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엉망진창이다. 흐르는 물은 되돌릴 수가 없는데, 뗏목을 타고 억지로 되돌리려고 하니 이 사단이 난다. ‘정치’는 내버려 두고 오로지 ‘통치’만을 좁은 시야로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 된다. 박근혜 정권은 갈등과 이해조정이라는 정치의 본질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걸 국민들 앞에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까지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니 이게 나라인지 ‘지라시’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언론들은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조선일보 대 박근혜 정권’의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세간에 떠돌던 ‘지라시’의 내용이 그대로 메이저 일간지 지면에 옮겨지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이 구도를 굳이 해설하자면 이런 거다.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수사하다 보니, 그간 관-언론-재계를 넘나들며 브로커 비슷한 역할을 한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스가 나왔고, 이 업체의 대표인 박수환 씨를 털다 보니 ‘유력 일간지’의 ‘최고위 간부 S씨’의 이름이 나왔다는 거다. 언론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해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 있으나, 유력 일간지란 결국 조선일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은 조선일보의 고위급 인사 중 S라는 이니셜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는다는 거다.

이렇게 보면 애초에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을 겨냥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일보 입장에서 ‘최고위 간부’가 검찰에 불려가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굴욕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조준사격(?)했고, 이 공격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TV조선으로 다시 엄호사격을 했다. 윤상현 전 의원과 현기환 전 정무수석 녹취록 파문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500억 모금설과 같은 게 여기에 해당한다. 청와대가 주춤하는 사이 나머지 언론들이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여러 의혹을 경쟁적으로 보도했고, 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민정수석은 전열을 정비해 MBC를 자객으로 보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무력화시키며 반격에 나섰다. 이제 이 아귀다툼의 끝은 결국 ‘지라시’의 내용이 다 사실로 드러나는 걸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22일 청와대-세종청사간 을지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진실은 ‘지라시’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관이다. 나쁜 정치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적 인식에 확증을 제공한다. 냉소가 창궐하는 시대에는 정치가 설 자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설령 진실이 지라시와 같은 것이라고 해도 국민들에게 사태의 본질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번 건을 놓고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지금까지 보도된 대로라면 이 건은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권 간의 대결구도라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조선일보의 문제제기는 동기가 불순하다. 청와대가 부패 기득권과 좌파가 손을 잡았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 중에는 공공성과 공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공성은 언론이 지적하는 문제가 사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공공적 문제의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거고, 공정성은 언론이 편파적 논조를 가질 수는 있으나 그 논조에 도달하는 과정만큼은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의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문제제기는 공공성과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음은 뒤집어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문제제기의 성격은 여전히 공공성을 갖고 있다. 재판에서 유무죄 판결의 기준으로 본다면 모르겠으나, 언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문제는 의혹을 충분히 제기할만한 사안이다. 조선일보가 촉발시킨 다른 언론들의 경쟁적 문제제기 역시 언론의 원칙을 저버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혹자는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는 어차피 기득권들의 밥그릇 나눠먹기 싸움이므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마치 우연처럼 시작됐다는 듯이 말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들끼리의 문제라는 관점으로 보아도 애초에 대우조선해양을 수사할 때 조선일보 관계자의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이 왜 문제가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냉소적 세계관에서는 박근혜 정권과 조선일보가 얼마든지 ‘딜’을 통해 이 사안을 없는 얘기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보수언론과 박근혜 정권 사이의 어떤 ‘불화’를 반영한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불화’는 결국 정치적인 성격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좋은 정치는 이 사건 배후의 논리가 어떻든 정권이 정치를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소화하겠다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는 사퇴하고 검찰 조사를 받도록 하면 되고, 대우조선해양과 ‘유력 일간지’의 ‘최고위 간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 그것대로 처벌하면 된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미르 재단 등을 활용해 재계로부터 500억을 모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것도 처벌하면 된다. 잘못을 하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보여줘야 통치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대우조선해양 경영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박수환 대표가 조사를 받기위에 2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별관으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그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모든 의혹제기를 ‘불순한’ 것으로 규정하고 만물에 대한 ‘파워게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 왕정에서는 그런 것도 통치를 하는 방법이었을 수 있으나 권력구조가 복잡다단해진 현대의 민주사회에서 이런 대응은 어떤 관점에서 봐도 가장 나쁜 선택이다. 국민들이 통치의 정당성과 정치의 문제해결능력을 신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통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는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수석을 내치지 못하는 것은 ‘우병우 수석의 문제’라는 게 ‘박근혜 정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는 박근혜 정치는 본래 기득권이었던 유능하고 악독한 누군가가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틀어쥐고 온갖 공작을 통해 통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만을 핵심으로 한다. 이 통치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다수 국민들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다. 정치인은 찍어 줘봐야 소용이 없고 정치에 기대해봐야 배신만 당한다. 정치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 남은 것은 각자도생 뿐이다.

이런 정치가 더 이상 재생산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늦었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에 모든 것들을 바람직한 정치의 과정으로 돌려 놓아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손에 쥐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물처럼 늘 흐른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서는 흐르는 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통치의 연장이 아니라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중심에 놓고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들도 흥미 위주의 ‘권력 암투’ 프레임으로만 이 문제를 볼 게 아니라 정치의 기능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에서 이제 더 이상 ‘지라시’를 현실로 만드는 정권이 태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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