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길이 남을 장면들이 갱신되는 하루 하루다. 청와대가 조선일보와의 싸움을 진흙탕으로 끌고 가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을 동시에 수사하기로 한 검찰 특별수사팀은 벌써부터 편향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기계적 균형은 맞추려고 노력했으나 결국은 ‘우병우 살리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모양새라는 거다.

실제 검찰의 압수수색은 그러한 평가를 자초하고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으면서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그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가족회사인 ‘정강’이 입주해있는 건물 등에서 쇼핑백을 하나 갖고 나오며 변죽을 울렸을 따름이다. 이미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음에도 조선일보 기자 휴대전화를 또 압수수색 대상에 올린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까지 자초한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29일 송희영 주필을 보직해임하고 30일 지면에서 자사 소속 기자 휴대전화의 압수수색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는데, 이는 싸움의 논리로 보자면 일단 송희영 전 주필을 2선 후퇴시킬 테니 다시 겨뤄보자고 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선일보에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펀치를 날렸다. 김진태 의원은 극구 부인하지만 그의 추가 폭로 배후가 청와대 또는 수사기관 내지 정보기관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0일 오후 아예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송희영 전 주필의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를 폭로한 것은 이런 맥락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언론 보도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연합뉴스에 의해 ‘청와대 관계자’ 발로 보도된 발언들은 눈을 의심케 한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송 전 주필의 오래된 유착관계가 드러났다”, “그것을 보면 조선일보가 왜 그렇게 집요하게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를 요구했는지 이제 납득이 가는 것 같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조선일보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이를 저지하려 했던 것 아닌가”, “결국 조선일보의 우 수석 사퇴 요구 배경에 유착이나 비리를 덮으려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마치 ‘불순세력’을 대하는 공안검사의 그것이 아닌가.

우병우 민정수석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런 노골적인 방식의 언론플레이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패기’가 읽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수법은 수사기법으로서는 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론의 영역에서 선택할만한 것은 아니다. 송희영 전 주필의 범죄사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이 할 일이다. 백보 양보해도 이런 내용을 밝히려면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의 대상이 된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폭로를 하고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식으로 익명 발언을 흘리고 조선일보 보도의 공신력을 대놓고 무너뜨리는 것은 말 그대로 ‘본말전도’다.

어쨌든 청와대의 ‘한 방’이 먹혔는지 조선일보는 넉다운 되고 말았다. 30일 온라인판에 송희영 전 주필의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한 줄짜리 기사가 올라갔고, 31일 지면에는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이 배치됐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송희영 전 주필에 대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는 등 조선일보를 향한 공격은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조선일보 31일자 지면 사과문
조선일보 인터넷판 기사. 송희영 전 주필 사표 수리 소식이 문화-미디어 면에 실려있다.

이런 상황의 해법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송희영 전 주필의 잘못은 스스로 책임지면 되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누설 의혹도 잘못한 만큼 책임지면 된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로도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어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꼴사나운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렇게 순리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정치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권재창출이고 뭐고 통치력의 생명연장만이 유일한 목표이다. 이 문제는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은 누더기가 된 언론의 처지다. 조선일보가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은 어찌됐든 송희영 전 주필이 비상식적 수준의 접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송희영 전 주필에 대한 대우조선해양 측의 접대가 3만원짜리 식사 정도에 그쳤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언론이 그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를 방어하려면 최소한의 언론 윤리를 지켜야 하는데 조선일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행위는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부당거래>, <내부자들> 등이 거론되며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라는 평이 나오는 건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일반적 수준에서 생각하기에 권언유착의 당사자는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다분히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직관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언론이 힘을 잃고 있는 시대는 정치의 붕괴와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언론 스스로가 자멸을 재촉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번 사태에서 MBC가 ‘자객’ 역할을 떠맡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냉소주의에 편승해 정치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점은 더 이상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이제 사람들은 정치적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집단적 ‘불매’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구매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각각의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공론장이 바로 서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 공론장을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은 당연하게도 언론이다.

그런데 언론이 공론 조성과 같은 대의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이해관계에 따른 각자도생만을 위해 뛰고 있을 때, 우리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게 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1등 신문의 쇠락을 지켜보며 희희낙락할 때가 아닌 거다. 언론이 자정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제2의 송희영 사태는 권력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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