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막돼먹은 영애씨>의 후예들! <혼술남녀> (9월 5~6일 방송)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가 그랬다. 집에서는 결혼 못하는 애물단지 맏딸로, 회사에서는 진상 상사들의 구박과 놀림을 받는 ‘덩어리’로, 그렇게 영애(김현숙)의 삶은 무척이나 기구했다. 그러나 영애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첫사랑 선배의 결혼식에 가려다가 난데없이 시골 창고에 갇혔고, 회식 후 만취해서 공중전화박스에서 소변을 봤다. 드라마는 영애를 통해 먹고 살기 고단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

<막돼먹은 영애씨>를 집필한 명수현 작가와 백선우 작가가 다시 손을 잡았다. 명수현 작가는 시즌 3부터 시즌 13까지, 백선우 작가는 시즌 1부터 시즌 8까지 집필한 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과 <스탠바이>로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다시 시즌 12와 시즌 13을 책임진 작가다. 그들이 지난 5일 첫 방송한 <혼술남녀>를 집필하게 됐다.

항간에서는 <혼술남녀>를 두고 ‘<미생>의 노량진판’이라고 분석하지만, 필자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노량진판’이라 부르고 싶다. 노량진 고시학원에 모인 교수들과 고시생들의 캐릭터가 강하고, 서로 앙숙처럼 부딪히는 관계들이 많으며, 웃긴 에피소드인 줄 알았는데 씁쓸한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막돼먹은 영애씨>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노량진 스타강사 진정석(하석진) 교수가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인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박하나(박하선) 교수가 서울대 동문사이트에 접속해 진정석 교수 이름을 검색했으나 나오지 않았고, 학원 원장이 있는 앞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학력 위조가 아닌 이름 위조. 진정석 교수의 본명은 진상이었던 것이다. 진정석 교수의 웃음기 없는 고백 신에서 보는 이들은 웃음이 터졌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진정석 교수가 과거 대학 교수 채용 과정에서 실력이 아닌 인맥 때문에 탈락한 과거가 밝혀졌다.

<혼술남녀>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 대학 교수 사회의 비리였던 것이다. 한참 웃다가 어느 순간 진지해지는, 그러나 전혀 이물감이 없는 흐름. 그것이 <막돼먹은 영애씨>를 오래 집필한 두 작가의 호흡이자 내공이다.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

또한, ‘죄송합니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박하나를 통해서는 학원 강사이기 전에 고단한 직장인의 모습을 담아냈다. 캐릭터는 전혀 다르지만,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는 점에서는 영애와 일맥상통하는 캐릭터다. 특히,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친 경쟁학원의 원장 김희원(김희원)을 쫓던 중 횟집 수조에 빠진 모습에서 영애의 그림자가 비쳤다. 말하자면, 소심한 영애씨의 느낌이랄까.

고시생 중에서는 첫 작품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샤이니의 키(김기범)가 발군이었다. 그림자마저 우중충하고 공부밖에 모르는 고시생들 틈에서 ‘고시생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메이커 트레이닝복을 입고, 컵밥 대신 ‘생일상보다 더 화려한’ 뷔페를 찾으며 무려 화장실 딸린 고시원에서 사는 노량진의 패리스힐튼. 쌀쌀도도 하석진, 굽신굽신 박하선, 촐싹촐싹 김기범 덕분에 드라마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주의 Worst: 강아지 뿌꾸가 ‘열일’ 했네! <PD 이경규가 간다> (9월 7일 방송)

영화감독으로서는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경규가 과연 예능 PD로서는 어땠을까. ‘예능 대부’라 불리는 이경규지만,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과 그 멍석 안에서 웃기는 역할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축구 선수는 은퇴하면 감독으로 전향하고, 가수는 경력이 쌓이면 제작자로서 후배를 양성한다. 그렇다면 버라이어티를 오래 출연한 사람이면 연출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힌 이경규는 MBC every1 <PD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PD로 전격 데뷔했다.

MBC every1

이경규가 제시한 첫 방송 아이템은 강아지. 자신의 반려견인 ‘뿌꾸’의 헤어진 새끼들을 찾는 것이었다. 언뜻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재탕인 것 같아 너무 안일한 기획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보통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 평생 새끼를 못 본다”는 이유에서 출발한 따뜻한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PD 이경규, 그가 직접 기용한 스태프(정범균, 김주희, 한철우, 유재환, 김종민)는 뿌꾸의 새끼들을 찾아 전국을 다녔고 극적인 가족 상봉을 이뤘다. 4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바로 어미 뿌꾸에게 달려가는 아들 뿌리의 뒷모습은 짠하면서도 찐한 감동을 안겨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PD 이경규가 간다> 첫 회가 의외로 재밌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뿌꾸의 힘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PD’ 이경규의 모습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물론 이경규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평소 같으면 벌써 화를 몇 번이나 냈을 상황인데, PD라는 감투를 쓴 이경규는 상대방은 기분은 물론 촬영장 매미 소리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여준 이경규의 모습은 ‘PD’라기보다는 ‘PD 상황극을 하는 예능인’에 가까워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스태프들, 소위 말해 이경규의 ‘수족’들이었다. 촬영, 소품, 작가 등의 역할을 맡은 예능인 및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각자의 캐릭터나 존재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실제 스태프들이 존재하고 출연자 스태프들은 ‘PD 이경규’를 위해 구색을 맞춘 것이라 해도, 거의 병풍 수준의 존재감이었다. ‘예능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김종민조차도 이 프로그램에서는 허허허 웃는 모습 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아예 웃음기 없이 스태프 역할을 하든지 아니면 본래 역할은 내려놓고 예능인으로서의 활약을 보여주든지, 둘 중 하나는 했어야 했는데 그저 이경규를 보좌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뿌꾸만도 못한 이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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