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월 22일) 외교통상부에서 유럽산 쇠고기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유럽연합(EU)산 쇠고기 수입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양국 간의 수입위생조건 합의에 따라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산에 이어 유럽에서의 광우병 파동으로 10년간 중단했던 구라파산 쇠고기 수입도 재개하겠다는 얘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미FTA 협상과는 별개다”라고 수십, 수백 번 얘기했던 선례만 봐도 그렇다. 다만, <한겨레>가 오늘 ‘광우병 잦은 유럽 쇠고기 들어온다… 유럽서 3년간 광우병 600건’이란 내용을 특종보도하자 미리 준비해뒀던 핑계를 서둘러 공표했을 뿐이다.

▲ 한겨레 4월 22일자 1면
책임자도 거의 변한 바가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실무 서열 1위)과 이혜민 한-EU FTA 협상 수석대표(실무 서열 2위)는, 한미FTA 협상 당시엔 각각 수석대표(실무 서열 2위)와 기획단장(실무 서열 3위)의 위치에 있었다.

굵직굵직한 국내 현안들에 묻혀 조용히-그러나 쏜살같이-진행되던 유럽연합과의 FTA 협상(언제나 뒤에 바짝 숨어 따라붙는 쇠고기 문제 포함)이 타결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암초’를 만났다.

이 암초의 부피와 질량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이슈화되지 못한 채 다수 국민의 관심을 비껴갈 수도 있는 반면 또 한 차례의 쇠고기파동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기사를 보면, <한겨레>가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의 말을 인용해 유럽산, 캐나다산 등 광우병 발생국의 쇠고기 수입을 정부가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지적을 하자, 통상교섭본부는 “협상이 진행중이라 세부 조항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있다.

일단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해 놓고 막상 보도가 나가면 진부하디 진부한 해명으로 일관한다. 양국 간의 수입위생조건 합의에 따라야 한다? “합의에 따라, 우리는 대기업 제품 많이 수출해야 하니까 대신 광우병이 발생한 EU 멤버국 쇠고기를 국민 여러분이 좀 잡숴줘야겠습니다”라고 알아서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여준 우리측 협상단의 실력(?)을 충분히 가늠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항쟁의 메카, 광화문 네거리. 타고 난 초들의 향내가 채 가시지 않은 바로 그 곳 세종로 외교부청사에선 지금도 밀실협상의 냄새가 난다.

22일 같은 날 여의도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산쇠고기 문제로 MBC <PD수첩>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오늘도 해당 방송국 본사 진입을 또다시 시도하다 돌아갔고, 국회에선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독선과 아집 속에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 통과만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협상 책임자의 시식회는 없었다

수입 재개로 밀려든 그 많은 미국산 쇠고기 누가 다 먹고 있을까. ‘미국산’이라고 써놓은 음식점은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그럼 정부 관료들은 먹고 있을까. 답은 다음의 분들-이명박 대통령,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웬디커틀러 FTA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답변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1년 전, 국민들은 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부터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이에 이동관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미국 방문하셨을 때 이미 부시 대통령과 (몬타나산) 쇠고기 드셨지 않은가”라고 답하며 TV에 출연해 시식할 계획이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 같이 먹자. 나도 먹겠다”라고 덧붙였지만 본인 역시 "공개" 시식의 의지는 없음을 알렸다.

한미FTA 협상 때 김종훈 대표와 웬디커틀러 역시 미국산 쇠고기 ‘TV 시식회’를 열어 직접 보여줄 수 있냐는 제안에는 변죽 울리는 답변만 늘어놨다. 2007년 3월 서울의 모 협상장에서 웬디커틀러는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놨으나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우리가 구라파산 쇠고기를 아주 엄격한 검역조건을 내세워 20개월 미만 정도의 살코기 등만 수입한다면 문제는 커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미 대륙 광우병 발생국 중 하나인 캐나다의 경우를 보면, 한국이 미국에 개방한 수준(30개월 미만 뼈 포함)의 쇠고기 시장 개방을 해야 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이를 본 유럽이 가만히 앉아있을 리 있을까. 미국과의 ‘굴종적 퍼주기 협상’으로 인한 결과는 이제 주요 광우병 발생국(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쇠고기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상 최다 광우병 발생국이자 인간광우병도 무려 160여 건을 기록한 영국산 쇠고기의 한국 입성도 가능해질 수 있다.

한편, 한미FTA 협정문 안에는 “미래의 최혜국대우”라는 매우 위험한 조항이 들어있다. 통상전문가들이 말리고 말렸으나 결국 포함된 독소조항들 중 하나다.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만일 EU과의 FTA가 성사되고 유럽산 쇠고기에 대해 미국산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준다면 “미래의 최혜국대우”에 근거해서 미국산도 자동으로 그렇게 해줘야 한다. 쇠고기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품목도 위 독소조항의 효력 하에 있다.

정부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부시에게 준 선물(쇠고기 시장 개방)의 대가는 다른 나라들의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참담한 현실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광우병 연구하던 스페인의 모 대학교수가 최근 사망했다. 사(死)인이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보도를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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