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SLBM 발사 시험에 대성공을 거뒀다고 발표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자칫 잘못하면 경쟁적인 군비 확충으로 이어져 한반도 리스크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언론은 이성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보다는 북한의 새로운 무기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핵잠수함이다. 그간 북한 미사일 공격의 대응책으로 고려돼온 것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체인이다. KAMD의 경우 저고도 방어를 기본으로 하는 전략이고 킬체인은 정보자산의 활용을 통해 미사일 발사 사전 탐지를 핵심으로 한다. 문제는 SLBM이 잠수함의 동선에 따라 발사 장소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킬체인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이번 사태로 북한의 SLBM이 2천킬로미터 이상도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됐기 때문에 KAMD 역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되기 어렵다.

KAMD의 탄도미사일 방어 문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DD)로 보완하겠다는 게 그간의 구상이었다. 그런데 사드는 북쪽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탐지하도록 돼있으므로 북한의 잠수함이 남쪽에서 공격해올 경우 미사일을 제대로 탐지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이 때문에 사드가 동서남북을 모두 향할 수 있도록 추가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으나, 이는 비현실적인 주장에 가깝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처럼 논의되고 있는 게 핵잠수함 건조다. 핵잠수함은 장시간 잠수를 할 수 있고 소음을 최소화해 탐지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활용해 북한의 잠수함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잠수함은 농축우라늄을 활용한 동력을 이용하는데, 미국 핵잠수함의 경우 90%까지 농축된 우라늄을 사용하고 일본은 40%대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우라늄 농축 문제는 한미원자력협정이 걸림돌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미 양국은 2015년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20% 미만 수준에서 저농도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핵잠수함이 20% 이하 저농도 우라늄 농축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역시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느냐의 여하에 따라서는 핵잠수함 건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26일자 기사

이러한 논리는 보수언론을 통해 그간 여러 차례 보도됐는데, 심지어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참여정부의 사례까지 들고 나올 정도다. 동아일보는 26일 <SLBM 잡을 핵심전력 다시 떠오른 핵잠수함 보유론> 제하 기사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군은 2020년 까지 4000t급 핵잠 3척의 건조 계획(일명 362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다 관련 내용이 유출되자 중단 시켰다. 해군 관계자는 25일 ‘당시 계획이 실현됐다면 핵잠 2척이 전력화돼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썼다.

동아일보 26일자 칼럼

그러나 이런 여론이 비대화되는 것은 결국 끝없는 군비경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점은 문제다. 이날 동아일보의 다른 글에서도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이 쓴 <북한 ‘미사일 정권’의 시작과 끝>이란 칼럼에서 ‘3차 상쇄전략’을 언급하면서 레일건 등의 군사기술적 진보로 북한 정권의 환상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음속의 7배로 탄두를 날리는 레일건은 생산단가가 저렴해 다양한 지역에 배치할 수 있고 F-15 전폭기의 공대지 미사일 이상의 정밀함을 갖추고 있어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결국 미국의 새로운 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해 북한을 압박하고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야 한다는 매파적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군비경쟁이 동아시아의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고착화하는 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또 만에 하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한국이 갖춰야 할 전략자산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대화와 협상의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한반도에 예정된 불행한 미래를 바꿀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만 해도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포기하지 않고 추진했다. 그러나 4차 핵실험 이후 이러한 노력은 포기 내기는 중단된 채다. 이 점은 역시도 이 날 보수언론의 지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인터뷰를 지면에 실었는데, 애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보다 개선된 형태였지만 4차 핵실험 이후 ‘신뢰외교’가 사망했다는 평가가 포함돼있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대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앙일보 26일자 인터뷰 기사

4차 핵실험은 물론 대북정책을 좌초시킬만한 성격의 것이지만,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를 배치하는 ‘강대강’ 국면을 박근혜 정권 스스로 만든 측면도 있다. 여기에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군부 출신들이 강하게 고수하는 ‘북한붕괴론’이 작용한 걸로 보인다. 이들은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대북지원을 통한 북한붕괴 대비 정도로 사고하기 때문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더 이상 대화가 필요치 않고 남은 건 오로지 북한 체제의 붕괴를 모색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인터뷰에서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 불리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한국에 대해 비협조적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에 우리가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진심을 갖고 대화에 응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화와 협상의 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기만에 말려들 뿐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화가 진척되지 않더라도 대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다음 수가 생기는 법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경우 외교적으로 곤란한 순간이 되면 북한과의 외교적 접촉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교도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공화국 창건일’인 9월 9일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의 방북이 점쳐지고 있다. 한국이 남북문제의 당사국인 것처럼 일본 역시 납북문제의 당사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방북은 일본-중국 간의 마찰과 위안부 협의 이행 이후 한국과의 관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남북관계 경색과 사드 배치 이후로 한국의 외교는 코너에 몰려있는 상태다. 이럴 때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조치를 통해 외교적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군비경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 키울 필요가 있다. 군비경쟁을 통한 남북문제 해소의 끝은 폭격과 특수부대의 투입을 통해 김정은을 제거하고 북한 군부를 무력화하는 것뿐이다. 이 길을 택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답은 어떤 시늉에 그칠지라도 대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 밖에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됐기 때문에 상상가능한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개성공단 등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는 게 사실이니 통일부 장관을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은 어떨까?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2014년 평양 특사를 자임했다가 경질됐다. 이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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