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아이템이 없어서였다”라는 고백이 기사의 첫 문장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껏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
 

▲ <무한도전> ‘돌+아이’ 선발대회에 참가한 하어영 기자(오른쪽)가 299번 참가자 김정우씨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299번 참가자의 친구가 촬영했다.
<무한도전> 참가이유는? 개그맨 지망생‘이었던’ 것은 맞다. 2년여 백수생활에 왠지 모를 힘이 돼 줬던 <무한도전>에 대한 일종의 감사표시인 것도 틀리지 않은 말이다. 4년여 동안 대한민국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음에도 한번도 녹화현장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전의지를 불태우게 했던 것도 맞다. 경찰팀 시절, 경천동지할 특종이나 기획보다는 주로 몸으로 떼우는 게 능했던 스스로를 돌이켜 보건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다. 이 모든 말들, 방송이 나간 지 2개월이 다 되도록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는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편(3월21일)에 출전한 이유(기사, 한겨레 2월2일자)에 대한 구구한 설명이다. 아직도 심심찮게 전화가 와서 “방송 잘 봤다. 그런데 거긴 왜 나갔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무한도전>의 재방송은 어느 지역방송에서,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끝나지 않는 질문들, 딱 이말만은 못했다. “기사 아이템이 없어서였다~~규~~!”
문화부장도, 대중문화팀장도, 선임기자이신 선배도, “네가 수고가 많다”며 독려를 해줬지만 기사 아이템이 있었더라면, 나는 오늘도 구구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을….
 
<무한도전> 참가의 후유증은 컸다. 방송 직후 매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수십통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한 누리꾼의 ‘잠입 취재가 보기 좋았다’는 댓글 한번에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누리꾼 수사대가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사에서도, 사석에서도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지만, 잠입이라는 말이 거슬렸는지 한 누리꾼은 나의 대학 학력 등의 개인정보를 캐내고 <무한도전> 김태호 피디의 학력까지 들추며 “당신들의 과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이들은 친구였다”는 다소 재미있고 황당한 폭로를 했다. 이 자리를 빌어 김태호 피디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해야 겠다.(김 피디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셨더군요. 제가 그 옆에 있는 과 맞더라구요. 저도 신기했어요. 우리 한번쯤은 스치고 지나치진 않았을까요? 하하하….)
 
▲ 3월21일 방송된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편에 참가한 하어영 기자의 모습. ⓒ화면 캡처
기자 개인에게도 영광스런 상처를 남긴 아이템 고갈이 낳은 비극은 사실 문화부를 지원한 날부터 이미 예견돼 있었다. 문화부는 정치부나 사회부와 달리 ‘선수’들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기자가 팩트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이끌어야 하고 때로는 해석해야 하는, 문화부는 흔히 말해 기자 개인의 역량을 기사에 녹여 보여줘야하는 영역이라는 말이다. 그 ‘뭔가’를 모르고 “개인사정”이라며 문화부로 자리를 옮긴 나로서는 최진실의 사후 한달이 지난 11월, 전임자가 넘겨준 아이템이 바닥나고 전전임자, 전전전임자, 심지어 일본 특파원으로 간 10여년 전의 전…전임자의 아이템까지 우려먹다 지쳐 스스로에게 무안·미안한 순간에 이르렀다. 100회, 1주년, 특집 등 달력을 보고 날수를 따져 의미를 부여해 쓴다고 해 이른바 ‘달력 기사’라 불리는 기사들도 한계에 봉착했고, 영화·미술·공연 등의 트렌드를 방송계로 뻔뻔스럽게 베끼지 않은 척 옮겨와 쓰는 것도 바닥이 날 때쯤 인터넷만 하염없이 들여다 보다가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를 발견했다. 주저없이 원서를 썼다.

11월, 도전에 나서겠다고 원서를 써놓고 1월까지 2개월 동안 연락이 오지 않는 무한도전 제작진을 원망하면서, 다시 달력을 뒤지고, 트렌드를 뒤지던 차에 설날을 며칠 앞두고 “목요일인데 직장을 쉬고 나오실 수 있냐”는 제작진의 낭랑한 목소리는 연휴 직후 아이템을 걱정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빛이었다. ‘쪽팔림’은 순간이며 ‘아이템’은 1주일의 안락을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쫄쫄이를 바지 속에 감추고 벽을 붙잡고 괴성을 지르는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아이템이 없어서였다.
 
▲ 3월21일 방송된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편에 참가한 하어영 기자의 모습. ⓒ화면 캡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다음주 아이템은 없는 상태다. 모르겠다, 돌아이 콘테스트가 아니라 극한체험 프로그램에 지원해 절벽에 매달려 보거나 맨몸을 드러내며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할지도….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기자들끼리도 잘 모른다) 주변 사람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을 다그치는 기자(어이가 없다. 아니 저런 기자가 있단 말이냐, 난 배우 앞에서 하도 손바닥을 비벼대서 지문이 없어질 지경인데)나 고 장자연씨의 죽음 앞에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그때 그 언론계 종사자들(양심에 털난 정도가 알프스 산양 엉덩이털 수준으로 알차고 빼곡한)을 보면서 “기자들도 할 만하다”고 비꼬듯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템이 없어서” 양잿물이라도 먹겠다는 심정인 월급쟁이의 비루한 일상은 온전한 기자 개인의 몫이다. 그 비루한 일상을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고 드마라, 예능 등 제작현장으로 달려간다. “기사가 살아 움직여. 잘 썼는데”라는 어린 후배의 위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막내아들 기사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 더 솔직하게는 지금 이 능력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함으로 아이템 발굴의 장도에 나선다.

2005년 <한겨레>에 입사했다. 탐사보도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 방송담당기자로 있다. 놀이전문기자가 돼 보겠다고 기자가 됐으나 아직은 여행보다는 여행기를 좋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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