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개병제를 근간으로 하는 군 복무 제도를 모병제로 바꾸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했다. 결과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좀 달라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모병제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2012년 때와 견줘 10%포인트 이상 높아졌거나, 심지어 찬성과 반대 비율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뭔가 상당한 상황 변화가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오른쪽부터),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병제희망모임 1차토크 '가고싶은 군대만들기! 군대를 강하게! 청년에게 일자리를!'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모병제 아니면 소수 정예병 육성 못하나?

그때나 지금이나 모병제 제안이 공유하는 핵심은 동일하다. 인구수가 줄어서 50~60만 명의 군대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게 핵심이다. 병력 축소가 전력 감소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모병제를 통해 복무기간을 크게 늘린 소수 정예 직업군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인구수 감소가 모병제 도입을 정당화하진 못한다. 개병제를 유지하고 복무기간을 늘려도 정예병을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구수 감소로 병력이 30만 명 정도로 줄어야 한다면, 정예병 육성의 수단이 굳이 모병제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모병제는 외국인에까지 문호를 개방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국 정예병 육성은 개병제냐 모병제냐가 아닌 투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개병제는 월급 8만~10만원에 1년 조금 넘는 복무기간으로 이뤄져 있다. 정예병 육성은 꿈도 꿀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투자를 위해 모병제를 제안하는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제안처럼 월급 200만원에 9급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모병제를 통해 도입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런 투자는 개병제 아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개병제에 따른 병역의 의무 차원에서 1년 미만을 복무하되 직업군인으로 남으려는 이들에게는 남 지사가 제안한 것과 같은 투자를 적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병제를 제안하는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잦은 군대 내 사고, 군 입대 비리 등의 문제를 모병제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 역시 정예병 육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모병제가 답인 것만도 아니다. 지금의 개병제 구조와 운용을 혁신하고 투자가 뒷받침되면 개병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순수 모병제는 병역비리에 대한 면죄부 발행

특히, 모병제가 마치 군 입대 비리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약인 것처럼 포장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주장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군에 갈지 말지를 선택하게 되면 군에 안 가거나 편하게 가기 위한 목적 때문에 벌어지는 병역비리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기까지 하다. 부유층만이 아닌 서민층 자녀도 군에 갈지 말지를 선택하는 건 동일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동등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하는 행태에 모병제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병제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한층 더 빛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의무 상황에서도 실현되지 않았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오히려 선택의 상황에서 기대하기란 더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설사, 국내 모든 정당이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의 경우 군에 갔다 와야 한다는 내규를 두고 있다고 해도, 기본권 침해를 당했다며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부유층 자녀는 군대 가지 않고 서민층 자녀만 가게 될 것’이라는 반론이 강력한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그동안 경험에 비춰볼 때 수십 년 간 유지돼 온 병역의 ‘의무’ 체제를 순수한 병역의 ‘선택’ 체제로 바꾸는 데 저항은 그만큼 매우 큰 것이다. 이것은 순수 모병제 제안이 갖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어떻게든 보완이 되지 않으면 상류층의 병역미비에 면죄부를 발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모병제는 필연적으로 ‘용병’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청년실업 완화 방안으로 주목받는 2016년 모병제 제안

그럼, 왜 4년 전과 견줘 모병제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이 많아진 걸까? 역시 청년실업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청년실업률은 2012년 평균 7.54%에서 올해 6월 10.3%로 크게 높아졌다. 이런 수치는 실업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군대에 가거나 취업에 뛰어들 자녀를 둔 40대의 모병제 찬성률이 60%를 웃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월 200만 정도의 보수에 9급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통해 정예병을 양성하자’는 2016년 제안은, 많은 사람들이 청년실업 완화 방안의 하나로 모병제를 바라보도록 시선의 전환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2012년 모병제 제안에서는 청년 실업 문제 해소와 같은 효과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군 복무 대신에 경제활동에 종사하여 사회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거나 ‘경제활동인구의 증가로 GDP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그렇다. 군 복무 대신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5년 전이지만, 버젓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태부족인 지금의 상황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2016년 모병제 제안은 청년실업 완화와 연관된 경제적 측면이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판 ‘군사적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싶다. 애초 군사적 케인스주의는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전쟁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을 두고 붙여진 부정적인 이름이지만, 직업군인 양성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와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명칭을 적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경제적 측면 때문에 2012년 때와는 달리,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의 모병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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