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개그콘서트> 새코너 ‘뿌레땅뿌르국’의 총 인구는 3명이다. 그래서 박영진은 ‘뿌레땅뿌르국’의 대통령이자 선생님이자 경찰청장이다. 문화부 장관은 영어 선생님이자 교장 선생님이고, 통일부 장관은 주번이자 학부모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군지 헷갈릴 만도 하다. ‘뿌레땅뿌르국’의 통일부 장관은 중국집에서 자장면으로 통일을 잘해서 통일부 장관이 되었고, 정보통신부 장관은 그 자장면 시킬 때 직접 전화했기 때문이다. 계통도 없고, 맥락도 없다. 그냥 우기면 된다. 웃으면 된다.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이고, ‘장관’이라면 ‘장관’일 수밖에.

‘목욕당’ 창당, 개그가 아니라고?

▲ KBS 2TV <개그콘서트> '뿌레땅뿌르국' 화면 캡처.
국회가 <개그콘서트>보다 웃기다는 세간의 평가가 결코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대한민국에 ‘뿌레땅뿌르국’을 능가하는 인물들이 여의도 사우나에 모였다. <개그콘서트>의 ‘뿌레땅부르국’이 인구수 3명의 소국이라면 대한민국 국회에 있는 ‘목욕당’은 의원수 50석의 원내 3당이다.

“난 이 나라의 여당,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몽준이야.”
“사실은 내가 ‘목욕당’의 ‘탕내 수압 조절 위원장’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한나라당’ 최고의원이기도 하고, ‘목욕당’ 탕내 수압 조절 위원장이기도 한 거야.”

“난 이 나라, 민주당 원내대표 원혜영이야.”
“사실은 내가 ‘목욕당’의 ‘탕내 적정 온도 조절 위원장’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민주당’ 원내대표이기도 하고, ‘목욕당’ 탕내 적정 온도 조절 위원장이기도 한 거야.”

그렇다. ‘목욕당’의 의원들은 한나라당, 민주당 국회의원이기도 하지만 ‘목욕당’의 의원이면서 때때로 간부이면서 때도 밀어주고 물 온도도 체크하는 사이다. ‘탕내 적정 온도 유지 위원장 권영세’ ‘대량살상무기 탕내 반입 저지위원장 문학진’ ‘냉온탕 수위 조절 위원장 진영’ ‘온탕대표 구상찬’ ‘냉탕대표 최재성’ ‘냉온탕 교류 위원장 박병석’ ‘냉온탕 온도유지 위원장 최연희’ ‘사우나 대표 김정훈’ ‘탈의실 복지 위원장 이학재’ ‘수면실 실장 신학용’ ‘샤워실장 김재균’ ‘여탕친선 교류 협의회장 김성희’ ‘타월 품질관리 실장 임영호’ ‘탕내 전략기획실장 서종표’ 등 당내에서 굵직한 직함들도 하나씩 나눠 가졌다. 이 국회의원님들 개그 센스는 가히 수준급이다.

헉. 근데 이게 개그가 아니다. ‘목욕당’ 창당 결의문은 사뭇 진중하다.

이제 국회의원들은 시도 때도 없는 여야의 대립과 폭력사태로 인한 파행국회의 죄인으로서 모든 국민들의 질타와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할 때입니다.
국회 내에서 여·야가 가장 편안하게, 꾸밈없이 만날 수 있는 이곳 목욕탕에서 몇몇 선배님들과 후배들이 나섰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뜻을 같이하는 여·야 의원들이 우리들만이라도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목욕당(沐浴黨)을 창당했습니다.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는 국회는 필요 없습니다. 야당만 있고 여당이 없는 국회도 필요 없습니다.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는 여당과 야당만이 함께하는 국회가 있어야 합니다. 목욕당(沐浴黨)은 낮은 자세로 낮은 목소리로 국민들만 보고 말하고자 합니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습니다. 격렬하게 여·야가 부딪치면서 전투의 장(場), 비난의 장(場)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양보하는 상생의 국회를 만들겠습니다. (목욕당 창당 결의문 일부)

개그가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웃지 말아야 하는 걸까? 개그는 현실을 뒤집을 때 비로소 웃긴 것이지, 현실 그대로를 묘사하면 더 이상 웃기지 않다.

‘일 년에 영화 한 편 안보는 문화부 장관’ ‘버스 요금 얼마인지 모르는 교통부 장관’에 대해 알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칼에 찔릴 수 있는 ‘뿌레당뿌르국’은 풍자다. 무섭지 않고, 웃기다. 하지만 인구 4800만 대한민국에서 문화부 장관이 ‘일 년에 영화 한 편 안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칼에 찔린다. 이건 현실이다. 무섭다. 아프다. 웃자고 해놓고, 진지해지면 어쩌라는 것인가. 목욕탕에 가자 놓고, 옷을 입고 탕 속으로 신발까지 신고 걸어 들어가면 어쩌라는 말인가. 웃기지 못하면 지는 건데… ‘목욕당’은 웃기지 않고, 무섭다.

지키지도 못하면 지는 거다? 굴욕이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습니다. … 서로를 아끼고 양보하는 상생의 국회를 만들겠습니다.” 웃기지도 못했으면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면 이건 웃기는 것도 웃기지 않는 것도 아닌 게 된다.

▲ 4월 20일 MBC <뉴스투데이> 화면 캡처.
‘목욕당’에는 ‘폭탄주 소탕 클럽’(폭소클럽)이 오버랩된다. ‘폭소클럽’은 사실 각계 사회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이었다. 무엇이 좋아 보였는지 이를 본따서 여야 국회의원 43명이 2005년 9월 ‘폭소클럽’ 창립식을 가졌다. 창립멤버는 ‘권영세, 김기현, 김명자, 김문수, 김영숙, 김석준, 김정훈, 김재윤, 김재원, 김춘진, 김충환, 김형오, 김희정, 노회찬, 박세환, 박영선, 박진, 박찬석, 배기선, 송영선, 심재엽, 안명옥, 유재건, 윤겅영, 이경재, 이계진, 이상득, 이인기, 이종구, 이주호, 이혜훈, 전재희, 정덕구, 정두언, 정의용, 정화원, 정희수, 조일현, 주성영, 주호영, 진수희, 최구식, 황진하’로,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주도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소클럽’ 멤버인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구 술자리 욕설 사건’으로 탈퇴하고 나섰고, 2006년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자 박진 의원은 “한나라당 지도부부터 폭탄주를 끊어야 한다”며 술잔을 망치로 깨 보이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이후 ‘폭소클럽’이 무엇을 남겼고, 한국 사회 음흉한 술자리 문화 ‘폭탄주’가 국회에서 소탕되었는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일 뿐이다. 다만 ‘폭소클럽’을 주도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얼마 전 박연차 리스트로 인해 소환, 금품수수 의혹을 받았다는 것 밖에는.

그래도 어찌 일개 ‘클럽’과 ‘당’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목욕당’, 지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망신살이 뻗치는 거다. 궁색한 선언과 정치적 제스처의 재현의 위력은 ‘뿌레땅뿌르국’의 개그로도 소화할 수 없다. 웃기지도 못했기에 지키지 못한다면 벼랑 끝이다. ‘목욕당’의 의원들이 ‘국회의원’으로 숨을 쉬지 않고 ‘탕내 적정 온도조절 위원장’ ‘탕내 적정 온도 유지 위원장’이라 우기기라도 하면, 그 때는 정말 ‘뿌레땅뿌르국’의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인 ‘개나 소’라도 데려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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