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권에서 성층권까지 하늘에서 오는 위협을 차단해 미국 본토를 명실상부한 요새로 만들겠다는 미사일 방어(MD) 체계 구상은 미-소 냉전 종반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되던 패트리엇이 미사일 요격용으로 비약적인 진화를 이룬 게 1980년대 말이었고, 1991년 걸프전에서 상용화했다. 또한, 걸프전은 1987년 제안돼 미국 육군 안에서 검토 중이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탄력을 주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1년 9․11테러는 여기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했고, ‘포트리스 아메리카’(요새 아메리카)라는 용어는 확고하게 똬리를 틀었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현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군사적인 지식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사드는 미국 MD 체계의 핵심을 이룬다. 한반도 남쪽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것은, 미국 MD 체계에 편입된다는 것이다. 이미 남한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 있다고 암묵적으로 동의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남쪽이 미국의 동북아 방어라인으로 한층 더 견고하게 편입된다는 뜻을 갖는다.

미국 MD 체계의 대상은 처음엔 소련,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국제 테러리즘(아마도 북한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 핵 미사일에 대한 방어용이지,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해 봤자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는 중국으로선, 한국민을 위한다지만 ‘미국에 의한 미국의’ 방어체계에 훨씬 더 견고하게 편입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셈이다.

사드 결정 이후 한중관계[연합뉴스 TV CG]

중국이 아무리 반발한다 해도, ‘포트리스 남한’이 될 수만 있다면 해봄직한 게 아닌가?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도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다. 현 정부는 ‘사드 배치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손 놓고 있으란 말이냐?’는 항변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렇게 인정을 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론 격세지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개발하는 핵의 공격 대상에 남쪽이 포함된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던 터여서다.

문제는 ‘포트리스 남한’이라는 발상은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중-러-일의 틈바구니에 낀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안보체계 편입된다는 것은 또 다른 나라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에 쌍심지를 켜는 일본 정부의 모습의 일단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한에 배치된 사드의 대상에 중국이 포함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전통적인 한-미 동맹이나 전시작전지휘권의 미국 보유 등을 감안할 경우, 이런 논리적 일관성에 필연성까지 따라붙는 건 시간문제다.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통한 ‘포트리스 남한’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는 적어도 안전해지는 것인지도 미지수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유를 따져보자. 국방부 발표와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사드 배치는 사정거리 1200km 남짓의 노동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발사각도 80~90도로 남쪽을 향해 발사하는 공격을 가정한 것이다. 핵탄두가 아니면 사드는 도입할 이유가 없다. 50~150km 하늘 위에서 사드로 요격하면 방사능 낙진 등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드를 도입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수도권은 예외다. 극심한 반대에 부닥친 경북 성주에 배치될 경우 수도권은 사정거리 200km 남짓의 사드의 방어권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국방부가 천기를 누설하고 말았다. 수도권은 패트리엇을 보강해 방어하겠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다. 이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꼴이다. 패트리엇이야 15~40km 사이에서 요격하는 것인데, 이런 고도에서 핵 미사일을 요격하면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은 재앙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이 극히 적다면 애초부터 사드 배치가 아니라 패트리엇 방어시스템의 보강을 말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추정하건대 국방부의 이런 변명은 거짓말이다. 수도권을 포괄하는 쪽으로 사드를 더 배치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이건 감당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말 자체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수도권에 사드 배치한다는 것보다 더한 발언들이 미국 쪽에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 2일 한국국방연구원 주최 국방포럼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이 “수도권 방어를 위해서는 (사드, 패트리엇과) 다른 능력을 고려 중”이며 “이를 통해 완벽한 중첩 미사일 방어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한 모양이다. 같은날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국 육군장관도 “(사드, 패트리엇 이외의 한미가 추구할 수 있는 다른 옵션에 대해) 한미가 대화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이 옵션은 요격고도가 150~500km로 사드보다 더 높은 SM-3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탄도 미사일의 종말 단계가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요격하는 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 MD 체계가 한반도 남쪽에서 한층 더 공고화하는 꼴이다. 지금은 ‘네들 우려를 감안해 수도권을 배제하지 않았느냐?’라는 우리의 항변이 통하겠지만, SM-3 도입이 논의되는 그만큼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는 말은 점점 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을 한편으로, 북-중-러를 한편으로 하는 대결구도가 현실화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포트리스 남한’은 환상에 가깝다. 남한 전체가 대결구도의 최전방이 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 치킨 게임의 결과는 무엇일까?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만을 고집할까? 그래서 미국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용인할까? 아니면 혈맹에 가까운 대북한 제재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긴장 완화의 다른 길을 모색하는 길을 택할까? 역설적이게도, 사드 배치 현실화는 북한의 핵무장을 공식 인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남쪽에 든든한 전초기지를 구축한 미국으로서는 그다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이미 세계 3~4위를 다투는 군사대국인 일본으로서도 좋은 빌미가 생겼으니 나쁜 일이 아니다. ‘벼랑 끝 생존 전략’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길이 없다. 지금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중국과 한국이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한다. 공세적인 평화전략을 서둘러 찾아봐야 할 이유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손 놓고 있으라는 얘기냐?’에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이건 아니잖아!’라고 하는 상황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제재 일변도만이 아닌 체제 보장과 연결된 핵무장 해제 프로그램의 가동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는 높아질까 낮아질까? 100%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다에 나는 한 표다. ‘포트리스 한국’은 그만큼 가능하지 않다. 이런 주장까지 포함해 지금은 언론이 깊이 있고 미래지향적인 활발한 정쟁을 벌여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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