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스포일러 포함

개봉 전부터 칸에서 호평을 받고 예고편을 통해 놀라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부산행'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박진감을 선사한다. KTX 열차의 밀폐된 공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속도감은 KTX의 속도감을 넘어선다.

영화는 좀비의 등장과정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주인공들이 KTX를 타는 순간부터 손에 땀을 쥐는 공포와 박력을 선사한다. 단순히 좀비들과의 사투만 그렸다면 매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일단 캐릭터 설정 및 그 캐릭터들을 잘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된다. 이기적인 증권 브로커였지만 점점 이타적으로 변해가는 석우(공유), 터프하지만 만삭의 아내 앞에서는 누구보다 충실한 하인이 되는 상화(마동석), 만삭의 몸을 이끌고 억척스럽게 좀비들과의 사투를 버텨내는 상화의 아내 성경(정유미), 그리고 아빠와 모처럼 떠난 부산 여행에서 고난을 맞이하지만 끝까지 버텨내는 석우의 딸 수안(김수안) 등 이 네 명의 중심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영화 <부산행> 칸 영화제 해외 스틸 이미지

특히 상화 역의 마동석은 가히 '캡틴 코리아'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와 매력을 발산한다. 정유미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공유의 연기력도 한층 더 진화한 느낌이고 아역배우 김수안도 6년 전 '아저씨'에 등장한 김새론 못지않은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에서 공포를 전달하는 주체는 좀비들이지만 결국 좀비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이다. 어렵게 좀비들을 뚫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열차칸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자신들이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똘똘 뭉친 사람들의 이기심에 의해 또 다른 희생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무능력한 정부는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이미 SNS를 통해 공포의 실체는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이미 일련에 벌어진 큰 대형 재난사고들을 통해 국민들이 경험했던 부분들이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묘사되면서 영화의 몰입도와 현실감을 더해준다.

영화 <부산행> 칸 영화제 해외 스틸 이미지

부산으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전화 통화 장면을 통해 이미 좀비들의 영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전파되었음을 암시하면서 영화의 긴장감 수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열차는 종착역인 부산을 향해 달려가다가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동대구역에서 멈추게 된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고, 남아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부산으로 가기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좀비들과 최후의 사투를 펼치게 된다.

결국 가족을 지키려던 가장들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켜내고 숨을 거두게 된다. 최후의 마지노선을 구축한 군인들은 터널 속에서 다가오는 성경(정유미)과 수안(김수안)을 사살할 준비를 한다. 겨냥하려는 순간 수안은 아빠가 보는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 '알로하오에'를 흐느끼며 끝까지 다 부른다. 이 장면에서 울컥하게 되는데 다소 신파적이라 할 수 있지만 부성애가 절로 느껴지면서 목이 메이게 된다.

영화 <부산행> 칸 영화제 해외 스틸 이미지

수안의 진심이 군인들에게 전달되면서 영화는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비추면서 막을 내린다. 아수라장이 되버린 KTX를 어렵사리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암시를 전달하는 영화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이미 사회를 풍자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통해 명성을 쌓아왔다. 이번 첫 번째 실사 영화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냈고 천만 감독 대열에 진입하였다.

2006년 영화 '괴물' (봉준호 감독)이후 10년 만에 한국영화는 이번에는 좀비를 통해 사회 현실을 풍자한 새로운 블록버스터를 얻게 되었다. 연상호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늙지 않습니다(不老).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들(句), 언제나 끄집어내도 풋풋한 추억들(不老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루세의 不老句 http://blog.naver.com/yhjma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