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에 관련한 주류 해석

사무라이 조. 그님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인가?! 에도시대 초기의 간류도(巌流島). 나룻배에 몸을 실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태양을 등에 지고 노(櫓)로 만든 목검으로 사사키 코지로[佐々木小次郎]를 단타에 떡실신시켰던 바로 때가 그 기원이라는 것이 주류 해석이다. 이에 따르자면 일본 열도에서 무사시의 기마에[好期]와 코지로의 곤조[根性]는 세월에 바래지 않고 더욱 칭송되어, 300년 후 현해탄 너머 남한반도에 제국주의란 장검을 휘두르는 일본 순사를 탄생시켰다 하는데.

일제강점 당시 순사라는 말만 들어도 우는 아이가 눈물을 그쳤다고 하니, 순사야말로 곶감과 호랑이를 대체하는 폭력 세계화의 첨병이었던 셈. 순사들 폭력앞에 우리네 사람들은 지혜와 슬기와 무력으로 저항했지만, 굴종으로 안전의 길을 택한사람들 또한 있었다. 동족중에 변절자는 더욱 냉혹하고 잔인한 것이 세상 이치던가. 어떻게든 웃놈들에게 더욱 독종으로 보여야 살 수 있다는 그네들의 비굴한 사정을 무어라 욕해야 하는가. 일제의 압박과 내부 변절자들에 신음하던 우리네는 드디어 광복을 하게 되나 기쁨의 순간은 짧았다. 순사는 경례의 방향을 승만 리에게 돌린 후 명찰을 경찰(이라 쓰고 짭새라 읽는다)로 갈아타고 고문, 추적, 폭행의 비기를 안보, 질서, 불범엄단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백주 대로에서 야밤의 지하철역까지 폭력경찰의 역사적 비극은 6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 ⓒ참세상

어떠한가? 셔터스피드를 짐작케 하는 봉 끝의 힙합 무브먼트, 강렬한 다크포스를 풍기는 전경(이라 쓰고 바퀴벌레라고 읽는다.), 폭력앞에 그대로 노출된 하얀 맨살의 사람들. 이런 살벌한 풍경이 이천만 수도권 시민의 영원한 친구, 지하철 역사 내에서 일어난 것이다. 2009년 5월1일 119주년 세계 노동절, 이 장봉을 휘두르는 자, 바로 사무라이 조의 탄생 순간. (여기서 사무라의 조의 봉이 1.5m이니 무사시의 이천일류(二天一流, 와키자시+카타나)라고 하기 보다는 사사키의 간류(岩流, 장검)라고 보는 것이 옳다느니 하는 등의 논의는 제외하도록 한다.)

‘나는 억울한 한 명의 시민이고, 장봉은 그저 취미였을 뿐이고’

사무라이 조의 탄생은 공권력의 이름으로 거리의 평화가 때려맞는 광경이라 만천하의 인민은 놀라고야 말았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을 눈앞에 두고 남한의 인민은 재빨리 서로에게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조를 엄벌하자’, ‘등에 비껴 맨 후라스틱 장봉을 건들면 안된다’, ‘사무라이 조의 배후에는 경찰청이 있다’ 등 사실과 의견이 혼합되어 사무라이 조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터넷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러다 갑자기 인터넷에서 사무라이 조는 사라졌다. 백주대로에서 장봉을 휘두르던 그 기백이 어디로?! 사무라이 조가 자신이 사라진 연유에 대한 읍소를 했는데 긍휼히 여기어 들어보도록 하자.

“나는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사진 하나만 보고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른 양 글이 떠돌아 다녔다.”
“우리 부대 홈페이지에 터무니없는 비난 글이 많았다.”
“이런 글이나 사진 등은 사실 왜곡이라고 생각해 권리 침해 신고를 했다” “당시 우리 대원들 가운데는 시위대에게 끌려가 코뼈가 부러진 경우도 있었다.”
“나는 시위대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 시위대한테 대원들이 맞으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니까 이를 떼어놓기 위해 장봉을 휘두른 것”, “당시 현장에 취재 카메라만 30대가 넘었다. 만약 내가 때렸다면 그 모습이 찍혔을 텐데 그런 장면은 없다.”

(‘장봉 휘두른 경찰간부 사진’ 왜 사라졌지? 2008. 05. 08 오마이뉴스, 2009. 05. 18. 15:42 접속)

(‘ 2008. 05. 08 오마이뉴스, 2009. 05. 18. 15:42 접속)

사무라이 조의 비분강개를 들으니 의문에 의문이 생겨난다. 정리해보자. 정말 어떤 일이 있었는가가 주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질 수 있는 강제적 행정조치가 과연 저러한 방법으로 행해져야 하는가의 문제 또한 제기될 수 있다. 사실과 왜곡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사무라의 조의 사유 역시 검토되어야 한다. 사무라이 조의 일격이 담긴 장면이 있다면 사무라이 조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결국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엇이 어떠한 맥락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위의 문제들을 제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느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사무라이 조의 간류도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가를 알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조의 발언대로 아무도 때리지 않는 허공삽질도를 구사했다고 한다면 이를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사무라이 조에게도 그날의 정보는 너무나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원들이 시민들에게 맞는 애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장봉을 휘두른 사무라이 조는, 이처럼 모두가 알아야 할 정보에 대해서도 봉(封)해 버린다. 이름하야 임시조치라는 30일짜리 장봉. 이로 인해 인터넷에서 사무라이 조는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임시조치라는 새로운 장봉의 이름을 너무나도 생소하게 느끼실 강호의 제헌들을 위하여 임시조치가 무엇인지 이어서 적을까 한다.

‘사무라이 조’, ‘어청수’의 도피처 - 임시조치

한번 알아보자. 마음아픈 연예계 뒷이야기도 아니고, 헤어진 옛 애인 근황도 아니다. 경찰복을 입고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국민을 대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직접 알아보자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사무라이 조’를 검색해 보고 링크를 타고 들어가보길 바란다. 우리앞에 펼쳐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뭐? 뭐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따르면 권리침해 신고가 접수되면 포털 등의 사업자는 삭제 또는 한 달간 해당 글을 블라인드 처리[임시조치] 해야 한다. 권리침해가 공적기관에 의해 확인된 뒤 삭제 또는 블라인드 조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가 접수되면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위의 블라인드 조치를 보게 하는 근거이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임시조치 이후 어찌해야 하는지 명시하지 않아 포털마다 정책도 다르다. 어쩔! (daum의 권리침해신고 처리 절차, naver의 권리침해신고 처리 절차, 2009. 05. 19. 11:31 접속) 블라인드 조치 30일 이후 다음에서는 명예훼손 확인시 삭제 / 명예훼손 여부 미확인시 복원을 한다. 네이버의 경우 30일 이내 게시자 재개시 요청 없을시 삭제 / 재개시 요청을 하면 형식 요건을 검토(누가? 어떻게?)하여 재게시 후 관련기관을 통해 당사자 간 해결을 유도한다.

<다음과 네이버의 임시조치 이후 처리 과정>

업체

다음

네이버

삭제

관련기관의 명예훼손 결정문 확인될 경우

30일 이내 재게시 요청 없을 경우

복구

명예훼손 여부 확인 못하는 경우

재게시 요청 형식요건이 타당할 경우

“올타꾸나!” 우리의 사무라이 조는 임시조치을 발동시켰다. ‘거기 포털이졈? 저 사무라이 존데요. 저 곤봉으로 사람 안쳤거든요? 사람들이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대원들로 막은 곳에서 1.5m짜리 장봉 휘두르기만 했거든열?! 근데 이거 제 초상권이랑 그거랑 또 어쩌구 해서 명예훼손 이예염. 언능 삭제해주삼. 안그러면 ㅋ 님, ㅋ’ (사무라이 조의 전 상관인 어청수 나으리께서 동생분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대해 임시조치를 빠방하게 날리신 전례가 있다. 아마도 그는 그의 옛 상관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과 충성심으로 동일한 행위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를 장봉으로 휘둘러친 그가 이제는 표현의 자유마저도 임시조치에 빌붙어 억압하고 있다. 이쯤되면 사무라이 조가 나쁜지 마구 뒤섞여 버린다. 사무라이 조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의 양심에서 대답해 줄 것이다. 또는 고통받으신 분들과 사무라이 조 사이에서 법정 공방으로 사실 여부가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임시조치의 해악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야기를 더 해야 하겠다.

명예훼손이라면 양자간의 사건일 것이다. 글 게시자의 명예훼손 사실은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다.(아니면 포털업자가 판사하게?!) 그러나 현행 법률은 명예훼손 사실 확인 없이도 글을 30일간이나 포털의 임의대로 차단하게 할 수 있게 해 둔다. 반대로 글을 올린 사람은 ‘이 글에는 실제로 명예훼손의 요소가 없음’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찌 밝히라는 건지 게시자의 이의신청에 대한 절차가 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다. 인터넷 환경의 분쟁에 대해서 국가는 민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할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 어처구니 없는 임시조치의 막대한 힘을 빌어 사무라이 조는 각종 포털에서 알바생도 좀체 하기 힘들다는 광역삭제신공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저 신고만으로 남의 글 30일간 차단하는 기막힌 노릇!

표현의 자유는 임시조치로 막을 수 없다능!

공적인 업무를 행하고, 그 대상이 국민인 경우에 있어서도 공무원이 명예훼손이라며 포털에 꼰지르고 막아버리면 권력에 대해 무엇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임시조치는 이번처럼 공권력 입장에서 그저 불편한 이야기들이 올라오면 ‘이거 권리침해임. 포털님하 30일간 차단 ㅋ 해주삼 ㅋ’ 하면 일단 30일간 게시물 차단이다. 그 사이에 논의는 식거나 언론을 통해 박제화되어 버린다.

더욱이 이번 사무라이 조 관련 임시조치들은 죄다 애꿎은 개인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언론사들이 사진 올리고 실명 밝히는 건 내버려두고, 명예훼손 없다는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따지고 증명해야 하는 개인들의 입을 죄 틀어막고 있는 것. 치사하고 비겁하고 완전 빤쓰같은 짓거리다. 그동안 정부기관이나 일부 언론사는 특정 게시물을 지목하지 않은 채 ‘내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삭제해달라’는 식의 포괄적 요청을 남발해왔다(한겨레, 2009. 04. 28., 2009. 05. 18. 16:42 접속) 하니 임시조치야 말로 표현의 자유를 값싸고 편하게 눌러대는구나 … 라고 좌절하며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남한반도의 인민이 아니었다.

임시조치에도 불구하고 사무라이 조의 소식은 임시조치건 뭐건 분노와 경악속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낡은 제도는 사람들의 생각과 하고자 하는 바에 죄의 딱지를 붙인다. 사람들은 죄를 짓게 됨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더 신선한 공기를 찾아 다른 곳으로 접속했고 왼손은 거들 뿐.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지구 모퉁이에서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이거 하면 나쁘다, 저거 하면 못됐다, 이래저래 갈군다고 숨막혀하고 암담해 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그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이를 제도로 어찌 욱죄보려면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뉴칼레도니아에 있는 어느 서버를 상대로 분노해야 하는 궁색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블로그가 막히면 저 블로그에서 터지고, 큰 게시판이 잘리면 작은 게시판이 붙이고, 남한에서 안되면 해외에서 주루루룩, 저 서버에서ㅤㅆㅘㄹㅤㅆㅘㄹ, 열에 열 골 정보들이 각자 퍼져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임시조치 크리뜨면 분노의 포스팅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트랙백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낙양 지가(洛陽紙價)[포스팅이 세상에 널리 퍼져 애독됨] 공유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EE!! (유산가 遊山歌, 비틀어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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