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처럼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따라 죽는 일은 없었다. 8일 종영한 KBS2 <함부로 애틋하게>의 노을(배수지 분)은 신준영(김우빈 분)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를 기억하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남자 부모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여자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골자였지만, <함부로 애틋하게>는 애틋한 러브 스토리보다 신준영이 노을 대신 아버지에게 행하는 복수가 더 와 닿는 드라마였다. 신준영의 생부 최현준(유오성 분)은 출세를 위해 노을 아버지 뺑소니 사망사고의 진범을 위조했고, 신준영은 뺑소니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을을 다치게 한 바 있다. 당시 신준영과 노을은 사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신준영은 아버지를 위해 노을을 위기에 빠트린다. 신준영이 죽기 전 노을을 찾은 것은,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미련보다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커 보인다.

KBS2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결국 신준영의 병세가 악화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그 이전에도 신준영은 노을에게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어필한 바 있다. 하지만 노을을 좋아하는 애틋한 감정보다 사랑을 빙자한 폭력적 행동이 진짜 노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회의감을 들게 했다. 부모까지 얽혀있는 악연으로 서로를 밀쳐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도, <함부로 애틋하게>의 로맨스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로맨스가 답답하면 그 외의 이야기라도 시원시원하게 전개되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함부로 애틋하게>는 사랑, 복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고구마’였다. 그나마 막바지에 접어들며 계속 꼬이기만 했던 이야기가 순조롭게 풀리는가 싶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단박에 해결해주는 것은 신준영의 ‘불치병’이었다.

신준영과 노을의 복수대상인 최현준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친아들까지 궁지에 몰아넣는 악역의 끝판왕이다. 부창부수라고 최현준의 아내 이은수(정선경 분) 또한 남편 출세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아들 최지태(임주환 분)를 위협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신준영의 불치병 덕분에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KBS2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최현준의 각성과 양심고백 때문에 노을 아버지 뺑소니 사건의 진범 윤정은(임주은 분)이 잡혔고, 최지태는 자신의 뜻대로 어머니가 경영하는 회사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는 데 성공을 거둔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기적들이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는 불과 한 회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악인(최현준 분)의 혼외자로 태어난 아들(신준영 분)이 아버지가 저지른 악행을 단죄하기 위해 직접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한 <함부로 애틋하게>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복수의 대단원을 마무리 짓는다. 신준영의 희생으로 인해 노을은 아버지 사고로 맺힌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되고 있었고, 슬프지만 따뜻한 결말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준영이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현대 의학으로도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거대 권력을 대상으로 한 신준영과 노을의 복수가 가슴 먹먹한 아름다운 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악연으로 얽힌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불치병, 출생의 비밀, 캔디형 여주인공,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권력의 횡포 등 대한민국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요소를 다 끌어왔지만, 차라리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함부로 애틋하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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