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박상영, 최병철 그리고 박근혜!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금메달전> (8월 10일 방송)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한국 박상영이 헝가리 제자 임레를 상대로 점수가 뒤지고 있자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8월 10일, 그날 그의 머릿속엔 아마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상대는 세계랭킹 3위인 임레 선수, 나는 세계랭킹 21위. 또, 상대는 리우 올림픽을 포함해 6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베테랑 40대 선수, 나는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펜싱 대표팀 막내 21살. 현재 2라운드가 끝났고, 점수는 9 대 13으로 내가 뒤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3라운드. 뒤집을 수 있을까. 뒤집어야 할 텐데.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금메달전> 2라운드가 끝나고 1분 남짓 되는 쉬는 시간. 박상영 선수의 당시 심경은 본인만이 알겠지만, 조심스럽게나마 추측해본다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계란으로 바위치기’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상대는 베테랑이며 3라운드에서 4점을 만회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2점을 빼앗기면 패하는 상황. 물론 ‘패’한다는 표현보다는 은메달을 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그럼에도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선수 개인의 열망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기에 압박감이 없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박상영 선수는 쉬는 시간 자기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어쨌든 3라운드는 시작됐다. 3라운드에서 2분 남짓 남은 시간, 드라마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과 반전 드라마 같은 전술이 힘을 합쳐 금메달이라는 기적을 일구어냈다. 마지막 점수를 내며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박상영 선수는 시원하게 포효하며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어’ 다짐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건, 그야말로 정신줄과 발음 모두 내려놓은 최병철 해설위원의 중계였다. “맞코 찌르긱!(맞고 찌르기) 막고우 찔뤄써으! 막고 찔러써흐! 빠라드! 니뽀세! 박상영!”, “박쌍혀어어어엉! 말이 됩니까 이겍??? 박상영!!! 빡쌍형이 자기 점수만 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등 절반은 알아듣고 절반은 못 알아듣겠는, 분명 한국말인데 자막이 필요한 흥분 해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이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과 최병철 해설위원의 중계에 열광하는 사이, 필자는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다. 정치권에서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로 어떤 메시지를 만들겠구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을 앞세워서 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아침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어제 박상영 펜싱 선수가 ‘할 수 있어’ 이렇게 되뇌면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이 ‘우린 해낼 수 있다’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박상영 선수를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뒤따라 나왔다. “노동개혁법, 추경 예산, 규제프리존 특별법 등이 모두 급하다”는 말.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정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바로 누진제 개편이다. 반짝 세일도 아니고 ‘올 여름 20% 한시적 할인’ 대신, 전면적인 누진제 개편이 필요하다. 누진제 개편,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 주의 Worst: 안 봐도 너무 비디오!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8월 12일 방송)

드라마 제목에 ‘신데렐라’라는 단어가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예상 가능한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첫 회는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마치 신데렐라 강박증이 있는 것 같은 첫 회였다. 여자 주인공 은하원(박소담)은 신데렐라 그 자체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재혼했고, 새로 만나게 된 새엄마와 언니는 신데렐라 동화에서처럼 아무 이유 없이 은하원을 괴롭히고 구박했다. 동화 속 신데렐라가 집안 허드렛일에 눈코 뜰 새 없었다면, 현대판 신데렐라 은하원은 교복도 벗지 못한 채 베이비시터부터 피자배달, 편의점 알바까지 했다.

tvN 새 금토드라마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드라마 주인공이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이니, 은하원의 인생이 신데렐라인 것은 백 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에피소드마저 제작진은 신데렐라를 끼워 맞추려 했다. 강지운(정일우) 덕분에 소매치기 당한 가방을 찾은 한 여자는 “방금 백마 탄 왕자를 만난 것 같다”며 “이 가방이 유리 구두 같다”고 했다.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단역도, 이 드라마에서는 무조건 신데렐라였다. 마치 평범한 여자들은 모두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다.

남자 주인공들은 또 어떠한가. <꽃보다 남자>를 능가하는 허세는 기본 장착, 매사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강현민(안재현)은 클럽에서 첫 번째로 들어오는 여자와 가짜 약혼을 하겠다고 선포했고, 마침 그 순간 피자 배달을 온 은하원이 그의 약혼녀로 ‘강제 당첨’됐다.

모든 신데렐라 혹은 캔디 드라마가 그러하듯, 은하원은 강현민에게 막 대했고 강현민은 그런 은하원에게 호기심 아닌 호기심을 느끼면서 ‘가짜 약혼녀’ 제안을 했다. 은하원 성격상 당연히 거절해야 맞는 일. 그러나 하필 또 그때 100만 원의 돈이 필요했고, 3시간만 약혼녀 역할을 해주면 100만 원을 주겠다는 강현민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사장에 도착한 은하원은 강현민에 의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신을 완료했다.

1회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2회를 예상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 가짜 약혼녀에서 멈추려고 했던 강현민의 의도는 아름답게 변신한 은하원을 보는 순간 바뀌었을 것이고, 서서히 강현민-강지운-은하원의 삼각관계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이 모든 전개는 너무나 많은 드라마에서 봤기 때문에, 특정 드라마를 콕 집어 비교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안 봐도 비디오’인 줄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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