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북한의 5차 핵실험이 강행된 것으로 보인다. 9일은 북한의 정권수립기념일이기 때문에 도발이 예상됐으나 핵실험의 형태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왔다. 그러나 풍계리 핵 실험장 근처에서 인공지진으로 추정되는 규모 5.0의 지진이 관측됨에 따라 핵실험이 실행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군 당국은 5차 핵실험이 실시됐다면 10kt 정도의 위력으로 현재까지 핵실험 중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간 북한은 노동, 무수단 등의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발사를 시험해 왔으나 탄두 폭발에 대해서는 따로 시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소형화된 핵탄두의 폭발 실험이 언젠가는 있을 것으로 예상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의 5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오갔던 것은 중국의 존재 때문이다.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대북제재에 동참해왔고 박근혜 정권은 이것이 북한에 대한 상당한 압박이 되리라 기대해왔다. 한국 내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태도가 다소 미온적으로 바뀌긴 했으나 북한이 미사일 등을 발사한 이후에는 UN안보리 제재 결의를 반대하지 않는 등 다시 강경한 자세로 돌아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5차 핵실험이 어떤 형태로든 이뤄졌다면 중국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북한의 중요 인물들이 연이어 중국에 갔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각 언론은 북한 6자회담 차석대표이며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인 최선희가 지난 6일에, 조선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인 김성남이 8일에 각각 베이징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들은 중국 정부나 공산당 측 인사와 공식적인 접촉을 가지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으나, 이들이 방중을 한 하루 이틀새 북한의 핵실험이 이뤄졌다면 얘기가 다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직전 당정의 주요 관계자를 모두 중국에 들여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방중에 중국 측이 보였을 태도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해볼 수 있다. 첫째는 5차 핵실험의 강행을 용인했을 가능성이다. 중국은 동아시아 일대에서 미국과의 패권다툼 수위를 계속 올려가고 있다. 이는 최근까지 몇 차례의 다자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헤이그상설재판소의 판결이나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합의문에 반영될 것인지가 쟁점이 됐던 것 등에서 드러난다. 이런 구도 하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용인함으로써 한국, 미국, 일본의 대응 수위를 올리고 이를 구실로 자신들과 가까운 국가들의 결집을 시도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중국이 5차 핵실험에 반대했지만 북한이 이를 강행했을 가능성이다. 중국은 최근까지 한반도 비핵화, 역내 평화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이른바 ‘3원칙’을 재확인해왔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의 군사적 대응수위를 높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구상은 무너진다. 중국이 아무리 북한의 ‘혈맹’이라고 해도 북핵 문제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길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이러한 처지를 알면서도 북한이 굳이 핵실험을 수단으로 한 어떤 ‘협상’을 진행하려 했다면 대북제재의 완화를 획기적인 수준으로 요구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중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믿을 것은 우리 자신 뿐’이라는 명분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강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각국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두 시나리오 중 하나를 확정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적어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북제재 무용론’이다. 그간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올리면서 핵개발의 지연, 더 나아가서는 포기를 유도하고 있다고 자평해왔다. 최근 이어진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사건 등은 이를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돼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5차 핵실험이 강행됐다면 제재의 목표가 과연 이뤄진 것인지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다.

만일 지금까지의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된다면 이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제재 대신 대화와 타협을 선택하는 것이고, 둘째는 더 강한 제재를 추진하는 거다. 전자의 경우는 5차 핵실험이 이미 강행된 후에는 당장 실행되기 어렵다. 당분간 국제사회의 대응 논의는 후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북한 풍계리 지역의 인공지진 감지로 북한의 제5차 핵실험 징후가 포착된 9일 오전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서울 외교부 종합상황실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의 결정만 남은 ‘세컨더리 보이콧’이 발동될 가능성을 전망해볼 수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북한 관련 기업뿐 만이 아니라 북한과 거래하는 다른 국가의 기업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는 게 핵심이다.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이 속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중국이다. 따라서 세컨더리 보이콧은 중국과 친중국가들의 전폭적 협력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갈등은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양상으로 옮아갈 수 있고, 이는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간 서구 언론의 보도나 연구기관 등의 진단을 보면 대북제재의 ‘구멍’은 결국 중국에 있다. 즉, 세컨더리 보이콧의 효력을 논하면 이미 4차 핵실험 등으로 인한 대북제재를 사보타주하고 있는 중국이 5차 핵실험을 근거로 적극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북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대북제재의 구멍은 중국이 전략적 판단을 통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로지 대북제재를 위해 중국을 믿고 동아시아에서의 핵심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양국의 힘겨루기에 대북제재의 향방이 달린 셈이다.

북핵 문제의 대응이 제재 수위를 올리는 데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이런 양상은 가속화된다. 한반도의 운명은 오로지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의 향방에 달려있다. 그동안 북한이 무슨 종류의 군사적 도발을 반복하든 한국 정부는 별다른 대응책을 가질 수가 없다. 이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제사회에 더 강력한 대북제재를 요구하면서 국내에서는 당장 전력화가 힘든 핵잠수함 개발이나 미국이 용인할 리 없는 핵무장, 전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레짐 체인지’ 등의 공허한 주장을 내놓는 것 정도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이고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에 초당적 대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이후에 면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대응에 발 맞추며 주도권을 발휘하는 외교적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상황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상황을 만든 것은 보수정권의 안이한 대북강경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차기 대권주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확실한 대안을 강구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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