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를 연재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있다. 입소문이라 해두자.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혁오가 그랬다. 혁오가 출연하는 공연장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일종의 경이로움이었다. 그 전까지 혁오는 방송에서 특별한 조명을 받은 적도 없었고,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혁오란 이름과 '위잉위잉'이란 노래가 옮겨졌을 뿐이다. 비록 <무한도전>이 혁오를 인터셉트하긴 했지만, 무도 출연 전까지도 혁오는 일종의 현상처럼 보였다. 홍대의 각 클럽들을 중심으로 혁오란 이름이 떠돌기 시작했고, 그들이 서는 무대는 관객들로 가득했다.

기시감이 드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우효. 한 장의 EP와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낸 짧은 경력의 음악가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관계로 한국에서 활동다운 활동을 한 적도 없다. 우효란 이름과 교감할 수 있는 건 음악 말고는 없었다. 이 음악이 언제부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너 우효 알아? 정말 좋아" 정도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작년 10월에 발표한 우효의 첫 앨범 <어드벤처>에 대해 난 <미디어스>에 이런 단평을 남겼다.

첫 EP <소녀감성>(2014)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올해 첫 정규 앨범 <어드벤처>로 빵 터뜨렸다. <소녀감성>이 18살 무렵 우효의 이야기였다면 <어드벤처>는 20대 초반의 기억과 감정들을 담은 앨범이라고 한다. 그 시절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면, 청춘이란 낱말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감정이 앨범에 담겨 있다. 설렘과 쓸쓸함과 시무룩함이 고루 섞여 전해지는데 나에게는 이게 무척이나 건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한 유명 음악평론가는 요즘 한국 대중음악은 가수의 자기고백이 별로 없다는 ‘틀린’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이처럼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가들은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말 훌륭한 팝송들이다. 부담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멜로디와 전자음이 반짝반짝 빛난다. 앨범을 처음 듣는 순간부터 반해버렸다.

대략적인 음악 스타일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훌륭한 팝송들이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가 닿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미디어의 힘도 없었고 전략적인 기획도 없었다. 그저 청춘의 설렘과 쓸쓸함과 두려움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음악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을 뿐이다.

그 공감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 이틀 전에 있었다.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을 찾은 우효가 열아홉 번째 라이브클럽데이 무대에 섰다. 스탠딩으로 180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공연장 벨로주였다.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8시 20분부터 열리는 역사적인 첫 공연을 보기 위해 1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나눠주고 이제 더 이상 공연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됐음에도 팬들은 공연장 앞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벨로주 안은 180명의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우효가 등장하면서 터져 나온 환호와 휴대전화의 사진기 불빛이 이를 증명했다. 음악 스타일상, 그리고 라이브 경험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공연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라이브는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더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영민해 보였다. 무척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엉뚱하고 매력적인 우효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소녀감성100퍼센트'를 현장에 있던 관객 모두가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또 한 번 경이로움을 느꼈다. 공연의 마지막 곡 '청춘'에서 손짓 하나만으로 모든 관객이 코러스를 부르게 만드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어떤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한 번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우효는 다시 영국으로 떠난다. 겨울에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을 때쯤 그가 서는 공연장의 크기는 더 커져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그는 지금 '청춘감성'을 노래하는 청춘의 팝 스타다.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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