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비판하고 나서고 여당이 ‘핵무장론’을 공공연히 언급하면서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12일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동이 예정된 상황이지만 합리적인 해결책이 모색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당분간은 북핵 문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일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호응하듯 북한의 대남단체인 민족화해협의회는 11일 ‘경고장’을 통해 “박근혜는 그 무슨 체제불안정이니, 급변사태니 하는 것이야말로 말라죽은 나무에 열매가 달리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잠자코 앉아 뒈질 날이나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비난을 했다.

북한의 막말이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놀랄만한 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는 말은 북한의 체제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호칭을 생략해왔는데 이보다 한 발 더 나간 형태의 불만 제기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에 두고 국가원수가 오히려 국민적 불안을 이런 식으로 증대시켜서 바람직한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지도자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단결된 국가적 대응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즉, ‘김정은은 통제불능’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고 대응책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역설했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밤 조기 귀국해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박근혜 정권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 없다는 건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말한 이후 군이 언론에 대고 “평양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키는 걸 막을 수가 없다는 걸 실토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연계해 북한에 대한 더 강한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지난 4차 핵실험 때도 제기된 문제지만 이미 제재 수위가 극한에 달해있는 상황에서 어떤 제재가 더 효력을 발휘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핵심은 중국의 역할인데, 지금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해 합의한 대북제재가 성실히 이행되는 것으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사실상 북한의 뒷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의심한다는 것이며, 중국의 이런 태도가 그들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어떤 제재방식을 선택해도 중국이 북한의 체제 존속을 보장하는 한 완벽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대응방법이 없기 때문에 5차 핵실험 직후 보수언론과 정부 기관들의 기류는 ‘레짐체인지’론에 급격하게 경도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이 역시 결코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정부의 대북전략은 겉보기에 온건론에 가까운 걸로 보였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양양가 사건이나 2015년 통일론,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과 드레스덴 선언 등은 온건론의 성격이 북한체제붕괴론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줬다. 보수세력이 북한붕괴론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게 대북전단과 목함지뢰 사건 이후의 심리전 재개이다. 즉, ‘레짐체인지’를 위한 전략은 이미 가동돼있는 상태다. 지금 할 일은 오히려 이런 전략에 의한 어떤 효과를 보았는지, 남북관계가 그것에 의한 어떤 긍정적 영향을 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치 새로운 전략을 말하듯 북한붕괴론을 대안처럼 내놓는 것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문제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친중정책이나 한반도 사드 배치를 현재 상황의 발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정확한 현실인식과 거리가 있다. 중국이 북한 체제의 존속을 원하는 것은 그들이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친중정책을 펴든 반중정책을 펴든,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든 말든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이 친중정책을 통해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시간벌기’ 이상의 차원이 못 되었던 게 사실이다. 중국이 아무리 말로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에서는 북한 체제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사드 배치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이 북한붕괴론에 가까웠다는 걸 소급적으로 구성해줄 뿐이지 그 자체가 북한 핵실험에 어떤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는 인식은 ‘김정은이 이 시점에 왜 핵실험을 해서 불안을 고조시키는지 모르겠다’는 대중적 불만과 맞닿아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북한의 핵실험은 그들이 핵을 갖기로 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지 어떤 대외정세와 맞물린 하나의 변수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즉, 북한이 국제사회나 중국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기술적 필요에 의해 핵무기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어떤 외교적 수단이나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말이 된다. 오로지 핵무기를 갖는 것만이 체제 유지의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권 내내 반복된 대북강경책과 이에 기반 한 북한붕괴론, 즉 ‘레짐체인지’의 결말은 결국 전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를 방어하겠다는 명분으로 여당에서 주장하는 ‘핵무장론’은 미국과 중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렵다. ‘킬체인’을 무력화시키는 SLBM을 막기 위한 핵잠수함의 도입 역시 현실화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제기되며, 설사 개발이 용인된다 하더라도 언제 전력화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남는 건 북한이 또 다른 군사적 위협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즉, ‘레짐체인지’는 ‘선제타격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가 전쟁의 위험을 안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만일 이 길이 아니라면 남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존 모색 밖에 없다. 보수세력의 전쟁을 향한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내 평화군축 세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누가 떠맡을 수 있는가가 향후 대화론자들이 고민해야 할 핵심이다. 북핵 문제의 해법이 보수세력의 한풀이식 현실인식을 추석을 앞두고 정치 세력이 재생산하는 것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