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알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5월6일의 이 대통령 발언 또한 여드레가 지난 14일이 돼서야 알려졌다. 사안의 경중에 대한 청와대 홍보라인의 주관적 판단을 떠나,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이 아니고서야 대중에 알려야 할 당위성은 항상 존재한다.

오늘자 <중앙일보>는, 이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고 탓도 하지 말라”고 발언했다면서 청와대 참모진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발언이라고 전했다.

최근 일부 참모가 ‘언론이 사소한 갈등을 과도하게 보도한다’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을 이 대통령이 꾸짖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또한, 대통령이 언론의 비판을 왜곡 보도로 몰아가려 하지 말고 겸허하게 수용하고 책임 있게 대처하라는 주문을 한 것이라고 평했다.

기사에는,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참모들의 일처리에 불만을 가진 이 대통령이 작심하고 수석비서관들을 질타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참모들의 ‘일머리 없음’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5월14일자 5면
발언은 왜 이제야, 그것도 단 한 곳의 언론사만을 통해서 알려졌을까. 보통 수석비서관회의에 취재기자들은 들어갈 수가 없고 회의가 끝난 직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입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 대변인은 지난 6일 일일브리핑은 했지만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언론에 알리지 않았고 중앙일보가 후속 취재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일보가 취재한 참모들(해당 신문은 취재원이 회의 ‘참석자들’이라고 적시함)은 왜 이 사실을 며칠이 지나서야 언론에 알렸을까. 회의 자리에 없었던 중앙일보 기자가 이 대통령 발언을 먼저 감지하지는 못했을 테고, 취재원이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면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틀 전 타 매체의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2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순엉터리”라고 비난한다. “제대로 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이라면 수시로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해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서 당·정·청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이유가 “수석비서관들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간동아는 정 의원 발언이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앞장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이상득 의원 측으로 넘어간 힘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듯하다”라고 평가하면서, 친이계 내부에서 제2의 권력투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중앙일보에 비슷한 류의 기사가 난 것이다. 차이점은 청와대 수석들의 문제점을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이 귀국 후 모종의 결단을 보여줄지의 여부를 떠나서 왜 발언 직후에는 알리지 않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친이계 내부의 주류-비주류간 다툼이나 친이-친박(근혜) 간 힘겨루기 등은 어차피 향후 자연스레 전개될 것이기에.

이동관 대변인을 비롯한 언론홍보 담당 비서관들은 항상 대통령의 실언(?)이 보도되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경계한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언론 탓하지 말라’ ‘비판을 왜곡보도로 몰아가지 말라’ 등의 발언이 전해지면 많은 이들이 최근의 언론장악이나 탄압의 본거지로 여기는 청와대를 분명 조소할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깔아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MBC <PD수첩>, YTN <돌발영상>, EBS <지식채널e> 등에 대한 정부의 행적을 아는 국민이라면 대통령 발언을 모순으로 치부할 거라는 현실을 언론홍보 비서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기자 출신인 이 대변인이 위와 같은 발언을 공개할 리 만무하다.

수석비서관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비난받고 대통령한테까지 쓴소리 듣기에 이른 까닭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싫어할 내용이나 실정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찍히기 싫은 것이다.

정권에 불리한 내용은 하나라도 더 빼서 윗선에 사랑받고자 노력하는 자세로 버텨온 것은 아닌가. “일본에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독도 문제가) 달라질 것” “4면의 바다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등의 발언이 방송이나 지면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가 아닌가 싶다.

참모진 경질 여부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부터 살핌이 옳다. 대통령 앞에서 언론 탓하며 불만 토로하는 참모가 있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언론장악에 성공하면 그마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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