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아이템이 없어서였다”라는 고백이 기사의 첫 문장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껏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
<무한도전> 참가이유는? 개그맨 지망생‘이었던’ 것은 맞다. 2년여 백수생활에 왠지 모를 힘이 돼 줬던 <무한도전>에 대한 일종의 감사표시인 것도 틀리지 않은 말이다. 4년여 동안 대한민국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음에도 한번도 녹화현장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전의지를 불태우게 했던 것도 맞다. 경찰팀 시절, 경천동지할 특종이나 기획보다는 주로 몸으로 떼우는 게 능했던 스스로를 돌이켜 보건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다. 이 모든 말들, 방송이 나간 지 2개월이 다 되도록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는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편(3월21일)에 출전한 이유(기사, 한겨레 2월2일자)에 대한 구구한 설명이다. 아직도 심심찮게 전화가 와서 “방송 잘 봤다. 그런데 거긴 왜 나갔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무한도전>의 재방송은 어느 지역방송에서,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끝나지 않는 질문들, 딱 이말만은 못했다. “기사 아이템이 없어서였다~~규~~!”
문화부장도, 대중문화팀장도, 선임기자이신 선배도, “네가 수고가 많다”며 독려를 해줬지만 기사 아이템이 있었더라면, 나는 오늘도 구구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을….
<무한도전> 참가의 후유증은 컸다. 방송 직후 매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수십통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한 누리꾼의 ‘잠입 취재가 보기 좋았다’는 댓글 한번에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누리꾼 수사대가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사에서도, 사석에서도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지만, 잠입이라는 말이 거슬렸는지 한 누리꾼은 나의 대학 학력 등의 개인정보를 캐내고 <무한도전> 김태호 피디의 학력까지 들추며 “당신들의 과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이들은 친구였다”는 다소 재미있고 황당한 폭로를 했다. 이 자리를 빌어 김태호 피디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해야 겠다.(김 피디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셨더군요. 제가 그 옆에 있는 과 맞더라구요. 저도 신기했어요. 우리 한번쯤은 스치고 지나치진 않았을까요? 하하하….)
11월, 도전에 나서겠다고 원서를 써놓고 1월까지 2개월 동안 연락이 오지 않는 무한도전 제작진을 원망하면서, 다시 달력을 뒤지고, 트렌드를 뒤지던 차에 설날을 며칠 앞두고 “목요일인데 직장을 쉬고 나오실 수 있냐”는 제작진의 낭랑한 목소리는 연휴 직후 아이템을 걱정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빛이었다. ‘쪽팔림’은 순간이며 ‘아이템’은 1주일의 안락을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쫄쫄이를 바지 속에 감추고 벽을 붙잡고 괴성을 지르는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아이템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아이템이 없어서” 양잿물이라도 먹겠다는 심정인 월급쟁이의 비루한 일상은 온전한 기자 개인의 몫이다. 그 비루한 일상을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고 드마라, 예능 등 제작현장으로 달려간다. “기사가 살아 움직여. 잘 썼는데”라는 어린 후배의 위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막내아들 기사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 더 솔직하게는 지금 이 능력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함으로 아이템 발굴의 장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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