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청’을 자부했던 짤막한 시절, 딱 2번 황석영이 술자리 안주로 올랐었다. 한 번은 미당 서정주의 친일 경력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문학계의 쟁점이던 시절에 참 글을 맛깔나게 썼던 어느 선배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 그래도 미당은 시는 잘 쓰잖아. 황석영처럼 폼만 잡는 노인네보단….” 그리고 또 한 번은 어설펐던 ‘문청’ 생활을 정리한 계기 중에 하나이기도 했던 술자리였는데, 어느 동기가 말했다. “넌 아마 유명해지면 황석영처럼 잡글이나 쓸 것 같아.” 여전히 미당에 동의하지 않고, 잡글을 싸잡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래저래한 사연을 두고, 내가 문화연대 활동가 ‘짬밥’을 먹던 시절에 우연찮게도 황석영은 가장 덩치가 큰 문화예술단체였던 ‘민예총’의 회장이었다. 내가 그 ‘짬밥’을 5년 가까이 먹는 동안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만한 공식적인 일들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황석영을 보지 못했다. 보긴 봤다. 인사동에서 딱 두 번. 부산식당 밥자리에서 한 번, 솔잎 동동주가 유명한 청강에서 한 번. 물론, 인사할 ‘짬밥’은 아니었다. 활동가들을 ‘가방모찌’로 여기는 근엄한 회장님이셨다.

문화연대 활동가 ‘짬밥’을 정리한 뒤 딱 한 번 황석영에 관한 을 썼고, 단 한 번 그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수년 전 이문열이 ‘홍위병’의 설레발을 깠던 날, 지금은 ‘영춘왕’이라고 불리는, 당시 한겨레에 있던 어느 선배가, 밤 11시가 넘어서 황석영에게 전화를 했었단다. 통화의 목적은 이문열의 몰지각에 대한 질펀하고 준엄한 충고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단다. 술이 거나하게 올라있던 황석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문열 같은 어린 애를 상대하기엔, 자신의 체급이 너무 높다는 것’, ‘언젠가 자신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던 꼬맹이에게 충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곤 그 선배에게 덧붙였다고 한다. ‘니가 까라, 이문열.’ 그 선배는 마흔, 이문열은 그 보다 열댓 살 위, 황석영은 다시 그보다 열살 정도 더 먹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전날의 통화가 영 찜찜했던, 그 선배는 다음 날 다시 황석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술에서 깬 황석영은 전날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깍듯하게 자신이 정말 그랬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학습된 ‘예의’를 망각의 강으로 밀어넣으면 발휘되는 처연한 모습, 그 천박한 엘리트 의식과 지독한 허위로움을 그 선배는 살뜰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 한겨레 5월 14일자 5면.
그리고 다시 황석영이 전면에 나왔다. 중앙 일간지 1면 헤드라인도 장식했다. 말 깨나 한다는 이들은 모두 한 마디씩 보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진정 우스워한 이도 있었고(진중권), 어쩔 줄 몰라 한 이들(김종배, 유창선)도 있었고, 애써 자제한 이도 있었다(이명원). 여전히 말을 다 배우지 못한 나는 솔직히 그냥 그렇다.

진보 세력이 여전히 ‘독재타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그의 인식은 출옥 이후 동시대성과 상관없는 실천 결여의 삶을 살아온 그의 당연한 귀결이다. 앞서 말했듯, 문화 운동 5년 동안 그를 한 번도 못 봤더랬다. 김지하가 ‘촛불’을 모르는 것처럼, 그는 ‘진보’를 모르고 더군다나 세력으로서의 사회운동을 말할 겸양이 되지 않는다.

경력만으로 당대를 말할 수 없는 까닭과 벅찬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무식하면 용감해지고, 모르면 쉬워지는 법이다. ‘진보’를 모르긴 그나 조선일보나 엇비슷한 수준이다. ‘독재타도’를 외쳤던 것밖에 ‘진보’의 경험치가 없는 그의 정체된 인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중도’라고 표현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념의 지형도란 것이 참 보잘 것 없이 쓰이는데, 이념이 정치·경제학적 엄밀함으로 성립되기 보단, 특정 정치꾼이 서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좌/우를 나누는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명박이 중도라는 것은, 정치꾼 황석영이 보기에 그가 자신보다 오른쪽에 있다는 상대적 언설이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알타이족까지 거슬러 올라 당위와 명분을 찾고 있는 그의 집착적 ‘민족애’와 ‘남북관계’에 대한 강박 역시 시대의 전위, 엘리트를 압도하는 ‘구라’를 자부해 온 그의 허위의식이 빚어낸 황폐한 내면의 반영일 뿐이다.

나는 황석영이 엊그제 ‘변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 ‘변절’의 기원을 따지자고 한다면, 알타이족까진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을 더듬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명원 선생의 말처럼 ‘객관적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황석영은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다의 문제일 뿐이다.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이가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지 못한 것이라면 ‘무식’의 문제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파렴치’의 문제이다. 앞서 황석영이 시대를 말하기에 ‘무식’하다는 얘기는 했고 그는 파장을 노리고 작정한 듯 떠들었다. 상스런 표현이지만, ‘파렴치’하다고 밖에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시대와 불화하거나 친화하는 경계는 어떤 이들에겐 매우 얄팍한 차이일 수 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이념을 나눠 온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큰 틀에서 동참해서 가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내년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가 훨씬 좋은 방향으로 풀리고, 한반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이행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르게 읽혔다. 몇 단어를 바꾸면, 이명박 정부가 “큰 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노벨상 수상이 훨씬 좋은 방향으로 풀리고, 노벨상 후보가 아닌 노벨상 수상자가 됐으면 좋겠다”가 된다. 노벨상 말고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 그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정권의 홍위병으로 나선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어찌되었건, 존재감을 팔아 정권에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엔 성공했다. 언젠가 참여정부에 부역했던 어느 교수에게도 했던 말인데, “운동적으로 부패하고,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모든 것을 잃고 파산”하려는 황석영이 안쓰럽고 가소롭다. 쓰다 보니 광주민주화항쟁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그의 언급을 빼먹었는데, 가타부타 할 것 없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 어떨까 싶다. 배신이란 표현, 심정적으론 옳되 적합하진 않다. 실용을 강조하는 그에게 실용적 모멸감을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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