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믿고 보는 차태현의 예능 <구라차차 타임슬립 - 새소년> (9월 15일 방송)

차태현이 섭섭하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차태현의 영화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킬링타임’용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커리어를 보면 블록버스터 영화도 없고, 한 방에 주목받을 수 있는 희대의 악역 같은 캐릭터도 없다. 그저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따뜻한 동네오빠, 딱 그 정도의 느낌. 그래서 오히려 차태현의 예능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KBS 2TV 추석특집 예능 <구라차차 타임슬립- 새소년>

KBS 추석예능 <구라차차 타임슬립 - 새소년>은 김구라, 차태현, 김병옥, 은지원, 랩몬스터가 1983년도로 돌아가서 그 시절을 추억해보는 타임슬립 예능이었다. 언뜻 보면 ‘상식부자’ 김구라의 1983년도 페이지를 열어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드카, 팝송, 송골매, 배철수 감전사건, 심지어 배철수와 여배우 K와의 염문설까지 깨알 같은 상식을 줄줄이 나열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심지어 LP 사진만 보고도 가수 이름을 척척 맞혔다.

그러나 정작 빛났던 건 김구라의 상식이 아니라 차태현의 배려였다. 김구라의 상식이 본인을 뽐내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차태현의 배려는 타인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83년도를 전혀 살아보지 못해 프로그램에서 자칫 겉돌 수 있는 94년생 랩몬을 시종일관 챙겼다.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전용 캔 따개로 따거나 열쇠 모양의 오프너를 이용해 절개선을 말아서 개봉했던 옛날 통조림을, 랩몬이 직접 따게 해주는 것이었다. 랩몬을 지켜보며 훈수 두는 김구라, 랩몬이 불안해서 대신 열려는 은지원 틈에서 차태현은 마치 막내동생을 대하듯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랩몬이 스스로 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알려주는 차태현의 인내심과 배려심. 열쇠 모양의 오프너로 따는 통조림을 보여주며 “라인을 따라 쭉 따면 된다”고 말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심지어 은지원의 실수로 끊어지기 직전의 오프너도 극적으로 살리는. 남들이 김치를 가지러 간 사이 꿋꿋하게 오프너를 고친 뒤 맨 처음 차태현이 한 행동은 랩몬을 부른 것. 어떻게든 통조림을 따는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형아’의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차태현은 40대임에도 보기 드물게 아저씨보다는 형, 오빠라는 호칭이, 젠틀맨보다는 소년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차태현의 새 예능을 또 보고 싶은 이유다.

이 주의 Worst: 대체 공은 언제 던지나요? <내일은 시구왕> (9월 14일 방송)

SBS 추석특집 프로그램 <내일은 시구왕>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고 입을 모아 자찬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야구선수 출신 서재응 심사위원의 말처럼 “듣도 보도 못한 대회”다. SBS <내일은 시구왕>은 제목 그대로 ‘시구왕’을 선발하는 대회다. 예능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건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목적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일은 시구왕>의 목적은 불분명했다. ‘시구’가 아니라 ‘몸매’ 혹은 ‘다리찢기’가 주인공이 됐다.

시구 본연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물론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시구스타선발대회이니만큼 시구 자체에 집중하는 대회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찔한 퍼포먼스와 지루한 패러디만이 난무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공 하나 던지는데 3단 높이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또 굳이 한 바퀴를 돌아 낙하하면서 공을 던지거나, 좀비 분장을 한 지인들과 한참 술래잡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뜬금없이 공을 던지는 것을 두고 과연 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시구자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시구는 언제?’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퍼포먼스 혹은 연기를 모두 보여준 뒤, 마지막에 ‘그래도 시구니까’라는 마음으로 공만 던지는 것 같은 인상이 강했다. ‘얼마나 잘 던지느냐’는 이미 그들에게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 얼마나 다리를 많이 찢느냐, 얼마나 얼굴을 많이 보여주느냐, 얼마나 운동장을 넓게 쓰면서 퍼포먼스를 하느냐. 그래서 “지금까지 가장 빠른 공”을 던진 박철민은 A조에서 두 번째로 낮은 점수를 받은 반면, 스턴트 치어리딩을 한참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공을 살짝 던진 다이아는 A조 최고점을 받았다.

게다가 짧은 옷이나 몸에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등장한 여자 연예인들을 다각도에서 반복적으로 비추는 카메라 워킹은 진부하다 못해 한심해 보였다. 다이아의 채연이 3단 높이에서 다리를 옆으로 찢으며 점프하면서 낙하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여주고, 흰색 긴 하의를 입은 베스티의 유지가 시구를 하려고 상체를 숙였을 때 굳이 뒷모습을 비추며 엉덩이를 돋보이게 했다. “걷고만 있을 뿐인데 섹시미 철철” 같은 자막, 시구 의상을 보여주기 위해 상의를 벗으려 하자 “어... 그래도 되나요?”라고 내뱉는 이수근의 어이없는 멘트, “야구장에 비너스가 온 줄 알았다”는 둥 “정말 환상적인 몸매였다”는 둥 시구 심사평에서 몸매 얘기만 하는 심사위원들까지. 왜 항상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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