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정병국 의원님을 환영합니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대학생들이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준비하는 제사상은 ‘미디어 인플루엔자’로 공공성을 잃은 언론에 대한 것이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는 근조의 의미로 검은 띠가 둘러졌고, 제사상에는 TV, 카메라, 마이크 등의 제수용품과 향초, 국화도 준비됐다.

‘언론공공성을 위한 대학생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중앙대 학생 10여명은 14일 오후 3시부터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아트센터 9층 강의실에서 열린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특강에 앞서 정 의원 환영식 겸 언론 공공성 제사상을 준비했다. 이들은 “신종플루, 정병국 의원님을 환영합니다” “미디어법=언론공공성에 대한 사망진단서” “언론은 상품이 아닙니다”라는 손팻말을 들었고, 지나가는 학생들은 조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봤다.

▲ ‘언론공공성을 위한 대학생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중앙대 학생들이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특강에 앞서 14일 오후 2시부터 흑석동 중앙대 아트센터 앞에서 언론 공공성 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송선영
오후 3시가 다 되었을 무렵, 아트센터 앞에 정병국 의원이 나타났다. 살짝 들뜬 표정으로 정 의원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정 의원의 모습이 보이자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정 의원에게 하얀 국화를 전달했다. 국화와 함께 “언론이 공공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도 함께 전했다.

정 의원은 학생들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 듯 했으나 이내 침착함을 찾고는 “열심히들 하시네. 특강에 와서 토론도 해달라”며 웃는 여유까지 보이기도 했다. (실제 이 학생들은 특강에 참여한 뒤 토론도 열심히 했다.)

이날 정병국 의원, 꽃복이 터졌다. 특강하러 온 그에게 처음 건네진 것도 하얀 국화요, 특강을 하러 들어온 강의실에서 그를 처음 맞은 것도 하얀 국화였다. 심지어 강의실 입구에는 ‘근조 언론공공성’ 문구와 함께 하얀 국화가 붙어있었고, 그가 잠시 자리를 잡고 앉은 좌석 옆에도 역시 하얀 국화가 일자로 놓여있었다.

▲ 정병국 의원이 특강에 앞서 학생들로부터 하얀 국화를 받자 웃고 있다. ⓒ송선영
“열렬한 환영, 꽃까지 받고…”

‘거한’ 환영을 받은 정병국 의원은 오후3시20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꽃까지 받고…”라며 말문을 열었다. 꽃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은 그는 이때만 해도 본격적인 ‘굴욕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국화를 받았을 때부터 ‘굴욕’은 이미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학생들이라면 이미 수차례 접했을 ‘기초적’인 내용인 신문과 잡지, 라디오에서 TV까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보고자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문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학생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학생들의 표정은 ‘한성순보’를 몰라서 답을 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굳이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식으로 보였다. (질문에 묵묵부답인 학생들, 정 의원의 굴욕은 계속 이어진다.)

▲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송선영
그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추진 목적을 “방송통신융합 시대라는 ‘미디어 빅뱅’시대를 맞아 환경에 맞게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언론재단이 조사한 2006년과 2008년 ‘매체 영향력 자료’를 근거로 들어 “미디어법이 여론독과점을 하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이에 대해 추후 질의과정에서 “매체 영향력만으로 미디어법이 여론독과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때 정병국 의원이 다시 학생들을 향해 묻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지역신문을 포함해 몇 개의 신문이 있을까요?” 학생들은 이번에도 답이 없었다. 그는 애써 웃으며 “관심이 없어요?”라고 되물었으나, 살짝 감정이 상한 듯한 표정이 엿보였다. 아무런 대답없는 학생들을 향한 정 의원의 일방적인 질문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신문법이 왜 위헌 판결을 받았는지 학생 아나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이가 뭐냐” 등등.

정병국 의원은 본격적으로 ‘IPTV’의 중요성과 편리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IPTV로 노래방, 영화관, 게임방, 학원이 거실로 오는 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심지어 군대간 아들과 영상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IPTV가 군 생활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는 방송법과 관련해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면 지상파, 공중파에 한정되어 있는 현재와 달리 매체 간 칸막이가 없어져 지역의 개념이 없어지고 채널수는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라며 “지상파 중심 논리에서 있을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맞게 이제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강 도중, 뜬금없이(?)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는 온라인 경제 대통령이 MB인 줄 아시냐? 경제 대통령은 미네르바다. 네티즌들의 공감대를 글 하나만으로 여론 독과점 할 수 있게 접근하고, 방송사 사장 한 명 바꿔서 여론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그러면 빨리 해라’고 말했다.”

‘미디어법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목소리를 높인 그는 언론인 지망생들을 향해 “여러분들은 가장 어렵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학교에 들어온 거 아니냐. 여러분들이 주도해 달라. 잘 판단해서 미디어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 정병국 의원이 IPTV로 변화되는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송선영
정병국 의원 질문에 대답없던 학생들, 질의 시간에 질문 봇물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학생들의 태도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정 의원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학생들은 IPTV,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시장 독과점, 방송법의 문제점, 한나라당이 추진하려고 하는 공영방송법,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태도 등 언론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정병국 의원의 허를 찔렀다.

한 학생은 “조중동 솔직히 하나의 논조를 가지고 있다. 큰 기반을 가지고 있는 조중동은 무가지와 경품 등으로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다”며 “이렇게되면 상황이 어려운 신문업계, 자본이 없는 언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고 정 의원을 향해 물었다.

정 의원은 “무가지와 경품에 대한 단속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열심히 하고 있다. 자본의 힘만 가지고 (사람들이) 신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도 경품을 주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학생의 지적을 반박했다.

이에 ‘신문 배달을 해봤다’는 한 학생은 “실제 아직도 무가지와 경품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5만원을 주고 신문을 구독하라고 한다. 정 의원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고 다시 반박했다.

질의 과정에서 정 의원은 학생들을 향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방송사가 어디인 줄 아느냐”며 MBC를 거론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MBC는 평균 1억1400만원을 받는다. 그 사람들은 흑자를 내어서 방송을 잘, 향상하도록 독려한 것이 아니라 땅 투기를 비롯해 위장 전입을 해서 땅을 샀다. 그래왔기에 지상파 방송에 대해 이때까지 내가 파헤쳐 왔던 것이다.”

▲ 정병국 의원 옆에 하얀 국화가 일자로 놓여있다. ⓒ송선영
학생들의 비판과 질문은 이어졌다.

“정부 차원에서 신문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신문 방송 겸영만이 살길이다’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지 않나.”
“미디어법 처리 과정을 본 한 사람으로서 의구심이 든다.”
“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 예산을 관리해 여당과 정부의 관리를 노골화하는 것이 아니냐?”
“대기업에게 방송 진입을 허용하고 신문이 방송을 겸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의 대상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은 의견을 수용하려는 태도가 애초에 없었다. 국민적 합의에 의심이 든다.”

이날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정 의원은 잘 대처했다. 하지만 그저 대처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학생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했고, 학생들의 지적을 또다시 지적하는 등의 태도로 일관했다.

정 의원은 수차례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이 언론관련법안을 상정조차 못하게 해 토론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질의 응답 시간에 정 의원의 태도는 ‘토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장 전달’에 가까웠다. 정 의원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잘못 알고 있다’며 되받아치기에 바빴다.

특강이 끝난 뒤 몇명 학생들에게 이날 특강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학생들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벽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정병국 의원은 질문하는 논리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오히려 더 큰 거부감이 들었다. 미디어법에 대한 충분한 얘기보다는 다루고 싶은 것만 얘기한 것 같았다.” (한 여학생)

“TV토론회와 다르지 않았다. 2시간이 무의미했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다른 학교에도 특강을 하러 다닌다고 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할 거 아니냐. 그 쪽 학생들도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요목조목 쟁점 분야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질문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한 남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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