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이 다가온 이 시점에서 항상 방송이나 학교에서 듣는 말이 있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책을 읽자’라는 일종의 규칙 같은 이 말은 별로 와 닿지 않는 슬로건 중 하나였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캠페인은 다양하게 펼쳐진 반면,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인구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여기에 올해 3월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국내 일반서점의 수는 2,116개(순수 서점 1,559개)로 집계되는데, 독일의 도서서적상협회(Börsenvereins des Deutschen Buchhandels)가 집계한 2015년 일반서점 수 6,200개(협회가입 서점 수 3,204개)에 비해 1/3수준에 불과하다. 인구 당 서점 수를 비교하면 한국은 24,409명 당 1개, 독일은 13,063명(협회가입기준 25,279명)로 나타난다. 중소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독서량은 사람들이 책을 구매하기 위해 어느 정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안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독일은 도서정가제 정식명칭 : 도서 가격준수의무 규정(Gesetz über die Preisbindung für Bücher)를 통해서 동일한 서적은 모든 지역에서 같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독일 연방 전체를 시장으로 획정하고 있는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성장으로 지역기반의 중소규모 서점들의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는 우리네 상황과 동일하다. 또한 도서정가제의 내용에 의거하면 동일한 서적의 가격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서점의 유통마진을 낮춰 배송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가능하므로 대형서점과 경쟁해야하는 중소서점들의 경우 마진이익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독일의 중소서점들은 자신들의 활로를 마련하고자 공동체 조직 및 기타활동들을 통하여 입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본다.

BUY LOCAL

BUY LOCAL은 독일 전역으로 운영되고 있는 소매상들의 연합체다. 서점은 물론 식당에서부터 악기점까지 모든 분야의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판매네트워크로 대형유통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의 성격을 띤다. ‘내가 찾는 모든 것들은 내 주위에 있습니다’(Alles was ich suche, finde ich in meiner Nähe)라는 슬로건으로 운영되는 BUY LOCAL은 지역 내 소매상들의 판매촉진과 운영효율화를 목표로 참여를 이끌고 있다. 사업의 목적에 따라 BUY LOCAL은 미디어를 통한 공동홍보활동, 공동로고를 이용한 주민들의 인식 확산, 사업운영훈련, 인증관리를 통한 서비스와 상품의 질 유지, 회원사 간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보완적인 활동 장려, 지역순회 유료강의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2015년 11월을 기준으로 BUY LOCAL에 참여하고 있는 서점의 수는 총 163개이며, 가맹서점들은 재고관리와 마케팅,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협력 뿐만 아니라 중소서점들의 소장도서 공동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운영, 서적수급 개선사업 등도 병행하고 있다.

BUY LOCAL 로고와 서점회원사 예시

'독립서점주간’(Woche unabhängiger Buchhandlungen)

2014년 처음 개최된 ‘독립서점주간’(Woche unabhängiger Buchhandlungen)은 중소서점들이 연합으로 운영하는 공동행사이다. 독립서점주간의 운영취지는 중소서점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독일 내의 독립서점과 개인서점은 지역문화와 사회활동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며, 그들이 위치한 지역에 기여할 의무를 갖고 있고, 독서촉진을 위해 이들은 소중한 역할과 지속적인 협력을 행해야하며, 좋은 문학작품의 소개와 작가양성에 대한 의무, 지역을 찾다아니며 초대와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운영방침을 통해 독립서점들의 중요성을 사회문화적 가치, 공동체의 역할, 지역 내 사람들의 문화 활동 창구로서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다. 독립서점주간의 가장 큰 행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독립서점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서’(Das Lieblingsbuch der unabhängigen Buchhandlungen)라는 슬로건으로 매년도 추진되고 있는 이 행사는 2015년도 10월 16일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 Buchmesse)에도 참여하여 선정된 도서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한 선정도서에 대한 소개 외에도 독립서점들이 개최하고 있는 이벤트(Veranstaltung)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연계를 추진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활동을 펼친다.

둘째는 독립서점주간 계획과 운영이다. 독립서점주간에 참여하는 회원사들이 독일 전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선정한 독립서점주간의 행사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독립서점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서’ 수상작 공개 후 선정도서와 후보도서들에 대한 홍보행사 및 부대행사들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금년도 사업은 작년보다 급증하여 총 300여개 이상의 중소서점이 참여하여 11월 12일부터 20일까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독일서적상연합과 피셔출판사, 독일문화청 등에서 지원받고 있다.

WUB 2015 회원사 목록

Buchbox

Buchbox는 2005년 베를린 내 Kastanienallee, Helmikiez, Boxikiez, Bötzowkiez 등에서 개점한 연합서점이다. 폐쇄된 공장과 창고부지, 건물 내 유휴 공간 등을 개조하여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Buchbox’는 친환경서점, 지역문화서점, 자선과 기부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함으로써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Buchbox’는 중형규모도 아닌 소형매장으로 분산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각각의 서점은 하나의 문화단체이자 행사주최자로 다양한 문화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 각 지점별로 설정하고 있는 콘셉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Kastanienallee: 2008년 개점.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지역에 위치. 예술과 문화잡지 및 기념품판매, 영어ㆍ스페인어 등의 원문으로 된 도서판매.

Kastanienallee 전경

Helmikiez: 어린이 이벤트 및 학교 프로젝트 연계 서점. 성인들을 위한 워크숍 및 소설, 생활도서들도 판매하고 있음. 2015년 5월 채식 음식점 오픈.

Helmikiez 전경

Boxikiez: 2005년 개점한 첫 번째 매장. 35평방미터의 소규모 서점. 지역문화센터라는 모티브로 운영되고 있음.

Boxikiez 전경

Boxikiez: 술집이었던 장소를 개조하여 만든 서점. 150평방미터 크기의 서점으로 문학, 서점, 아동도서, 예술, 건축, 사진 등의 서적들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음.

Boxikiez 전경

Buchbox는 친환경서점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회용품들을 일절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출판사들에게도 책 포장용 비닐사용 자제와 도서배달용 박스 되돌려주기 활동, 친환경공정상품이용 등의 참여를 이끈다. 기부활동은 독일 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1년부터 시작하고 있는 Buchbox의 기부프로그램을 소개하면 2011년 니카과라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Panarte의 활동지원, 2012년 어린이서커스단 Cabuwazi의 물품지원, 2012년 독일골수암환자를 위한 기증협회(DKMS) 지원, 2013년 콩고ㆍ아프가니스탄ㆍ체첸 등의 분쟁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지원 활동 등이 있다. 여기에 2014년부터는 독일 내 망명가족 어린이들과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선물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Buchbox의 운영방식이나 기부사업에서 나타나듯이 이들 활동은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소개한 활동들 외에도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도서추천행사인 Kinderbox도 운영하면서 문화단체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서점이다.

중소서점의 활로를 마련하기

우리나라에서 중소서점은 책을 구경하거나 구매하는 공간이지만 독일의 중소서점은 문화공간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집과 학습지로 가득 찬 우리네 중소서점과는 다르게 독일은 인문서적부터 일반잡지까지 다양하게 구성되는 문화공동체로써 역할을 수행한다. 지역민들이 소비자라는 점에 착안하여 추진하고 있는 BUY LOCAL 사업처럼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활동하기도 하고, 체인서점이 아닌 독립서점들이 연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나가는 사례도 있다. Buchbox처럼 처음부터 문화공동체이자 사회기부단체로서 활동하는 경우도 흥미롭다. 2016년 상반기에 발표된 통계자료를 보면 2015년도 가구당(2인 이상 가구) 한 달 책 구입비용은 책 한권 값도 안 되는 평균 1만 6천원, 한 달에 한권의 책도 안 읽는 9.1권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응답을 기준으로 보면 흥미롭게도 독일과 우리나라와 독서량 차이는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2015년을 기준으로 독일에서 1권~5권 이하의 책을 읽은 인구는 39%, 6권~10권이 19%, 10권 이상을 읽은 사람이 27%, 전혀 책을 읽지 않는 비율은 14%이다. 통계집계방식에서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독일인구 중 50% 정도가 1년 기준 10권 이하의 독서량을 보인다는 점과 비독서인구의 비중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통계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런데 체감하는 독서량은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대중교통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책 읽는 승객들이 쉽게 눈에 띠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라인을 통한 도서구매가 일상화되어 편안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로 인해 내용을 훑어보면서 책을 고를 수 있는 선택과 선별능력은 감소된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올려놓은 도서에 대한 평가, 제목과 작가에만 치중된 도서선택이 가져온 독서환경은 출판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방문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악순환구조는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대형서점의 확장과 온라인도서 판매매출증가로 중소서점이 위협받는 현실이다. 하지만 중소서점들도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서 활로를 찾고 있어 지역민들과 마을에서의 입지를 공고하게 하는 사례들도 있다. 중소서점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인구가 증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중소서점이 갖고 있는 의미도 재규정해야 한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보를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고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선택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이라는 특성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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