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이제껏 없었던 참여형 토크쇼! <말하는대로> (9월 21일 방송)

또 강연? <김제동의 톡투유>도 있는데 뭐가 다르지? 자기계발서에 나온 조언들과 뭐가 다를까? 길거리 강연, 과연 재밌을까?

JTBC <말하는대로>의 기획의도를 보고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한때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방송도 스타 강사들을 내세워 일명 ‘특강쇼’ 형식의 프로그램을 우후죽순 만들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강연 형식에서 그나마 조금 벗어나 관객과의 소통을 집어넣은 것이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인 <김제동의 톡투유>다.

JTBC <말하는대로>

그렇다면 <말하는대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경쟁력은 있을까. 제작진은 시청자의 이런 의문점들을 미리 파악한 것인지, 오프닝부터 시청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MC 유희열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할 데가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출연자 타일러는 “타인을 신경 쓰느라 움츠러드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래서 <말하는대로>가 필요하다고.

언뜻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고 생각하는 순간 유희열의 한 방이 들어왔다. “프로그램 의미는 되게 좋다. 근데 정말 드럽게 재미없을 것 같다.” 제작진의 기획의도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고 한다. 첫 회에서 프로그램의 의미를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고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것이 <말하는대로>의 정체성이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타일러, 이상민, 장유정 감독, 김동영 작가의 버스킹도 마찬가지였다. 포장이 없었다. 성공스토리가 아니라서 좋았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강요가 아니라서 더 좋았다. 김동영 여행 작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얘기했다.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결과 공황장애를 앓게 됐지만 그마저 무시하면서 콤플렉스 극복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김동영 작가. 남들보다 앞서나가야 하고 절대 쉬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김동영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요즘 책 안 읽어요”라고 고백한 것을 계기로,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상민과 장유정 감독은 자기계발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위로했다. 돈으로 사람 가치가 매겨지고 집값이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하는 시대, 이상민은 “모든 기억과 추억과 일상이 모두 가치”라고 얘기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렇게 하면 스펙 쌓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시대에, 장유정 감독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아무도 당신에게 알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장점이 아니라 결점을 드러낸 버스킹. 질문이 아닌 공감과 위로가 가득했던 현장. 앞으로의 <말하는대로>가 던지는 화두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 주의 Worst: 대체 누구한테 사이다?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 (9월 22일 방송)

MBN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의 클로징 멘트는 “웃음과 행복을 주는 사이다”였다. 그러나 묻고 싶다. 대체 누구에게? 어느 대목이 사이다?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는 크게 토크와 상황극으로 구성된 예능이다. 전반전에서는 출연자들이 정해진 주제에 대해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후반전에서는 사회적 이슈를 상황극으로 꾸며본다. 특히 상황극을 통해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겠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포부다.

MBN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방송이다. 아내의 서툰 요리 솜씨를 타박하는 변기수는 애교 수준이었다. 변기수가 5년 째 요리 솜씨가 늘지 않는다는 아내에 대해 얘기하면서 매번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옆에 있던 여성 출연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아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변기수를 걱정하는 멘트들이었다. “남편들은 그런 거짓말하기 힘들 거다”, “오늘도 맛이 없으면 그건 맛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식이었다.

아무리 웃음을 위해 양념을 섞고 약간의 과장을 더하는 게 토크쇼라지만, <코미디 청백전 사이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여성들의 감정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변기수는 아내가 라이터에 적힌 ‘바나나 마사지숍’이라는 명칭에 화를 냈던 에피소드를, 정선희는 술에 취한 나머지 아내에게 “아, 장마담 너무 간지러워”라고 말했다는 한 남자 개그맨의 일화를 소개했다. 두 상황 모두 아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분노할 만한 상황임에도, 제작진은 하단 자막을 통해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 정도로 희석시켰다.

후반전 상황극에서는 아예 여성을 악의 축으로 설정했다. 상황극 주제는 직장 내 성희롱, 부모의 재산을 탐내는 불효자식이었다. 주제만 보면 시의성 있는 사회적 이슈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깔려있는 사고방식은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져있다. ‘직장 내 성희롱’ 상황극에서 박나래는 부하 직원들에게 19금 농담을 던지는 못된 상사로 나왔고, ‘무자식 상팔자’ 상황극에서 정선희는 시어머니의 노후 자금을 노리는 얌체 며느리로 등장했다.

마지막까지 불쾌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미스 사이다 선발대회’에서 춤을 추던 홍록기는 느닷없이 브래지어를 치켜 올리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그 순간 스튜디오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고, 진행자 강수정 옆의 말풍선에는 ‘어머 내 스타일이야’라는 어이없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대체 어느 대목이 사이다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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