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4일 검찰청 앞에서 용산참사 범대위 주최로 “검찰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즉각 공개하라”는 검찰규탄 기자회견이 예정되었다. 원래 범대위는 집회를 신고했으나 경찰은 “불법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불허 통보했고, 이에 급하게 ‘기자회견’으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 인도를 막고 서 있는 경찰들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모습. 권영국 변호사는 여기는 인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나난
그러나 기자회견이 예고된 낮 12시 검찰청 앞은 기자회견은커녕 통행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경찰이 인도 전체를 막고 있었던 까닭이다.

권영국 변호사, 말이 되는 법집행을 하라고 이 양반들아…

경찰은 “이곳은 집회신고를 금지한 곳입니다”라고 방송했고, 기자회견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은 “기자회견 하려고 온 것이거든요”라고 맞섰다. 용산 철거민 변호인인 권영국 변호사는 “(경찰) 책임자 나와”라며 인도를 막고 있는 이유를 물었고, 경찰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종이에 적고 있었다. 경찰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도를 막고 있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경찰은 인도를 열어줬다. 아마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이렇듯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유가족 한 분이 쇼크를 받아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목격자에 의하면 “경찰의 방패에 부딪혀 왼쪽 팔에 마비가 왔다”며 울분에 차 있었다. 그런데 앰뷸런스를 불러달라는 유가족들에게 경찰은 “왜 경찰이 불러야 하나”라고 말해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 경찰들과의 충돌로 쓰러진 유가족의 모습ⓒ나난
인도를 열어준 경찰이었지만 그것은 곧 기자회견을 진행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나 보다. 경찰은 바로 1차 경고를 하고 나왔다.

경고방송이 들리자마자 권영국 변호사는 “이게 집회야?”라고 물으며 “당신들이야 말로 지금 집회를 하고 있는 거야”라고 응수했다. 그는 “인도를 막고 있는 것을 항의하는 것이 집회냐. 집회와 항의하는 것도 구분 못하는 경찰들이 무슨 경찰이냐”라며 경찰 책임자를 불렀지만 경찰은 ‘채증’으로 답했다.검찰청 담장 위에 올라가 이 상황을 찍고 있던 MBC 기자 옆에는 재밌게도 경찰이 버젓이 카메라를 들고 이러한 상황을 찍고 있었다. 경찰복을 입은 채로 인도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채증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찰은 ‘피켓’을 집단으로 들고 있는 행위 자체가 집회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 인권 활동가는 “피켓을 드는 것은 기자회견 관행으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라며 “또한 피켓을 집단으로 들고 있다고 해서 온전히 ‘집회’로 규정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집시법이라는 것 자체가 누가 어떤 마음을 먹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의 연속에 헛헛하다는 듯이 권영국 변호사는 “말이 되는 법집행을 하라고, 이 양반들아…”라며 경찰의 경고방송에 어이없어했다.

법치주의를 지켜야 하는 법원의 스타일 구기기

결국 기자회견은 12시30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기자회견에서는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3000쪽에 대해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3000쪽에는 경찰들이 인화물질이 있다는 고지 없이 진압에 들어가거나,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들이 들어있다. 검찰이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라며 기사를 꼭 써줄 것을 당부했다.

▲ 원래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된 기자회견ⓒ나난
권영국 변호사는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했는데 왜 징계하지 않습니까?”라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라고도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 법치주의가 사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징계하지 못하는 대법원. 용산참사와 관련해 법원의 명령에 검찰이 따르지 않고 있지만 검찰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재판부. 스타일을 구기고 있는 것은 오히려 ‘법원’인 듯 보였다.

용산참사의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의 아내이자 참사의 책임을 물어 구속돼 있는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의 어머니인 전재숙씨도 “오늘은 검찰이 공개하지 않는 3000여 쪽의 수사기록을 받으러 온 것”이라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인도에서 체포됐는데 ‘일반도로교통방해죄’? 미란다 고지는 하셨나요?

이렇게 기자회견이 끝나자 “즉시 해산해주십시오. 체포하겠습니다. 기자분들은 빠져달라”라는 방송이 들려왔고 곧바로 경찰들의 막무가내 연행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경찰들에 의해 들려 호송차량으로 끌려갔고, 목을 휘감아 잡아갔으며, 끌려가는 사람을 잡고 있던 한 여성 참가자 역시 함께 끌려갔다.

▲ 채증하는 경찰의 모습. 왼쪽은 MBC 기자, 오른쪽은 경찰의 모습. 누구의 카메라가 더 좋은 것일까?ⓒ나난
이들은 어떠한 이유에서 연행되었던 것일까? 경찰들 뒤에서 연행을 명령하던 한 경찰 관계자에게 집요하게 묻자 그는 “일반도로교통방해죄로 체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이에 대해 “일반도로교통방해죄요?”라고 되물으면서 “연행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갖다붙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인도 위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그것도 해산하던 참가자들을 잡아가는 것이 어떻게 일반도로교통방해죄가 되느냐”고 따졌다.

한 참가자 역시 “미란다 고지도 이상했다”면서 “미란다 원칙에 의해 ‘피의자가 변호사 선임의 권리’와 ‘묵비권의 행사 권리’, ‘모든 발언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3가지를 모두 고지했어야 했지만 그 중 변호사 선임의 권리만을 고지했다”며 불법연행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오늘 연행된 7인이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한 경찰관은 분명 ‘일반도로교통방해죄’라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무엇이라고 이야기할까? ‘집시법 위반’이라면 ‘일반도로교통방해죄’라던 경찰관은 왜 그런 것이며, 오늘 기자회견이 집회였는지에서부터 확인을 해봐야할 터이고, ‘일반도로교통방해죄’라면 도로가 아닌 인도에서 연행한 경찰들의 해명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연행된 7인에 권영국 변호사도 포함됐는데 경찰에겐 과연 좋을 일이었을까?

겹겹이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싸고 있던 경찰들과 전경버스. 참석자들의 채증은 기본이고 변호인까지 연행해가는 경찰들.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는 3000쪽의 수사기록들.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경찰들의 대응은 억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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