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과 9일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으나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던 주요 인사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별관회의 문제는 박근혜 정권 경제정책 전반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핵심은 최경환 전 부총리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여러 측면에서 보수정권 경제정책 전반에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식경제부 장관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와 여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경제정책과 연관된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서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가 ‘정권 실세’로 불려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은 불가능했던 게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자원외교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 문제는 박근혜 정권이 시작할 때부터 이미 논란이 된 사안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2009년 캐나다 정유업체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던 최경환 전 부총리가 이에 관여했는지가 쟁점이 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수사기관과 정치권의 접근은 자원 관련 공기업 사장 몇 명이 기소되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됐다. 이때 기소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지난달 26일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고 5500억원이 사라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임 정권을 겨냥한 사정정국 조성 정도로 여겨지던 자원외교 수사는 2015년 정국을 뒤흔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이어졌다. 성완종 회장은 자신이 정치자금을 전달한 친박계 정치인들의 이름을 ‘리스트’의 형태로 남겼다. 갑자기 등장한 ‘폭탄’에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들이 어느 정도의 긴장을 했었는지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리스트에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문제가 앞서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나온 문제라는 점에서 ‘친박 핵심’이라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처지를 헤아려 볼 수밖에 없다.

이 당시 친박계 정치인들이 ‘청와대가 자원외교 수사를 너무 강하게 밀어 붙인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였다는 후문과 함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갈등관계가 조성됐다는 소문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보수언론 지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이런 저런 잡음이 칼럼 등의 형태로 등장하고 일부 언론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화성시 땅 문제를 언급하면서 ‘친박계가 우병우 민정수석을 견제한다’는 취지의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최근 조선일보와 청와대 간의 힘겨루기 구도의 배후에 최경환 전 부총리와 우병우 민정수석 간의 알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 역시 이 시기의 정세를 연원으로 하고 있다. 친박계의 불만에 최경환 전 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우병우 민정수석과 파워게임을 한 것 아니냐는 거다.

지난달 유럽 출국 후 귀국하는 최경환 전 부총리 (연합뉴스)

어쨌든 핵심은 최경환 전 부총리가 자원외교 실패와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적 파장에 대한 별다른 평가나 책임의 대상이 된 일이 없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최경환 전 부총리가 핵심 키를 쥐고 있지만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가계부채 문제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문제의 책임 소재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을 받아왔는데, 자칫 잘못하면 가계부채 문제의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한국은행의 경고에 올해 초 도입한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출과 집단 대출이라는 점에서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공급을 줄여 부채 증가 요인을 막겠다는 이른바 8·25 대책인데, 이는 애초의 목표와는 달리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금융위는 추가 대책을 또 내놓겠다며 갈팡질팡한다.

이 사태의 원인은 ‘초이노믹스’에 있다. 최경환 전 부총리가 추진한 경제정책의 핵심은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으로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거였다. 따라서 그간 금융위가 거의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DTI와 LTV의 규제 완화가 시행됐다. 이는 실제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가계소득의 증대로 이어진 효과는 미미했다. 이후 지방의 미분양 사태, 수도권까지 올라온 ‘밀어내기 분양’ 사태 등은 이 시기의 후폭풍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겨레 8일 보도에 의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7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정부가 DTI 한도를 30%~50% 선에서 규제하고 집단대출에도 이를 적용해야 가계부채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최경환 전 부총리는 그 DTI 한도를 오히려 늘려 놨다. 물론 DTI나 LTV 규제 완화 자체만 놓고 가계부채 문제의 전부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정책조합이 가계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이후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있어야 하지만 최경환 전 부총리는 그 대상에서 멀어져 있다.

이른바 서별관회의 문제의 쟁점인 조선업 해운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혼란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론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대우조선해양 문제지만, 당시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 결정도 여기서 내려졌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미 그 당시에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의 구조조정 문제가 현안으로 다뤄졌으나 최경환 전 부총리 체제에서는 해당 산업에 대한 일정 정도 지원 외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 당시에 끄지 못한 불이 더 커져 최근의 한진해운발 물류대란까지 이어졌다고 볼 여지도 있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이런 지적에 대해 대놓고 반발하고 있다. 7일 페이스북의 글을 통해 포퓰리즘적 정치 문화 때문에 관료들이 유능함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구급차 운전자가 교통규정과 다른 운전자들의 불만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응급환자의 생명을 제때 구할 수 없다고도 썼다. 이 말은 정부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절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이런 주장은 그 구급차에 탔던 게 과연 응급환자가 맞는지, 혹시 구급차가 ‘사설택시’로 이용된 것은 아닌지, 교통규정을 어기는 걸 넘어서서 또 다른 인명사고를 낸 건 아닌지를 따지고 나서 할 수 있는 얘기라는 거다. 서별관회의 청문회는 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상기한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주요 경제정책을 다뤘던 최경환 전 부총리의 출석이 필수이다. 그런 결단을 내리지도 못했으면서 이런 주장을 내놓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최근 최경환 전 부총리는 ‘진박 감별사’ 논란 이후 침묵을 깨고 각종 경제 현안들에 대한 공격적 주장을 내세우려는 채비를 갖추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감당 못할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은 이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으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최경환 전 부총리 시절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내놓고 있는 것을 유심히 봐야 할 필요도 있다. 결국 최경환 전 부총리가 서별관회의 청문회와 같은 정책 실패에 대한 평가의 장을 만드는 것은 회피하고 무시하면서 또 다른 권력게임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보수정권의 경제정책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의 자리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모처럼 국회의 활약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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