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지?'란 노랜데요, 야~ 이게 벌써 이백 년이 됐나, 참 기가 막힙니다. 할배가 다 돼가지고. 이게 아마 저가 열아홉 살 때 작곡한 노래 같아요."

앨범의 첫 곡 '독백'은 한대수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의 독백이다. 이제 일흔이 다 돼가는 할배가 열아홉 살에 만든 '사랑인지?'를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너무 솔직해서 웃음이 날 정도로 꾸밈없이 50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독백'의 파격을 들으며 '역시 한대수답다'는 생각을 했다.

한대수의 새 앨범 <Crème de la Crème>는 발표하는 음반마다 늘 '한대수다움'을 담아온 한대수의 열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앨범 대부분의 수록곡이 이미 발표된 노래들이어서 '정규'란 말을 붙이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아티스트와 제작자 모두 정규 앨범이라 부르고 있으니 <Crème de la Crème>는 라이브 앨범과 베스트 앨범 등을 제외한 한대수의 통산 14집이 되는 셈이다.

언급했듯 <Crème de la Crème>는 한대수의 노래를 다시 부른 앨범이다. 한대수가 그동안 발표한 노래들 가운데 "선율이 강한 노래들, 현재 다시 부르기에 적절한 노래들"을 선별했다 한다. 여기에 선후배 음악가들이 참여해 함께 소리를 더했다. (이번에 함께 작업하며 중학교 선배임을 알게 됐다는)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오랜 시간 한대수와 함께해온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 블루스 아티스트 김목경, 기타 연주자 한상원과 신윤철, 드럼 연주자 남궁연, 누구보다도 한국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하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등이 한대수만큼의 비중으로 앨범에 참여했다.

'독백'의 독백 뒤에 신윤철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인지?'의 익숙한 선율이 한대수의 목소리를 통해 재생된다. 공식 발표된 지 이미 40년이 훌쩍 넘어가는 노래. 늙고 더 꺼슬꺼슬해진 한대수의 목소리, 그리고 신윤철의 기타 연주와 함께 '사랑인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이어지는 '아무리 봐도 안 보여'. 뉴욕에서 만든 네 번째 앨범 <기억상실>(1990)에 실려 있던 이 노래는 원곡의 키보드와 양희은의 코러스 대신 이우창 트리오의 연주와 최고은의 코러스로 다시 살아났다.

모든 노래들이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원곡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정서와 기조는 그대로 품으면서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게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오버 프로듀싱 없이 원곡에 대한 존중을 갖고 작업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아무리 봐도 안 보여'의 코러스뿐 아니라 'As Forever', 'If You Want Me To'에서 노래한 최고은의 목소리는 앨범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우며 동시에 한대수의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결국 <Crème de la Crème>는 한대수의 음악이 얼마나 신선했고 훌륭했는지를 다시금 말해주는 증거물이다.

한대수는 <Crème de la Crème> 발표 즈음 다시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하나뿐인 딸 양호의 교육을 차마 한국 시스템에 맡길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성장해 한국으로 돌아왔던 '한국 최초의 히피' 한대수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었다. 자신의 소중한 노래들을 금지하고 탄압하는 한국 사회에 좌절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정착했던 그는 또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만들어낸 두 번째 '떠나보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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