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신임 대표 지도부와 박근혜 대통령 간의 만찬에 대한 신문들의 시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일관된다. 이정현 대표의 충성심과 청와대의 ‘만족감’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뤘다는 거다. ‘신밀월관계’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가운데, 당청관계의 이러한 수직적 구조는 보수언론마저 우려하는 부분이다. 보수언론은 아직까지도 변화를 기대하는 눈치지만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2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12일 지면에 <무엇을 위한 박 대통령-이 與대표 ‘新밀월시대’인가> 제하의 사설에서 “4·13총선 참패 이후 첫 회동인 만큼 이 대표는 집권여당의 오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대통령에게 상기시키며 몇몇 장관과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의 교체를 요구해야 했다”라면서 “그러나 이 대표는 ‘개각에서 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 배려 인사에 대해서도 늘 그렇게 해오셨지만 반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비서 출신 대표가 대통령 눈치를 본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썼다.

조선일보 12일자 3면 기사

이정현 대표의 특이한 ‘어법’은 다른 신문에서도 지적한 바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지만, 이런 의견이…” 이정현式 화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정현 대표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시종일관 ‘참모형’ 어법을 썼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통령께서 다 판단하실 문제지만”, “늘 그렇게 해오셨지만”, “으레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인사권자인 대통령께서 다 판단하실 문제지만”이라는 등의 전제를 붙여 최대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어법이면서,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수직적 당청관계’라는 부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점은 보수언론 중에선 동아일보가 맨 먼저 인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앞서의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여당을 하청 기관처럼 취급해 온 당청 관계에 대해 이 대표는 ‘수평적인 질서가 시대정신이고, 새누리당은 당 운영도 수평적으로 하겠다’면서 정작 당청관계도 그래야 한다는 말은 꿀꺽 삼켜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동아일보는 “회동이 끝난 뒤 이 대표가 ‘정치인 박 대통령에게 본받고 싶은 것은 일관성’이라고 말한 것도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국정 운영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의 결론은 “당정청간 ‘신밀월시대’가 제2의 친박 전성시대를 여는 데 그친다면 새누리당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걸 이제야 깨달았다면 정론을 말하는 언론으로서 자격이 없다. 특히 동아일보의 태도가 문제인 까닭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데도 이정현 대표의 탄생에 기여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7일 김순덕 논설위원 명의의 <‘내시 여당’의 반역, 누가 할 수 있다> 제하 칼럼에서 갑자기 ‘비박 패권주의’를 비난하며 “차라리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며 ‘새누리당을 혁명해서 뒤바꿔 보겠다’는 친박 이정현이 당 대표 되는 게 새누리당에는 나을 것 같다”고 썼다. 이미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모든 답이 들어 있는데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이정현 대표가 추진할 ‘혁명’의 정체가 불분명 하다는 건 이후의 여러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이정현 대표는 당선 직후 JTBC 등과의 화상연결 등을 통해 새누리당이라는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면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적으로 바꾸겠다’는 수사만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이 없는 상황은 사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안겨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최고위원회를 전면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한 방침이다. 이정현 대표는 거의 취임 일성으로 최고위 비공개화를 추진했는데 필요시 당 대표나 원내대표만 발언토록 하고 이견이 있는 분야나 당내 문제에 대해서는 조율된 내용을 당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과거 새누리당 지도부가 공개석상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치고 박고의 대결을 펼치는 추태를 다시 재현할 수 없다는 거다.

이런 대책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건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다. 계파갈등이 전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게 문제라면 계파갈등을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이른바 ‘봉숭아 학당’은 당청관계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수직적 구조이고 비박계를 사실상 정치적으로 포위하는 상황이 될 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화합을 위해서는 자기 것을 내줘야 하고 이견을 포용해야 한다. 이정현 대표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최고위원회를 전면 비공개로 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당장 최고중진연석회의 등을 열 경우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는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이정현 대표가 책임져야 할 임무 중 ‘공정한 대선 경선 관리’가 있다는 점은 이 문제를 쉽게 보아 넘길 수 없게 한다. 이정현 대표의 임기 중에 경선 룰을 확정해야 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친박계가 지지하는 대권주자는 현재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국외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유력 대권주자들의 ‘주판알’이 어떻게 튕겨지느냐에 따라 경선룰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가게 되면 사람들의 ‘말’에는 시퍼런 날이 설 수밖에 없다. 친박계에 완전히 종속돼있는 이정현 대표로서는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커튼으로 일단 가려놓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중앙일보 12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박 대통령, 당 청 관계 회복 넘어 야당과도 만나야> 제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지도부와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거야(巨野)가 이정현 대표를 대화 상대로 여기게 하려면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정례회동부터 제도화해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 야당 의원들과도 정례적으로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썼다. 이렇게 해야 당청관계도 정상화되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거리감도 좁혀질 수 있다는 취지다.

중앙일보가 ‘충심’을 갖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제안은 전혀 검토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경험하고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로지 청와대가 주도하는 기만적 통치술에만 익숙할 뿐이지 협치니 소통이니 하는 데에는 어떤 의지도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이정현 지도부와 대통령 간의 오찬에서도 이런 사실이 충분히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일보의 이런 주장은 오히려 이정현 대표 체제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이정현 대표 취임 이후 보수언론은 이정현 대표가 과거 말단 당직자로 기자들에게 복사 심부름을 하던 사람이었다는 사례 등을 언급하며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정현 대표 본인이 대선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예상까지 꺼내는 판국이다. 새누리당의 당헌 당규상 그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다를 것 없는 여당 지도부에 ‘새롭다’는 과도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언론답지 못한 처신이다.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고 냉철히 평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앞으로의 당청관계는 ‘신밀월관계’조차도 아니고 그저 ‘종속’일 뿐이다. 보수언론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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