 허가 업무를 맡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은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기침을 하다가 실려 나갔다. 이 정도면 국정감사를 보이콧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 나서서 ‘방어’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하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가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국감 복귀를 요구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청와대 참모 출신인 이정현 대표만큼이나 청와대의 요구에 예민한 걸로 알려진 ‘새누리당 정세균 사퇴 관철 비대위원장’ 조원진 의원과 같은 인물들이 이정현 대표의 국감 복귀 주장을 대놓고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감 복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비박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나경원, 정병국 의원 등이다. 청와대가 국감 복귀를 요구하였다면 당내에 이런 구도가 성립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세 번째, ‘돌발상황’이라는 규정이다. 사실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 돌입 자체를 돌발상황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판국이다. 중앙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28일 청와대 관계자는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 대해 “우리도 뉴스를 보고야 알았다”면서 “깜짝 놀라 만류를 해 봤지만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하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이런 인식은 새누리당의 주요 관계자들이 전하는 이정현 대표 단식 농성에 대한 원내지도부의 당혹스러워하는 반응과 일치한다. 중앙일보는 29일 기사에서 “청와대는 여야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정기국회에서 주요 입법 과제가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한 참모는 ‘야당이 김재수 장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는 진상이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야당에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정현 대표는 이미 실패한 정치인으로 밖에 평가될 수 없다. 짧은 생각으로 사상 초유의 정국 경색을 초래했고 집권여당이 국회 내의 권능을 포기하게 만든 사고를 쳐놓고 이를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오락가락 행보는 ‘정치적 우울증’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일부 여의도 언저리에서는 이정현 대표가 대표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그렇잖아도 당료 출신이라는 이유로 여당 중진 등에 무시를 당해왔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할 게 아니라 차라리 이정현 대표가 스스로 사퇴를 선택하는 게 어떨까 한다. 별 것 아닌 권력이라 할지라도 내려 놓아야 상식이 보이는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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