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탄압과 돈줄죄기 등을 통해 주요 언론 매체를 ‘문인시녀’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경찰은 이미 ‘무인시녀’로서의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이 사회 곳곳에서 보인다.

지난해 6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이 ‘촛불집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공안탄압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그 자체가 80년대식 발상”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여의도통신
집회가 절정에 달한 작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이 대변인은 7월의 어느 날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촛불시위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 안하고 ‘깃발시위’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고 밝힌다. 5개 부처 장관들이 깃발시위로 규정하기로 합의봤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런 발언들이 나온 이후 경찰의 시위대 진압과 폭행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고 국민들의 눈에 각인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초 용산참사가 발생하고-군포 연쇄 살인사건을 부각시켜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청와대가 경찰에 보낸 ‘홍보지침 이메일 파문’에 대해 “엄청난 대형 사건도 아닌데 시시콜콜 기억을 못한다”라며 이 대변인은 청와대 입장을 대충 갈음해버린다.

‘사건에 대한 지휘책임은 묻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부적으로 논의는 해보겠지만 그럴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는데, 용산참사와 이메일 파문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지자 “자, 그만합시다”라며 브리핑을 마무리한다.

경찰이 직접 당사자로 연루된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 또한 주마간산격으로 마무리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일부 경찰이 농성자들에게 폭행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드러냈다고 한다.

바야흐로 촛불 드는 행위와 도로점거는 불법인데 반해 수구 진영이 사용한 각목과 가스통은 합법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엔 아주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 공안당국 프락치가 출몰해서 학생들을 현혹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강희락 경찰청장 ⓒ여의도통신
작년에 이 대변인과 5개 부처 장관들이 미국산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시위를 ‘깃발시위’로 규정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경찰의 행보가 있다. 경찰은 최근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의원의 의정사무실을 ‘불법폭력시위 관련 단체’로 규정했다. 2007년 대선후보였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의원실과 천주교·불교·기독교 단체도 경찰이 규정한 불법폭력시위 단체이다. 경찰이 지목한 1800여개 단체에는 장애인, 여성, 학부모, 교원·교수, 의사, 약사, 민변, 농민회 등과 부산영화제, 부천영화제와 같은 국제영화제도 포함되어 있고, 기자협회와 PD연합회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위 리스트를 근거로 행정안전부는 이들 단체에 정부보조금 지급을 전면 금지하고 이 단체들 몫의 보조금을 보수 성향의 단체에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경찰이 추진하는 일명 ‘다국적 경고방송’ 역시 가관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서울시내 모 경찰서장이 시위대 해산명령과 진압 경고방송을 일본어와 중국어로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일 촛불시위 1주년 집회 현장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경찰에게 집단 구타당한 사실이 뒤늦게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튀어나온 일종의 자구책이다. 경찰은 당장 일본어 구사가 가능한 경찰인력이 있어 일본어 해산명령의 즉각 시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말 청취가 서툰 재미교포 2세 방문객 등을 위한 영어 경고방송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모 직장인의 일화도 보도됐다. 지난 10일 두 명의 동행인과 한나라당사 앞을 지나던 직장인이 “맹박아, 너 때문에 경찰이 개고생이다”라고 외치자 당사 근처의 전경들이 에워싼 뒤 서너 명의 경찰이 나타나 미란다원칙 제시의 요구도 묵살한 채 연행해갔다는 <프레시안> 기사의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1970년대에 선술집에서 약주 한 잔 걸치면서 박정희 (전직 대통령) 욕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 시민들이 많다는데서 일컬어진 소위 ‘막걸리 보안법’의 망령이 부활한 게 아니냐며 조롱하고 있다.

공안정국이나 공안경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박정희나 전두환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비록 민주절차에 의한 국민의 선택에 따라 창출된 정권이라 할지라도,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를 허가 내주지 않다가 막상 집회가 진행되면 불법이라고 매도한 뒤 원천봉쇄하고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전혀 없는 사람들까지 강제연행·긴급체포 하는 방식이 공안정국이고, 아기엄마와 초등학생을 잡아가고 시민을 방패로 내려찍으며 여학생 머리를 군홧발로 걷어차는 작태가 바로 21세기 ‘신공안경찰’의 모습인 것이다.

정권은 곧 파할 것이고, 민중의 지팡이로 남느냐 아니면 곰팡이로 전락하느냐의 선택은 경찰 스스로의 몫이다.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해명은 궁색하기만 할 것이고 ‘국민 참을성’의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가끔씩 연상되는 영미식 속담이 하나 있다. One rotten apple spoils the barrel-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 전체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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