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서숙향의 글빨+공효진의 현실빨, <질투의 화신> (8월 24일 방송)

SBS <질투의 화신>은 서숙향 작가가 집필하고 공효진이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드라마다. 서숙향-공효진 조합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MBC <파스타> 역시 서숙향 작가가 쓰고 공효진이 출연한 드라마였다. <파스타>가 여느 로코물처럼 ‘주방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전락하지 않은 건, 주방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연애하는 공간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서열 다툼, 직업인으로서의 고단함 등을 꼼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효진은 서숙향 작가의 대본에 ‘리얼리티’를 한껏 불어넣었다.

<질투의 화신>도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방송분은 이 드라마가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선언하는 첫 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장면이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의 날씨 방송이었다. “가슴을 서울 쪽으로 더 내밀고 엉덩이는 동해 쪽으로 더 빼”라는 담당 PD의 요구에 표나리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S라인을 표현해야만 했다.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듣고도 반발은커녕 군소리 없이 PD의 요구를 수용했다.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표나리는 카메라 불이 켜지면 PD의 앵무새가 되고, 카메라 불이 꺼지는 동시에 여자 앵커의 비서이자 만인의 심부름꾼이 됐다. “코디가 비싸다”는 방송국 국장의 신세한탄마저 흘려듣지 않고 “저는 반값에 해드릴 수 있어요”라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로서의 자존심, 기상 캐스터의 품위는 일찌감치 집에 두고 나온 셈이다. 해외에서 분장 겸 FD 역할을 하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문에도 토 하나 달지 않는다. 그저 “제가 다 할 테니까 선불로 주십시오”라고 말할 뿐이다. 지극히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생활인의 면모.

PD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료 기상캐스터에게는 구박당하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 “날씨 끝나고 밤새 편의점 가서 알바하라”는 동료들을 향해, 표나리는 “나를 무시하는 웬수 같은 방송국에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갈 거야”라며 지지 않는다. “우리는 날씨를 전하는 아나운서”라는 동료의 말에도 “우리 아나운서 아니잖아. 뉴스 한 번에 꼴랑 7만원 받는 기상캐스터”라고 받아친다. 동료들이 품위니 자존심이니 운운하고 있을 때, 표나리는 자신의 현실을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적시하고 있다.

<파스타>의 서유경도 표나리 같았다. 막내 요리사 딱지를 겨우 떼고 이제는 프라이팬을 잡을 수 있겠다는 꿈에 부푼 그 순간, 다시 막내 요리사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서유경은 자존심 따위 버린 채 주방을 지켰다. 요리사와 기상캐스터 모두 환상을 가질만한 직업이지만, 공효진은 그런 환상을 모두 걷어내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달픈 직장인의 맨 얼굴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정석, 고경표와 삼각관계를 예고하는 대목에서도, 기대해 봄직하다. 공효진이 러브라인에 묻히지 않고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옆에 있는 조정석과 고경표가 ‘질투의 화신’이 될 정도로 말이다.

이 주의 Worst: 기승전‘결혼’, 이젠 지겹습니다! <미운 우리 새끼> (8월 26일 방송)

SBS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

SBS <미운 우리 새끼>는 남자 연예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MBC <나 혼자 산다>와 유사하지만, 이 모든 영상을 엄마의 시각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나 혼자 산다>와는 조금 다른 예능이다.

차이점은 또 있다. <나 혼자 산다>는 본인 나름대로 멋있게 싱글 라이프를 개척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미운 우리 새끼>는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아들의 ‘미운’ 모습만을 골라서 보여준다. 과거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김광규도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이었지만, 매회 결혼을 언급하진 않았다. 그저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혼자 사는 법을 보여줬다. 그러나 <미운 우리 새끼>는 출연자들의 매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모조리 ‘결혼을 막는 장애물’로 몰아넣는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김건모, 허지웅, 김제동이 출연했다면, 정규로 확정된 26일 방송분에서는 박수홍이 추가로 섭외됐다. 네 엄마들의 눈에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혹은 안 한) 아들들의 모든 행동은 희한하거나 이상하다. 결혼을 못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취급받는다. 그것이 청소나 운동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일지라도, 엄마들 눈에는 그저 “병”이며 “와 저카노?(왜 저러니?)”라는 탄식을 낳게 만든다. 허지웅의 지나치게 깔끔한 청소법도, 김건모의 지나친 술사랑도 모두 결혼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취급받는다. 심지어 박수홍 엄마는 마치 사춘기 아들을 다루듯 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쉰이 다 된 싱글남이 클럽에 가는 게 뭐 대수라고, 박수홍 엄마는 영상을 보면서 너무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노총각들의 어머니가 출연했으니 화두가 결혼인 건 당연하다. 프로그램 기획의도 자체도 ‘노총각 엄마들의 아들 관찰기’다. 그런데 너무 기승전‘결혼’이다. 김제동 엄마는 김건모의 집에 놀러온 김종민을 보며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고 물었다. 아직 결혼 안 했다는 말에 짧은 탄식을 내뱉은 뒤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엄마들의 모든 신경은 ‘결혼’이며, 자연스럽게 <미운 우리 새끼>의 화두도 결혼뿐이다.

왜 우리는 네 엄마들의 한숨, 한탄 그리고 불만 섞인 발언들을 한 시간 넘게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들의 부족한 면만 보여준 뒤 엄마와 옆집 엄마들이 ‘우리 아들 어떡해요’, 다른 말로 하면 ‘저래서 우리 아들 결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신세한탄 하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파일럿 방송 한 번은 새로웠을지 몰라도, 매회 이런 식이라면 시청자들도 답답하고 숨 막힐 것 같다. 이래서 장가갈 수 있을까. 아마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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