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올해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꼽혔으며, 제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도 상영하는 김영조 감독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 사람들과 STX 조선소, 청각장애 해녀가 운영하던 간이 횟집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점바치 골목의 철거가 논의 되던 2014년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고, 이듬해 점바치 골목이 완전히 철거되었을 때 촬영을 완료했다.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조선소 용접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정근 감독의 <그림자들의 섬>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자들의 섬>이 현재 사측을 상대로 복직 투쟁 중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동지들의 연대기를 다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당시 영도다리 밑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지역 발전 혹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고, 그 어떠한 가치보다 사람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컷

현재 부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 철거의 문제를 다룬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에도 오민욱 감독의 <범전>이 있다. <범전>은 지금은 부전동으로 흡수통합되어 사라진 범전동 일대를 다룬 실험다큐멘터리 영화로, 당시 범전동엔 미군부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되었다.

과거 범전동은 기지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조차 자신이 범전동에 살고 있는 사실을 숨기기 바빴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지역개발 논리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점바치 골목 또한 범전동과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시 당국은 재개발 이후 점바치 골목을 활성화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하지만, 기약 없는 허공 속의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컷

재개발, 철거로 삶의 터전이 사라져버리는 경우는 비단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시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제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공동정범>(김일란, 이혁상 연출)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같은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는 강유가람 감독의 <이태원>은 이태원에 위치한 미군부대와 기지촌이라는 굴곡진 현대사 속 아픈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현재와 이어나갈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포함 앞서 언급한 작품들 모두 이미 사라졌거나, 혹은 앞으로 사라질 것 같은 공간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선택한 소재와 장소는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이지만, 카메라가 중점으로 다룬 것은 수십 년 가까이 영도다리 밑에서 삶을 일구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영도다리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영도다리에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새로운 영도다리에 걸맞은 정돈된 경치를 원하고 그대로 밀어붙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컷

결국 사라져버린 점바치 골목, STX 조선소, 영도 어디 해안가에 위치한 간이 횟집의 모습을 오롯이 기억하는 것은 카메라이다. 카메라는 한때 영도다리 밑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비록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카메라가 담은 이미지를 통해 확인하고 되새기게 된다. 경제개발 논리에 의해 누군가의 터전이 자꾸만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지금,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기억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다.

한편,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에 이어 제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부분에 진출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다가오는 27일 16시 메가박스 파주출판도시 3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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